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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rilim Apr 10. 2024

바라만 보던 하늘 속에서

메리


  두루 작가님, 안녕하세요.

  건강이 많이 나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몸이 아프면, 씻는 것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쉬운 게 없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새해 소원에 꼭 ‘건강’이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가님. 우리는 매주 일요일마다 편지를 주고받기로 정하고 나서, 저도 밤 12시가 넘겨 보낸 적이 있습니다만, 작가님은 저번 주에 일요일이 훨씬 지난 월요일 새벽 6시쯤 답신을 보내주셨어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요.

  

  메일 함에 작가님의 답신이 온 것을 진작에 알았지만 열어보지 않았습니다. 아껴두었다가 하늘 속에서 쓰려고요. 그러니,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정도의 여유로움과 융통성은 갖은 어른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작가님이 완벽한 분이 아니라고 친히 여러 번 말씀하시니, 알겠습니다. 이제 여기에 대해서 반박하지 않을게요. 지…. 독하십니다. 지독하다기보다는 곧은 대나무 같으셔요.

  

  요즘 하루에 한 번씩 하늘의 사진을 찍곤 하는데, 평소에 바라만 보던 하늘 속에서 글을 쓰려니 기분이 이상하네요. 사실은, 해외 출장으로 이탈리아 볼로냐에 가게 되었습니다. 해외 출장을 간다고 하면 한번쯤은 들어본 ‘좋겠다!’라는 소리가 떠오르네요(웃음). 현실과 상상은 차원이 다르니까 부디 부러워하지 말아 주세요. 속으로는 눈물 나게 오기 싫었으니까요(웃음). 이탈리아의 볼로냐로 가려면 한 번에 가는 직항이 없기 때문에 경유해서 가야 합니다. 먼저 파리에 내려서, 1시간 정도 대기 후 환승해서 플로란스로 가는 일정입니다. 파리로 가는데만 약 14시간 반 정도 시간이 걸리니, 눈앞이 캄캄하더라고요.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높이 높이 날아라 멀리 머~얼리’라는 노래 아시나요?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님도 저와 동년배이시니까요. 어렸을 때는 이 노래만 부르면 파란 비행기가 타고 싶었어요. 마치 꿈을 꾸다가 비행기만 타면 꿈을 이룰 것만 같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어서는 비행기 타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편리한 교통수단인 것은 분명한데, 장시간 비행은 아직 너무 힘들어요.

  

  중력의 힘은 너무나도 대단함이 틀림없습니다. 저는 몸이 하늘 속에 있으면, 온몸의 있는 혈자리들이 문을 점점 닫아오는 것 같고, 다리가 붓고, 귀도 먹먹하고 여러 가지로 삐걱거립니다. 역시, 하늘은 바라만 보는 것이 좋았던 것입니다. 그래도 이런 장 비행 속에서 작가님의 편지를 보면서, 답장을 쓸 생각에 마음속의 위안이 생겼어요. 그래서 화요일 밤, 두루 작가님의 답장을 컴퓨터에 저장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수요일 한국 시간으로는 8시 43분, 하늘 속에서 답장을 쓰고 있습니다.

  요즘 뒷산에 가셔서, 운동을 하신다고 하니 작가님의 다리 근력은 걱정할 필요 없겠네요. 저는 하루에도 10시간 넘게 사무실에 앉아 있으니 햄스트링은 점점 줄어들고, 배는 점점 나오고 있습니다(웃음). 그럼에도 살아보겠다고(?) 출근 전, 후로 30분씩 요가를 합니다. 언제 이 굴레에서 벗어날지 모르겠지만 일단, 목표는 세웠습니다. 좀 더 건강한 식사를 챙기고, 운동 시간을 늘리기로요. 우리, 다음에 만날 때는 같이 산에 가보는 건 어때요? 물론, 저는 등산을 전혀 못합니다만, 작가님의 참을성이라면 저를 보듬어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월 말, 혹은 5월 초에 시간이 되신다면 알려주세요. 평일도 괜찮습니다.

  뒷산의 아름다운 나무들과, 꽃들의 생명의 활력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하셨는데, 저에게도 제주도의 짧은 여행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집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는 이사 오고 나서, 식물을 두고 싶었는데 저의 게으름이 한몫하기도 했고, 식물이 있으면 잘 키울 자신도 없었고, 벌레도 걱정이 되었고, 집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반려 식물을 들이려고 신중하다 보니 약 1년은 넘게 선물 받은 선인장 말고는 식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사촌 동생이, 집들이 선물 겸 커다란 공기정화 식물을 선물로 주었어요. 그즈음에, 저의 짝꿍 생일을 맞이하여 반려 물고기 ‘베타’를 키우기 시작했고요.


  어느덧 반려 물고기 ‘베타’를 위해 매일매일 쌓여가는 이끼와, 어두 컴컴해지는 물로 매주 한 번은 물을 갈아주고, 매일 저녁밥을 챙겨주고 있습니다. 사촌 동생이 사준 반려 식물에게는 매주 한번씩 물 한 바가지 퍼와서 부어주어요. 쏴-아 하고 비가 내리는 것처럼. 무럭무럭 자라서, 아래 새로운 싹이 돋았습니다.

