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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rilim Apr 25. 2024

봄기운 가득 담은 숨을 드립니다.

메리

  두루 작가님께.     

  잘 지내셨나요? 가끔 작가님의 SNS 피드를 보면, 오늘은 어떤 아름다운 장면을 담으셨나 보게 됩니다. 아마도 마음에 닿은 짧은 그 순간을 담으신 것이겠지요? 아니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느끼기엔 아름다우니까요.

  한국에 돌아오니 추운 겨울은 가고, 분홍 분홍한 벚꽃이 펴있는 봄이 왔어요. 입고 갔던 패딩은 접어서 가방에 넣고, 버스를 탔습니다. 동탄이 그리웠어요. 짧지만은 않았던 4박 6일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두루 작가님은 친구 분과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오셨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제가 편견을 가졌었나 봅니다. 작가님은 집에 있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요(웃음). 물론, 왕성한 활동을 하시느라 하루에도 이곳, 저곳, 홍길동처럼 새로운 곳을 다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작가님의 휴일에 대부분은 집에서 보낸다고 하셨던 기억이 나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평소에 열일을 하시니, 쉴 수 있을 때는 편히 쉬시고 싶어서였음을 짐작해 봅니다. 

  

  저는, 유럽은 가보고 싶었지만 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어요. 그런데, 일생일대 처음으로 유럽을 출장으로 가보다니, 그것도 이탈리아를요. 혹시, 작가님 “EAT PRAY LOVE"이 책을 읽어보셨나요? 2007년에 나온 책이니까,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또는 중학교 3학년 때 읽은 것 같네요. 이 책에 빠져버린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이 책은 에세이로 배경은 뉴욕, 이탈리아, 인도, 발리를 배경으로 합니다. 뉴욕에서 성공한 작가로 살고 있던 주인공 리즈는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해 이혼을 합니다. 행복하지 않았던 리즈는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리즈는 원래 뉴욕에서 살았고, 이탈리아 로마를 여행할 때는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인도의 아쉬람에서는 명상을 통해 수행을 합니다.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결국,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내 안의 ‘나’와 내가 서로 대화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삶 속에서의 나를 바라보는 것을 결국 깨닫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이 좋아서, 이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개봉했을 때 바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에서는 줄리아로버츠가 열연을 펼치지만, 책만큼 재밌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이탈리아에는 꼭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소매치기가 많다는 썰은 많이 들었지만, 무언가 자유로울 것 같고, 내 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출장으로 이곳을 오다니 행운입니다만, ‘나’에 집중하기보다 ‘업무’에 집중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몸살 기운이 있었는데, 이탈리아에 도착하니 더 심해졌습니다. 이상해서 코로나 키트를 해봤는데, 코로나에 걸렸더라고요. 어쩐지 한국에서 가져온 감기약을 먹어도 점점 더 병이 악화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출장기간 동안 큰 아픔 없이 잘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신기한 경험도 했는데, 예전에 다녔던 회사 동료들을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제가 담당했던 거래처 분들도 만났습니다. 정말 작은 회사였었는데, 큰 성장을 이룬 그들을 보고 기쁘기도 하고, 가슴도 벅찼습니다. 그들의 성실함은 이미, 일찍이도 알았으니까요. 3-4년 사이에 많은 것이 변한 우리를 바라보며 놀랐어요. 그리고 민망하기도 했어요.

  옛 동료 중 한 분이랑 친했었습니다. 회사를 관두고, 따로 본 적도 있고 저에게 늘 베풀어 주신 동료였어요. 나이는 저보다 많았지만, 항상 저를 존중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음에 꼭 보자고 해놓고, 연락을 못했어요.

  바쁘기도 했지만, 부담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고, 서로 너무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볼 수 있는 기회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마음 한편에는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카카오톡의 생일 알림이라던가, 프로필 업데이트 만으로 도요. 그리고 그분이 새로 만든 브랜드의 성장을 바라보면서 마음으로나마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뿌듯해하면서요. 

 

   그분을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된 건, 점심 식사 자리입니다. 밥을 먹고, 치우려고 쟁반을 두러 갔다가 돌아오는데, 갑자기 그분이 저의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소리치셨어요. 서로 깜짝 놀라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좀 나누고 왔어요. 그러면서도 민망했어요. 제가 먼저 연락하지 못했어요.

  내면에서는 또 한 가지 생각도 있었습니다. 제가 연락하고, 붙잡힐 인연인가에 대한 생각이요. 그래서 너무나도 좋은 분이신 것은 알았지만, 선뜻 그분의 삶에 제가 없어도 너무나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감사함에도 연락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결국, 이렇게 돌고 돌아 만나다니.

  가끔 세상은 저에게 뒤통수를 때리는 것 같습니다. ‘네가 아는 게 다가 아니야.’라고 말하면서요. 그리고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정말 인연은 있는 것이라고요.

  아쉬웠던 인연을 이번 출장에서 다시 만나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아마도, 작가님도 오랜만에 연락 온 지인 분들에게 이런 마음이시지 않았을까요? 그 두 분도 연락한 그 둘의 마음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는 사람이었을 테니까요.

 앞으로 저도 작가님도, 우리 모두 조금 용기 내어 생각나는 사람에게 연락해 봅시다. 사실, 저희가 연락하더라도 상대는 저희를 잡아먹거나 해치지 않을 거예요.

 혹시나, 상대가 성가셔한다면 앞으로 안 하면 됩니다(단호).  

  몇 년 전만 해도 먼저, 사적으로 연락도 잘하고, 상대가 받지 않더라도 굴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저는 지금 보면, 변한 것 같습니다. 사회를 배운 것인지, 어떠한 깨달음이 있어서 변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지금 저의 모습은 언제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모습이 살짝? 아쉽긴 한데, 이런 저도 좋습니다. 저라도 제 자신을 좋아해 줘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두루 작가님도 유럽 여행이 이런 여행이었나요? 아니면 어떤 여행이셨나요? 비행기를 놓칠 뻔 한 아찔한 여행의 시작으로 어떤 경험을 하고 오셨나요? 따스한 봄을 맞이하여 두루 작가님은 어떤 소풍을 다녀왔을지 궁금하네요.      

  

  지금은 벚꽃 축제들이 끝마칠 시기입니다. 봄이 오면 설레고, 가슴이 뛰는데 이렇게 금방 가버릴 때마다 아쉽습니다. 좋은 계절은 늘 짧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덥고, 추운 계절은 길게 느껴지는데….

  막상 벚꽃을 좋아하면서 유명한 스폿인 여의도에 가지 않을 거지만, 집 앞에 핀 벚꽃을 바라만 보아도 좋아요. 코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흉추가 확장되어 가슴의 시원함을 깨워주는 것 같습니다.

  숨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어 몸 안의 열을 빼내어 보세요. 시원함을 바라보면서 고요한 호흡을 느껴보세요. 짧은 봄의 여운이 몸 안에 미세하게 더 느껴집니다.

  요가에서 호흡은 매우 중요합니다. 호흡의 길이가 생명의 길이라고도 하지요. 목숨이라고 하니까요. 여기서 숨이 우리의 숨입니다.  

 더 많이 사랑하며 살고 싶은 작가님, 우리 숨 좀 길게 쉬면서 결코 작지 않은 존재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더 오래오래 사랑하며 살아보아요.


 봄기운 가득 담아 사랑을 드립니다.     

2024년 4월 8일 

메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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