어차피 정리도 장비빨입니다.

바구니 준비하실게요

by 이효나

실력없는 자가 언제나 장비 탓을 한다 했던가. 고수의 길은 멀고도 험할지니. 나 역시 어설픈 정리피플이라 늘 장비부터 마련하는 편이다. 대단한 것들은 아니다. 장비가 마련되면 정리 의욕이 배가 되는 걸 어쩌랴.


정리 작업에 결코 빠질 수 없는 1번 장비는 바로 바. 구. 니 되시겠다. 나의 사랑 너의 사랑 다이소에는 이런 나의 마음을 살뜰히 알아챈 소쿠리와 바구니, 트레이가 종류별로 기다리고 있다. 물건을 비우겠다면서 바구니부터 쇼핑하는 나를 두고 신랑은 뭐가 한참 뒤바뀐 행위라고 혀를 찬다. 넌 분명 미니멀리스트가 아니야. 한 번 더 못을 박는 동글이. 하지만 두고 보시라. 소소한 나의 장비가 가진 위력을 알게 될 테니.

살림 초보 시절, 예뻐 보이는 바구니를 자주, 많이, 다양하게 샀다. 그러다 보니 사이즈와 모양이 애매한 바구니가 속출했고 결국 바구니 또한 퇴출의 대상이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 시행착오의 시간을 몇 년 지낸 지금. 나름 살림 11년 차의 명찰을 달았다. 이제 예전만큼 바구니를 사지는 않는다. 기존에 보유한 것들만 해도 충분할뿐더러, 굳이 바구니가 아니어도 활용가능한 장비들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 10년 차 미미멀리스트의 소박한 장비빨>

1. 자기 집의 공간과 물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수납함을 따라 샀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공간의 크기와 넣어야할 물건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집 현관 앞에는 애매한 사이즈의 틈새 창고가 있다. 눈품을 팔아 공간에 쏙 들어갈 수납함을 찾아냈다. 무인양품에서. 이 날의 쾌감 못 잊어. 더 이상 약을 찾아달라 묻지 않는 신랑을 보며 흐뭇함은 말도 못 해.

2. 수납 바구니는 색상과 디자인이 비슷한 종류로, 다양한 사이즈면 더 좋고, 되도록이면 적층이 가능한 것을 선택한다. 한 군데에만 활용할 수 있는 사이즈보다는 여기저기 활용 가능한 중간 사이즈를 구매한다.



3. 정리도구를 꼭 돈을 주고 사야 한다는 선입견은 버리자. 스타벅스의 노예로 살아온 세월. 어쩔 수 없이 캐리어를 받아야 하는 날은 그냥 버리지 않고 재활용할 방법을 찾아 자리를 만들어주는 편이다.




4. 리터커피를 사 먹으면 받게 되는 플라스틱통에는 곡류를 보관하는 편. 사각형이라 눕혀 보관하기도 좋고, 세웠을 때도 정리가 간편하다. 입구가 넓어 씻어 말리기에도 아주 훌륭하니 역시나 만족이다.


5. 책꽂이에는 책만 꽂아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길. 지퍼백을 종류별로 보관하기에 아주 좋고, 실리콘테이프로 수납장 문에 붙여도 공간활용에 좋다.


6. 커피를 배달시키면 오는 페브릭주머니.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까워 감자와 고구마, 양파를 보관한다. 적당히 불투명하고 공기도 잘 통하니 나쁘지 않은 보관법이다.


7. 도시락도 장비빨이다. 애정하고 사랑하는 나의 도시락 꾸미기 용품들. 이건 정말 내 탐욕의 결과물이다. 아이에게 예쁘게 밥을 챙겨주고 싶다는 마음에 사 모은 픽, 모양틀, 가위, 핀셋 등등. 사연 많은 이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다이소 약품 보관 상자를 구매했다. 앞치마를 매고 이 통을 펼치는 날은, 마치 왕진 나온 의사마냥 비장한 각오마저 든달까. 잃어버리는 것 없이 몇 년째 잘 사용하는 비결은 뭐니 뭐니 해도 보관통의 덕이 크다.


어차피 청소를 해도 먼지는 쌓이고, 정리를 해도 어지러워지는 것이 살림의 도돌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제 자리를 찾게끔 만드는 게 우리 살림관리사, 주부의 역할일 테다. 나의 수고로움이 다른 이는 물론, 나 자신의 편리함까지 보장해 주는 일. 자부심을 가져 마땅하다. 빈 바구니를 들고 어슬렁 거려보자. 어디다 이걸 놓으면 좋을지.


장비빨 좀 세우면 어떤가. 현명하고 소박한 미미멀리스트여, 새해가 밝았다. 바구니 몇 개쯤 준비해 정리를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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