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두루작가님께.
안녕하세요. 작가님, 오랜만에 답장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습니다. 잘 지내시고 계신가요?
벌써 6월 중순인데, 비도 오고, 무더위가 찾아온 것을 보니 올해 여름은 작년 여름보다 시작이 빠른 것 같아요.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평화롭고 한가로운 일요일이죠.
작가님이 종교가 없다니 조금 놀랐습니다. 당연히 불자인 줄 알았어요(웃음). 무언가 모르게 무소유를 외치는 작가님이 어느 절에 계실 것 같았습니다. 역시, 저는 맞추는데 소질은 없나 봅니다. 작가님이 “그 누구도 내 삶을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일찍 깨달아버렸다”는 말에 가슴이 저릿해져 옵니다. 요즘은 제가, 그 사실을 깨닫고는 혼자 서기 위해, 지인들과 연락을 의식적으로 줄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외톨이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사람에게 기대지 않는 힘을 기르는 중이에요.
작가님이 신뢰를 같지 않고 사람들을 NPC로 처음 대한다는 말씀을 저는, 전 직장 친한 동료에게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맞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NPC로 생각하라고. 그 동료의 이런 정신력이 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 저는 그럴 수 없었거든요.
새로운 사람이든 주변의 사람이든 저는 우선 좋게 바라봅니다. 편견 없이, 그 누가 뭐라 하든 그 사람을 내가 겪어보지 않으면 쉽게 판단하지 않아요. 제 나름의 ‘정의로운’ 면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이 있나 봅니다. 그래서 한두 달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저의 생각은 또 변해요. “나랑 안 맞아 혹은 나를 좋아하지 않아”라고요. 물론, 이런 말보다는 마음의 상처를 더 입곤 합니다.
그 사람에게 저는 중요한 사람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 사람에게도 제가 중요한 사람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 일은 매번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두가 쉽게 믿음을 주지도 않고요. 삼십 대 중반이 다되어가는 이 시점에 우스갯소리겠지만, 이런 마음이 저의 마음에 큰 대로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던 것은 아닌데, 제가 어떤 계기로 이런 마음을 먹은 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외롭더라도 혼자 서는 법을 길러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심심하다고 친구에게 연락하지 않고, 답답하다고 동료들에게 말하지 않고, 그렇게 몇 주간을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맞지 않은 옷을 끼어 입은 것처럼 무언가 불편하지만 이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요. 오히려 저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있거든요.
제가 작가님의 편지를 아껴두고 읽은 것 또한 다 누군가의 뜻이 있어서일까요? 이런 저의 상황에서 작가님의 편지를 읽으니 눈물이 조금 날 것 같아요. 조금은 제가 틀리게 살지 않았다는 위로의 말씀 같아서요.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간 것을 후회했다는 이 말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되네요. 저는 제가 여태 살아온 방식과 주관을 모두 부정당한 것처럼 혹은 틀렸다 정도로 생각하고, 다시 되돌아서 바라보는 중에 이런 말씀이 눈물을 나게 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는데, 여름을 타나 봅니다. 저는 여름을 타고 있는 것 같네요.
여름을 타는 저는 평소에 아침에 겨우 눈을 뜨고, 아직 정신이 들지도 않은 채 옷을 입고, 짐을 싸서 기차를 타러 달려갑니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 덕에 땀방울이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채로 GTX를 탑니다. 시원한 GTX에는 요즘에 자리 차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점점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보다는, 출근시간에 모두들 이용하다 보니, 1분만 늦으면 서서 가거나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입구보다 훨씬 먼 곳에 앉아야 합니다.
수서역에서 내리면, 곧장 수인분당선을 타러 갑니다. 개찰구로 올라가는 거의 직각으로 올라가는 듯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카드를 두 번 찍고 갑니다. SRT보다 좋아진 점은, 지하철을 타는 곳과 더 가까워져서 수서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탈 때 시간을 세이브할 수 있는 점입니다. 물론, 덜 걸으니 체력을 아낄 수 있고요.
이렇게 수서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면, 선정릉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줄을 섭니다. 수서역에 내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제치고 안에 들어가려면 눈과 다리가 빨라야 합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들어가서 지하철에 앉은 사람들 사이에 서야 하니까요.
문이 열리는 곳에 서있다가는 선릉역 도착하기 전에 찌부되서 크룽지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도 엉덩이와 등으로 밀고 타는 사람들은 많으니까요. 요즘은 점점 더워지기 때문에, 모두의 인간적인 냄새가 지하철 안에 진동합니다. 가끔은 에어컨을 틀지 않은 지하철을 탔다가는 거의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도착지에 내리곤 합니다.
최악의 출근길 같지만, 요즘 여름을 타는 저는 오히려 좋습니다. 운동할 시간도 없는데, 운동 한 느낌이 들어서 오늘의 체력을 길렀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아마도 출근보다는 지금 저의 건강 문제에 집중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네요. 평소라면 그 누구보다도 혐오스러워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만나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 편지를 쓰기로 하고, 그 후로는 서편으로만 뵈었는데, 저는 작가님을 두 번이나 보았습니다.
한 번은, 휴일에 가족들과 고깃 집에 갔다가 카페에 갔는데, 작가님과 작가님의 동료들을 보았습니다. 무언가 업무적인 이야기를 열심히 하는 중이었어요. 인사하고 싶었지만, 가족들이 있어 빨리 나와야만 했습니다.
두 번째로 작가님을 뵌 것은, 호수 공원이었습니다. 풀숲이 많은 곳에서 좀 걷고 싶다고 생각해서 들른 호수공원이었습니다. 크게 한 바퀴를 돌고 있는데, 하루살이가 너무 많아서 앞으로 직보 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세 갈래로 되어있는 길에서 걸어가고 있었죠. 작가님은 동료 분들과 함께 파워워킹을 하며 걸어가시고 계셨습니다. 이렇게라도 멀리 서라도 한 번쯤 우리가 만나고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면서, 작가님의 밝은 안색을 이렇게나마 확인하니 좋았습니다.
예전에,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을 들었을 때, 수업이 너무 좋아서 작가님을 사적으로 한번 또 뵙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었습니다. 궁금증이 많은 제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 동네 어딘가 나갈 때 혹시 우연하게 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이때 이렇게 우연하게 두 번이나 5월에 뵐 수 있었다니 신기하더라고요. 물론, 위의 저의 말도 저만 알고 있었을 것이에요. 작가님이 이 글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웃음).
만나려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렇게 만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신기합니다.
그나저나 6월의 서울 도서전을 준비하시느라 바쁘겠어요.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작가님이 부끄러우시다니,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수요일 티켓을 끊어놨는데,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게 되어 뵐 수 있다면 좋겠어요.
만나려고 하지 않아도 우리는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만날 것입니다.
6월 23일 일요일,
메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