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가진 월요병 대신 내게는 오래된 지병이 있었으니, 바로 금요병이다. 금요일 저녁은 정리를 하기에 아주 좋은 시간이다. 내일에 대한 부담이 적고, 일주일간 묵은 살림의 잔재가 널브러져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불태워 정리에 쏟는다는 의미에서 이것도 나름의 불금이다. '뭘 좀 비우고, 이걸 좀 옮기고 싶은데.'라는 마음이 고개를 든다. 대정리의 날이 왔다는 신호다.
신랑이 금요일을 두려워하는 이유다. 뭐든 있는 그대로 두는 게 최선이라 생각하는 남편은 가구에 먼지가 쌓여도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 사람. 화장실이 지저분해도 내 몸에 닿지 않으면 크게 불편치 않은 사람이다. 옮기고, 정리를 하는 자체를 즐기지 않는 성향이랄까. 그와 함께 청소를 하려면 우선 이 과정이 우리 가족에게 왜 필요한지 납득시켜야 한다. 목이 마른 내가 우물을 파는 것이 맞다. 침대쯤 옮기는 일이 아니라면 그냥 혼자 정리를 하기로 했다. 그의 몫은 퇴근 뒤에 쳐야 할 박수, 큰 소리의 감탄, 그리고 청소의 산물을 분리수거하는 것 정도로 정해졌다.
지난주에도 정리 의욕에 불금을 보냈다. 미니멀리스트로 가는 길, 다른 말로 비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10살과 2살. 물건에 접점이 없는 8살 터울의 두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서 깔끔하고 휑한 거실을 원하는 건 욕심일까. 첫째 아이가 커감에 따라 새로 입주하는 물건이 많다. 반면에 떠나는 물품은 적으니 함께 거주하는 녀석의 수가 늘어만 간다. 첫째가 쓰던 아이 용품이 다음 순서를 기다리려면 7년을 더 거주해야 하니 난감한 상황도 잦다.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깔끔한 거실을 포기하기는 어렵다. 장기 거주할 물품을 정하고 나머지는 정리해 나가야 한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 했던가. 결국 비우고 또 비우는 과정을 반복하고 나서야 약간의 여유 공간이 만들어졌다. 큼지막한 종이 가방 하나를 꺼내 들고, 부서지고 고장 난 녀석들을 추려낸다. 한가득 접어놓은 미니카도 아끼는 몇 개만을 남기고 안녕이다.
웬만하면 시작하지 말라는 옷장 정리도 시작했다. 서랍 속에 잘도 숨어 있던 반바지가 멱살이 잡혀 올라왔다. 이 구멍 두 개에 각각 내 다리가 들어갔단 말인가. 그래, 이 옷이 재질이 참 좋았지. 입고 바닷가에 놀러도 갔는데. 아, 나의 20대여. 그대는 어디로 갔소.
손바닥에 바지를 올려놓고 반대편 손바닥으로 옷을 매만졌다. 이 바지를 버리면 날씬했던 나의 과거와 이별하는 것 같아 버리려다 서랍에 다시 넣기를 몇 해나 반복했다. 하지만 이제 아무리 살이 빠진 대도 이 손바닥만 한 반바지를 입고 외출할 일은 없을 듯싶다. 안녕, 나의 44. 반바지가 이렇게 정리되었다.
정리의 시작은 ‘비움’이다. 여유가 없는 공간은 아무리 정리를 해도 도돌이표가 될 뿐.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덜 채워가며 살아야 단정한 집이 유지된다. 그런 의미에서 대정리의 날은 곧 비움의 날이다.
대정리라 해서, 비워낸다고 해서 아이들 물품, 옷장, 창고, 주방, 신발장까지 하루 만에 모든 권역을 해결할 수는 없다. 해치우려 해서도 안 된다. 과욕이 몸살이라는 참사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불금의 지병이 재발할 때면 옷장부터 정리하고, 아이들 물건을, 에너지가 조금 남으면 주방을, 그러고도 의욕이 불타면 창고 정리까지. 대정리도 비움도 적당히, 적당히. 영역을 나눠 분배해야 한다. 결국 비움도 삶도 템포 조절이 관건이다.
어차피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는 어렵다. 현실을 받아들이며, 적정선의 비움을 반복하는 것으로 공간을 만들어가기로 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생각할 거리가 많을 때면 서랍장을 꺼내 때 지난 청구서, 영수증, 명세서 등을 정리하는 것.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 낙서 가득한 수첩 등등 의심의 여지없이 버려 마땅한 것들을 착착 찢어 버리고 나면 표현 못할 카타르시스가 있다.
신랑과 다투었을 때, 아이 문제로 심란할 때,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아질 때 물건을 비우고, 닦고, 정리한다. 비워진 공간을 보면 내 마음도 그만큼 비워낸 것 같아 상쾌하달까.
미니멀리스트가 이토록 화두가 되고, 멍 때리기 대회에 그토록 열광하는 데에도 같은 이유가 있다. 우리네 삶은 지금 너무 복잡하다. 도로가, 직장이, 가정이, 마음이 복잡한데 집까지 복잡하니 비워내고 싶을 수밖에. 물건을 비워내고 정신을 비워내려 애를 쓰는 우리네 속사정이다.
물건을 구매할 때의 설렘, 사용했을 때의 추억, 아쉬운 순간에 이게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 왜 없겠는가. 하지만 물건이 몇 가지 사라진다 해서 추억이 사라지지도, 당시의 설렘이 희석되지도 않는다. 우리의 삶은 그게 없어도 큰 불편이 없이 이어질 테니.
매일, 자주, 그리고 금요일이면 비워낸다. 자잘하고 충분히 버릴만한 컨디션의 것들로 말이다. 실은 물건의 비움보다 복잡한 머릿속이 클린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그렇게 생겨난 공간이 매우 미미하고 소박할지라도 나는 내일 조금의 물건을 비워내겠다.
- 미미멀리스트의 비움 공식-
1. 버릴 것을 골라내지 말고, 남길 것을 고를 것
2. 집은 물건의 보관 창고가 아님을 상기할 것
3. 물건은 물건일 뿐, 나의 추억과 물건을 분리할 것
4. 놔두면 언젠가는 쓰일 듯싶은 물건은, 놔둬도 결국 쓰지 않음을 기억할 것
5. 버리는 행위에 집중한 나머지, 꼭 필요한 물품을 마구잡이로 버리지 말 것
6. 공간에 여백이 생기는 정도에 포커스를 둘 것
미니멀은 멀어도, 미미멀은 가까우니
내일의 불금도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