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 스스로 작가로 정의를 내려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다. 바로 내 책이 발간되었거나 혹은 책을 홍보할 때. 내가 아무리 글을 쓴다 한들 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아주겠는가. 필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스스로를 '작가'로 정의할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내 마음 한쪽은 무겁고 답답하다. 당당하지 못하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이런 생각들이 내 몸의 세포들 곳곳에 퍼져 나만이 눈을 허공에 보고 모르는 척하고 있을 때 우연히 김겨울 책에서 나에게 필요한 문장을 발견했다.
p.119
내 안에 자리잡은 고정관념으로서의 작가는 예리하거나 예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실을 예리하고 날카롭게 직시하여 은폐된 진실을 드러낼 것이고, 세상과 자신의 진실을 예민한 촉수로 느낌으로써 시대를 앞서서 감지할 것이다. 그것을 설령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거나 의도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은 타인의 서사를 통해 자신을 고취하지 않는다. 그들은 보기 좋은 글로 면피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르는 대상을 타자화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사실 이건 그들이 아니라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
그 무엇보다도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 다른 모든 것에 앞서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사람, 그것이 작가라면 지금도 작가이고 앞으로도 작가일 테지만, 어쩐지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빚이 쿡쿡 쑤셔온다. 그것은 내가 평생 읽어 온 책에 진 빚이거나, 혹은 나의 세상을 열어준 사람들에 대한 존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겨울 『책의 말들』 p.119
내가 생각하는 정의
- 글을 쓰고 싶은 사람
- 글을 쓰는 사람
- 글을 좋아하는 사람
어느 날 계정의 카테고리를 정해야 할 날이 있었는데, 딱히 맞는 곳이 없어 가장 눈에 잘 보이는 작가를 선택했다. 그런데 보일 때마다 거슬리는 이유는 아마도 김겨울처럼 내가 평생 읽어 온 책에 진 빚 혹은 나의 세상을 열어 준 사람들에 대한 큰 존경이 담겨서인 듯하다.
그러니, 너그럽게 봐주시길.
그저 쓰고 싶은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