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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rilim Apr 17. 2024

더 많이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두루

  메리 님께.


  해외 출장은 잘 다녀오셨는지 모르겠네요. 출장 준비와 바쁜 업무 일정을 소화하기에도 바쁘셨을 텐데 그 와중에도 정성스럽게 답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늘에서 쓴 편지를 읽고 있자니 괜히 감동적인 기분이 들었어요. 늘 바라만 보던 하늘에서 누군가가 꾹 눌러 담은 마음이 참 감사해 마음이 따스해졌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저도 비행기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니 다양한 추억이 있더군요. 그중에서도 특히 대학 시절 휴학을 하고 2교대 공장에서 번 돈으로 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였어요. 친구와 함께 간 여행이었는데 당시 해외라고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저는 친구에게 이것저것 도움을 참 많이 받았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니 백까지 기대기만 하는 친구가 짜증이 났을 법도 한데 친절하고 다정하게 도와주었던 친구에게 새삼 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튼, 어찌어찌 출발 날이 되었고 친구와 저는 비행기를 타러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여행의 묘미는 변수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유 있게 1시간 전에 도착한 우리는 여유롭게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친구가 잠깐 이리저리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보더니 큰일 났다고 하는 겁니다. 저는 영문을 모르고 무작정 뛰는 친구를 따라 뛰었습니다. 알고 보니 비행기를 타는 곳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할 만큼 멀었던 겁니다. 그래서 미리 그곳까지 가서 대기를 해야 했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먼 곳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어떻게든 뛰어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에서는 우리를 애타게 찾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생각하면 참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살면서 그렇게 빨리 뛰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달려 비행기를 겨우 탈 수 있었습니다. 시간으로 보면 아주 늦은 것은 아니었고 정말 출발 직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직원분들과 승객분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생각에 출발부터 마음이 참 좋지 않았지요. 그렇게 저의 첫 해외에 대한 기억은 비행기에 대한 강렬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유럽에서의 느낌은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처음이라는 특별한 경험이기도 하거니와 무언가 내 의지대로 선택하고 행한 큰 사건이었기 때문이었죠. 워낙 겁도 많고 걱정도 많은 탓에 뭘 쉽게 잘하지 못 하는데, 휴학을 하는 2년 동안은 이런 답답한 태도를 고치려고 부단히 도 노력했었거든요. 그때 했던 많은 것 중 아주 큰 프로젝트에 해당하기에 제게는 이때의 경험에서 아직도 많은 것을 배운답니다. 나중에 또 기회가 된다면 휴학 때의 일도 이야기해 볼 날이 있으려나요.


  지금은 그때와 비교해서는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  친구는 이미 결혼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잘 살고 있습니다. 저는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있지요. 그 친구가 부담스러울까 봐서도 있고 뭔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기도 했습니다. 음, 뭔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먼저 누군가에게 연락하기가 참 어렵더군요. 그것이 가족일지라도 저는 이 연락이라는 것, 그러니까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어떤 장치 중에 하나인 이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살갑게 사람들을 잘 대하지 못하기도 할뿐더러 뭔가 억지로 연락을 해 관계를 유지하는 게 피곤하다고 느끼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릴 적에는 이것이 귀찮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 삶 살기 바빠 누굴 챙길 여건도 되지 않았기도 했고요. 한 편으로는 나 밖에 몰랐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어요. 뭐, 어떻게 표현을 하든 상관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이유로 여전히 연락이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때보다는 나이를 먹은 지금은 연락이라는 것이 때로는 상대에게 부담을 주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 크게 다가옵니다. 뭔가 필요하거나 어떤 중요한 날에 초대한다거나 하는 식의 연락을 몇 번 받다 보니 저도 괜히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면 이런 생각부터 드는 것을 깨닫고는 저의 연락 또한 누군가에겐 이렇게 비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령 그것이 정말 진심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어쩌면 이것 또한 저의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복잡한 생각이 들 때에 저는 보통은 포기를 하고 맙니다. 불안과 걱정의 원인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지요. 그런 결과로 지금도 연락을 참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최근에 굉장히 신선한 사건이 벌어졌어요. 오랫동안 연락을 않던 지인들에게 연락이 온 일이었죠. 취업 준비를 하던 대학 4학년 시절, 서로 마음을 나누며 함께 고생하던 친한 형에게서 온 연락. 그리고 첫 번째 직장을 3개월 만에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가 다시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때에 심적으로 많은 힘을 주었던 후배. 이렇게 두 명의 지인에게서 거의 같은 시기에 오랜만에 연락이 왔던 것이었죠.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는 제 말에 둘은 '그냥 생각나서, 안부가 궁금해서'라며 잘 지내냐 물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은 뒤의 고요 속에서 저는 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진심이 또 저를 깨닫게 했습니다. 나는 그 어떤 핑계를 대며 연락을 회피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나. 이렇게 그냥 연락을 해서 보고 싶었다고 잘 지내는지 궁금했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 거였는데. 나는 이 말이 그토록 어려웠나.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이 들어 한 동안 멍했습니다.



