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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Blu Mar 11. 2024

20대가 파이어족을 꿈꾸게 된 이유

2. 가난은 불쌍한 게 아니다.

가난은 불쌍한 게 아니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 나는 물욕이 없는 편이어서 새로운 신발, 가방 없이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천장이 하늘이 돼서 비가 내릴 때는 버티기 힘들었다. 두 개 혹은 세 가지 색이 섞인 패딩이 유행할 때, 노트북이 필요했을 때, 국장 신청을 놓쳐서 입학금을 내야 했을 때. 되려 화를 내는 아버지와 어떻게든 해주려고 노력하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불편했다. 그래서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은 속 안 썩이고 공부에 매진하는 거였다. 어느 에세이 주인공처럼 특출 나게 잘하진 못했지만 나름의 최선이었던 거 같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유독 부족했던 수학만 유료 강의를 단원별로 일부 결제했고 나머지는 EBS의 도움을 받았다. 나름의 최선으로 국립대에 입학했다. 사립학교와 인서울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자취를 할 깜냥이 없었다. 

     

 밤낮없이 컴퓨터를 보며 피로해하는 공대생을 선망하며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적성에 맞지 않아 2년 간 방황했다. 적성에 안 맞아 전과를 하고 싶었는데 전과를 하려면 학점이 높아야 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손에 쥔 시간이 모래처럼 흘러내렸다. 열등감과 조바심으로 밑바닥을 경험하고 3학년 때, 한 번 더 다짐을 했다. 이번 학기 3.5를 맞추지 못하면 자퇴하든, 포기하든지 하자고. 수업 때 교수님이 말하시는 걸 모두 받아 적은 후 블로그에 올렸다.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나? 그 학기에 목표학점을 넘기면서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었다. 종종 물을 주고 무럭무럭 자라길 매일같이 바랐다.      


 대학원에서 학부연구생도 하고, 서울에 올라가 친구가 살던 고시텔에 몰래 들어가 자다 걸리기도 하면서 대외활동도 열심히 했다. 해커가 멋있어 보여서 보안으로 가고자 했다. 하지만 보안이야 말로 컴퓨터에서 가장 어려운 부문이었다. 고인물들도 많았다. 내가 이해하느라 끙끙 앓는 문제를 보자마자 풀어버리는 인재들을 보면서 대학교 졸업반인 난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길이 맞나?’. 그렇게 난 마지막 학기를 앞둔 겨울방학에 진로 선택의 기간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고민을 했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내가 보안을 할 수 없다면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뭘 좋아하나.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 수도 없는 갈림길 사이에서 고민했다. 회사를 신발 갈 듯이 바꾸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때마다 무너지던 집을 보았다. 평생직장이라는 마음으로 공기업을 가기로 했다. 돈 많이 주는 금융권으로 가자. 마지막 학기는 현장실습으로 학점을 채웠는데 1시간이 넘는 통학을 하며 주 5일, 9시부터 6시까지 회사를 다녔다. 퇴근 후엔 12시까지 흔히 말하는 취업준비를 했다. 22년 6월, 취직에 성공했다. 백 명이 넘는 동기 중 막내였다.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너는 사기업 가서 이직하면서 커리어 쌓을 줄 알았어’다. 그만큼 열심히 살았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치열하게 살아온 나의 이십 대 초반을 뒤돌아보면 왜 그리도 초조했을까 싶다. 잘하고 있다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취직한 후 눈물을 보이던 언니와 날 안아주던 오빠, 환하게 웃으시던 어머니의 표정은 입사 후 힘들었던 나를 매번 일으켜 세워줬다. 앞으로도 난 그날을 잊지 못할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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