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잼으로 위로받아야 하는 시공사 견적서
시공사 견적 비교에 대한 단상
첫 번째 집을 지을 때의 일이다.
시공사 미팅을 두 개 하고 나서 남편과 둘이 시공사에 대한 열띤 토론을 늦은 밤까지 벌였다.
시공사의 견적서에서 굵직한 것만 보면 공정별 항목마다 재료비, 인건비가 있고 마지막에 총금액의 몇 퍼센트를 회사 이윤으로 가져가겠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다. 어떤 시공사는 재료비가 더 비싸고 어떤 시공사는 인건비가 더 비싸다. 회사 이윤을 5%로 잡아둔 곳도 있고 7%로 잡아둔 곳도 있다. 이윤을 더 많이 남기는 시공사가 더 비쌀 것 같지만, 실제로 이윤을 많이 잡아둔 시공사의 견적이 심지어 조금 더 저렴했다. 두 공대생은 머리를 맞대고 공학 수학 문제를 풀 듯이 이 난제를 풀려고 애를 써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결국 나는 악마의 잼 누텔라가 절실히 필요한 상태가 되었다.
시공사 견적서를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이상했다. 건축이란 것이 생소한 영역이라 공정에 대해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신랄한 반박을 할 수는 없었지만, 재료비도 너무 비싸게 책정되어 있는 것 같고 인건비도 정말 이렇게나 많이 들까 싶었다. 수많은 항목이 있었는데 각각의 항목이 제대로 책정된 금액인지 따져볼 방법은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결국 시공사에서 필요한 만큼 달라는대로 줄 수밖에 없고 돈이 이만큼 들었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결국 상세견적이란 건축주에게 의미가 없어지고 총견적가만 남게 된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건축 견적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다른 건축주의 시공사 비교견적 표를 발견했다. 지방에 집을 지으신 어떤 분이 올려놓은 정보에 의하면, 시공사마다 세부내용은 다르지만, 네 곳 중 세 곳의 견적이 똑같더라는 것이다.
무릎을 탁 쳤다.
시공사들은 얼추 집의 규모를 보면 총견적가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상세견적이란 단지 총견적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숫자놀음일 뿐인 것은 아닐까?
시공사에 견적 의뢰를 할 때 견적용 도면을 보내게 되는데, 그 도면을 보면 집의 면적이나 형태, 외장재 등의 굵직한 비용들이 계산되기 때문에 이 정도면 평당 얼마쯤 하겠군 하고 총견적가를 정한 후 그것에 맞춰서 세부항목의 비용을 넣는 방식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업체는 재료비가 인건비보다 높고, 또 어떤 업체는 인건비가 재료비보다 높고, 또 어떤 업체는 이윤을 높게 잡아두었지만, 결국 총견적가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이 추측의 결론은 건축주가 각각의 업체의 상세견적을 아무리 비교해봐야 그건 그냥 그들의 퍼즐 맞추기일 뿐이라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시공사의 내부 사정을 모르는 초보 건축주의 추측이다. 실제로 A시공사가 다른 곳에 비해 재료를 싸게 납품받고 좋은 인력을 써서 비싼 인건비를 냈을 수도 있고, B시공사가 지료를 비싸게 납품받는 대신 시공팀을 싸게 써서 인건비를 절약했을 수도 있다. 혹은 A, B 모두 재료비나 인건비에서 조금의 이윤을 더 남기는 걸로 계산해놨는데 C시공사에서는 그 부분은 투명하게 하고 견적서의 이윤 부분을 아예 높게 잡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아마 시공사를 운영하는 비밀이 없는 절친만이 해줄 수 있지 않을까?
불행히도 나에게는 그런 친구가 없지만 말이다.
시공 견적서의 진실은 비밀의 방에 갇혀있지만, 이 사실로 깨달은 것은 있다. 시공 견적서를 토대로 시공사를 선택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시공사는 이윤만 많이 남기고 재료비는 적게 쓰니 재료비가 더 비싸고 이윤이 적은 시공사가 우리 집에 더 좋은 자재를 써서 이윤을 조금 남기고 지어줄 거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두 번째 집을 짓고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이 총 견적가라는 것도 우리 집의 면적이나 형태, 마감재만 보고 계산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공사의 사정에 따라 같은 면적, 같은 형태, 같은 마감재를 써도 견적가는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어느 택지지구가 이제 막 분양이 끝나서 허허벌판인 채로 있다고 하자. 만약 우리 집이 그 택지지구에 초창기에 짓는 집이라면 시공사는 나머지 아직 짓지 않은 건축주들에게 홍보하기 위해 우리 집을 짓고 싶을 것이다. 이런 경우 시공사는 아주 착한 견적을 줄 수도 있다. 혹은 근처에 시공사가 비슷한 시기에 시공하는 집이 있다면 그 또한 시공사가 착한 견적을 주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혹은 건축가와 시공사의 관계에 따라서도 시공비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건축주는 본인이 갑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실제로 시공사에게 있어서 갑의 위치는 건축가이다. 보통 건축주는 한번 집을 짓고 말지만, 건축가는 여러 집을 설계하며 건축주들에게 시공사를 추천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세상을 몰랐던 순진한 공대생은 그저 산술적인 부분만 체크를 했었는데 세상은 그것보다 더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공 견적서는 불필요한 것일까?
시공 견적서를 꼼꼼히 봐야 하는 이유는 추가 비용을 낼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함이다. 공사하다가 건축주의 요구에 의해 변경하거나 추가된 부분에 대한 추가 비용은 그야말로 달라고 하는 대로 줘야 하는 비용이기 때문에 시공 견적서를 꼼꼼히 체크하여 상세하게 자재까지 명시하고 되도록 추가 변경하는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