  최근에 어머니가 저의 생일 축하 겸 집에 오셨었는데, 집이 아늑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뭐가 바뀌었는지 모르겠는데, 집이 더 뭔가 푸근하고 아늑해졌다고요. 새로 산 가구도 없고, 커튼도 그대로인데 뭐가 변했나 생각해 보니 반려 식물과, 반려 물고기가 떠올랐습니다. 이 두 친구 덕분에 우리의 삶의 공간이 좀 더 생명력 있고 활기찬 것을요.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저는 꼭 소파에 푹, 꺼진 풍선처럼 누워서 ‘베타’를 바라봅니다. 누워있기 때문에 베타는 저의 뒤집어진 눈을 바라볼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주인을 알아보고, 어항에서 제가 오면 제 쪽에서 머뭅니다. 그러면 제가 말하죠.

‘너 밥먹이려고 엄마가 고생했어.’

  사실, 베타의 밥은 정말 얼마 안 하는데(웃음). 베타가 저한테 다가오면 말을 걸고 싶어 져요. 동물이 주는 교감과 위안도 정말 큰 것 같아요. 작가님도 반려 동물이 있으신가요?

  

  오늘 아침에 뉴스를 보았어요. 어떤 분이 예전에 고등학생 시절에 교보문고에서 책과, 문구용품을 여러 번 훔치다가 한 번은 걸려서 아버님이 책값을 물어주셨다고요. 그러면서, 나이가 드시고 애 둘을 키우시는데 삶에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죄송하다는 편지와 함께 100만 원을 봉투에 담아 교보문고에 두고 왔다고요.

  

  이 기사를 보면서 저도 나는 부끄러운 적이 없는가 생각해 보았어요. 새어볼 수 없을 만큼 많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시험점수 숨기기부터, 학원 빠지기 같은 것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남자친구 몰래 만나고, 친구들과 약속을 가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하고. 그런데, 이런 과정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을 거예요. 부끄러움 속에서 많이 배웠거든요. 지금은 무엇이 중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어요. 그래서 부끄러움은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 안에 있을 거예요.

  

  저도, 작가님처럼 얼른 서른이 되고 싶었어요. 10대에도 그랬고, 20대에도 그랬고, 저는 항상 30대가 되고 싶다고 말했어요. 30대는 뭐랄까, 뭐든 할 수 있는 나이 같아서요. 아무런 제약이 없고, 자유 분방한 멋진 나이 대라고 생각했습니다. 멋진 구두를 신고, 직장을 다니는 상상은 하지 않았고, 30대가 되면 제 몸 하나 건사할 수 있는 능력이 제게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 속에서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이 늘 함께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친했던 사이가 멀어지기도 하고, 멀었던 사이가 가까워지는 관계들이 형성되었고 이 혼란 속에서 30대의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30대 직장인’이란 능력치를 보여주는 나이대의 직장인으로, 회사에서 보면 가장 써먹기도 좋고(일의 경험치가 있다 보니), 직장인 본인은 회사에서 역량을 펼칠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바쁘고, 빠르게’ 지나가다 보니, 이 삶 속에서 나와의 시간,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것이에요.

  노년을 편하게 보낼 생각에 지금 열심히 일한다고 하지만, 노년이 되어서는 막상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지금도 비행기 타는 것이 힘든데, 나이가 들면 더 힘들지 않을까요?, 건강과 시간과 맞바꾼 직장인의 삶이 꼭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니까요.

  요즘 일의 형태는 너무나도 다양해져서, 꼭 ‘회사에 출근하는 것’만이 직장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영상으로 접하는 많은 사람들의 일터를 보면 집부터, 카페, 도서관 등 다양하고 다채로워요. 

  그래서, 시원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작가님은 누구보다 잘 살아가고 있다고요.


  지적인 소양과, 교양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시고 있으니까요. 부끄러울 줄 아는 삶을 살면서, 자신의 일도 척척 해내시고 계시니까요. 거기다가, 뒷산에 오르면서 다리근력도 키우시니 멋진 중년으로 가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관리는 자신과의 싸움인 건데, 이것만큼 제일 힘든 게 없으니까요. 제일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런 부류의 사람을 ‘갓생’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것도 정답이 없는 부끄러움 속에서 우리는 모두 정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끄러움을 요즘도 고민하고 계시다는 분이 있으시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저에게 오랜 스승님이 계십니다. 저의 부모님과 비슷한 또래이신데, 참 어른이시거든요. 한 번은 그 스승님을 바라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역사책에서 말하는 지식인들과 신인세력이 있다면 바로 그 스승님이라고요. ‘하늘에 한점 부끄럼 없이’ 이런 시가 있듯, 지식인들은 부끄러움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스승님이 그랬어요. 앞으로 빨리 가야 해서 뛰려고 하는데, 앞에 다리를 절면서 가는 할아버지가 계셨다고. 그런데 그분을 앞질러 걸으려고 하니, 스승님의 양심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볼 낯짝이 없어 민망하셨다고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순간도, 스승님은 당연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루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면, 저의 오랜 스승님이 떠올라요. 


  하늘 속에서 글을 쓰려니, 점점 정신이 희미해지는 것 같아 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도 부끄러움에 사무치며 한 뼘 더 성장하고 있을 두루작가님, 다음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


2024년 3월 20일 

메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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