  제게 누구보다 잘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 또한 메리 님의 생각이니 존중합니다. 이제는 정말 그러한지는 별로 중요하지는 않아 졌습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 더 행복의 조각들을 찾아 한 번 더 웃고 껴안고 느끼고 만끽하는 것이 그저 좋습니다. 제가 그토록 외치고 있던 '잘 살고 싶다'는 말이 지금 생각해 보면 '잘 살아남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삶보다는 죽음을 향했던 때에 그 반대로 달리며 외치는, 생존을 위한 주문 같은 것이었을지도요. 그러나 지금은 이 말이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제게는 큰 물음표입니다. 삶을 향하는 지금은 이제 생존은 걱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죽지 않는 방법은 이제 어느 정도 터득한 것 같거든요. 그러나 아직 삶을 향하는 데에는 미숙한 제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것은 도통 어려운 것들 뿐입니다.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이젠 충분히 알겠고, 참 어설프고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도 이제는 잘 알겠습니다. 특출 나게 잘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무언갈 엄청 좋아하는 것도 없어 아직도 무얼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도 이제는 이해했습니다. 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직 알아가야 할 것이 산더미이지만 그래도 삶을 이끌어가야 하는 이 몸과 정신, 마음에 대한 이해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이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바로 이것이 제게는 이제 큰 숙제입니다.


  메리 님께서 말씀하신 멋진 스승님은 아마도 먼저 이 험난한 세상을 걸어가신 어른이시겠군요. 제게도 이런 어른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무언갈 가르침을 받고 싶다기보다 먼저 걸어간 그들의 길에서 조금의 힌트라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어떤 삶의 면면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평생 복잡하고 어려운 숙제들을 풀어가며 각자의 답을 만들어가는 것이겠지요. 이 세상 모든 답을 저는 존중하고 존경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요즘 더욱 모든 이에게서 힌트를 얻고자 노력합니다. 먼저 걸어간 이들의 지혜를 빌려 나의 인생에도 대입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모든 이가 제게는 스승님입니다. 제게 모진 말을 내뱉는 사람조차도 재게는 힌트를 줍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누군가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습니다. 또, 남을 해치고 나아가려는 자에게서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제게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힌트를 주는 것입니다.



  메리 님, 제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다시 돌아와 잠깐 숨을 돌리고 싶네요. 반려동물이 있냐는 질문에는 저와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부리'를 소개해 드리고 싶군요. 지금도 옆에 앉아 작업을 방해하는 귀여운 녀석을 저는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녀석도 저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싶네요. 이전에는 어떤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나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사랑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했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내 곁의 모든 것을 사랑하려 노력하려고 합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후로는 시야가 넓어지더군요. 보이지 않던 소중한 것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내가 안고 사랑해야 하는 것들.

  결코 작지 않은 것들.

  늘 내 곁을 지켜주던 사랑해 마지않는 존재들.


  저는 더 많이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싶은 만큼 나의 곁의 존재들도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습니다. 가끔은 참 어렵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진심을 다해 세상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제 이야기가 길었지요. 요즘의 제가 그만큼 생각이 많았었던 것 같아요. 부디 너른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안하신 등산은 시간이 허락된다면 함께 가도 좋을 것 같네요. 저 또한 그리 체력이 좋지 못하기에 어쩌면 속도가 잘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시간은 날이 좋을 때 언제든 괜찮습니다. 편히 말씀해 주세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 가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024년 3월 31일

  두루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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