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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rilim Jun 17. 2024

엘라스틴을 쓰신 것 같은 두루 작가님께

메리

 300시간 겨울잠을 잔 것 같은, 3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길게 저녁잠을 잤어요. 이렇게 잠을 푹 잔 건 오랜만이에요. 5월에는 휴일이 많았습니다. 어린이날 대체 휴무일, 석가탄신일…. 휴일이 있다고 꼭 좋지만은 않았어요.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으니 휴일에 못하는 업무를 미리 했어야 하니까요.           

그래도 오늘은 부처님이 탄생하신 덕분에 휴일을 맞이하여야 이렇게 꿀 같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네요. 두루 작가님도 종교가 있으신가요?          

  어디선가 이런 글을 본 적 있습니다. “꼭 피해야 하는 대화 주제”     

 1. 정치     

 2. 종교     

 3. 성별 갈등               

 이 중에 제가 2번 종교를 여쭈어보는 실례를 범했군요. 약간의 선을 넘어보겠습니다. 줄타기하는 장면이 생각나네요. 그렇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으실 필요는 없어요. 단순 질문이니까요.     

  예, 아니오 으로만 답해주셔도 됩니다. 단순(?) 선을 넘는 궁금함이었습니다.               

  태어나 눈을 뜨니 교회였고, 어머니, 아버지가 다니던 교회에 자연스럽게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7살이 되었을 즈음 갑자기 두 분이 교회에 가지 않기 시작했어요. 어르신들의 일이라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교회 재건을 위한 모금 활동에 대한 불만이 있으셨던 모양이에요.     

  그렇게 어머니와 아버지는 교회와 점점 멀어지셨습니다.     

  저 또한 그랬고요.          

  그러다,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 이사 온 동네에 옆집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저희 집은 5층 502호. 옆집 할머니는 501호에 살고 계셨습니다. 초등학생인 메리는 일찍 학교를 가고, 빨리 집으로 돌아오고, 두 발 자전거를 배워 자전거를 가지고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으며, 주야로 일하시는 두 모부 밑에서 다행히도 사교육이 넘쳐나는 한국이기에 안전하게 늦은 시간까지 여러 학원을 다녔습니다.     

  자주 돌아다녀서였을까요? 옆집 할머니를 자주 뵙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만나면 저를 붙잡고 갑자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물러갈 찌어다!, 사탄아 물러가 찌어라! 찌어라!…”     

  기도만 하시는 것이 아니었어요, 저를 붙잡고 등을 두드리기보다는 거의 때리는 듯한 두들김으로 늘 기도를 하셨지요. 처음부터 반감이 있지는 않았어요. 모태 신앙으로써 이해하는데 너무나도 어렵지는 않았지만, 할머니를 길거리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또 기도를 시작하시니 피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1층에서 5층까지 올라가는 그 사이에 기도를 하시는 데, 어디 도망도 못 가고 죽을 맛이었어요.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어르신은 어쨌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비록 어린 메리 양이 부담스러워했을지라도요.          

  그 이후로 중학생이 되었을 즈음, 친구들 따라 교회에 갔어요. 잠깐 다니다가 또 이사를 갔고, 타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는, 한인교회에 다녔었는데 여러 선교 활동도 하고, 출석률도 높았습니다. 당시, 친했던 선배 언니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이 나요.     

  처음 타국의 말이 통하지 않은 학교에 와서, 적응하기 되게 힘들어하고 있을 때여서 더 의지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찬양단도 하게 되었고, 매주 우리는 찬양 연습을 하고 악기를 다루었습니다. 어느 날은 너무 힘들기도 했습니다. 친구들과 사소한 오해와 질투, 이런 것들이 있었고, 학교를 다녀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고 혼자 해낼 자신도 없어졌습니다.     

그날도 연습을 하고, 늦은 밤 집에 돌아갈 때였는데 이 고민을 알던 친했던 선배 언니 ‘달리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혼자 다녀봐. OO는 이런 주변 관계가 싫어서 혼자 한 달 정도 다녀보더니 괜찮다 하더라고. 지금 보면 학교 적응도 잘하고, 잘 다니잖아.”     

 “혼자요? 다닐 수 있을까요...”     

 “해보면 되지.”     

 이런 대화 장면이 생각나는데 그 말과 더불어 달리 언니는, 종교가 있는 친구들은 그래도 곧게 잘 성장하는 것 같다고 했었어요. 그 말에 동의가 어느 정도 되기도 했고요. 어린 나이에 혼자 타국에서 공부하는 것은 꿈보다는 절망 쪽에 가까웠어요. 너무 많은 유혹들도 있었고, 서로 속고 속이는 관계도 많이 보았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있지만 이 또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관계이기도 했으니까요.      

  깊은 믿음으로 생활을 한 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여러 교회를 가보았지만, 타국에서 다녔던 교회와는 달랐기에 한-두 번 정도 가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다시 시작할 즈음에는, 인생이 꼬이는 실타래처럼 꼬일 때로 꼬여서 오히려 역으로 “어찌 저에게 그러시죠?”라는 마음이 커져 믿음이 완전히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렇게 종교생활은 잊혀갔고,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마침 이 학교의 종교가 가톨릭이라 필수 교양과목인 채플을 수강하며 홀로 믿음을 유지했어요.     

  돌고 돌아 결국 교회 앞 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웃음).     

  가끔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하시는 지인들이 있으면 기다려주고, 저는 “땡스갓!” 합니다.     

  아마 신은      

  “땡스갓!”     

  이 말만 들어도 기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또, 대학원 생활을 할 때 본의 아니게 부처님이 계신 절에서 업무를 보아야 했는데, 아마 우리나라에 있는 유명한 사찰이라는 사찰은 거의 갔던 것 같습니다. 이때 업무로 갔지만, 사찰이 주는 건물의 안정감과, 자연이 주는 시원함과, 사찰에서 나는 향의 냄새를 맡고 좋았습니다. 절도 꼭 했고요.          

  필수 교양 채플을 끝으로, 교회는 가지 않습니다. 제 안의 믿음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또 어떤 성장통이 있을지 가늠도 안되지만, 혼자 서 있을 수 있는 힘은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의 힘이 약해졌나 봅니다.          

  다만, 생각날 때가 있어요.               

  배탈이 나서 혹은 장염으로 배가 무지 아파서, 죽을 것 같을 때 갑자기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신에게 빌기도 합니다.     

  “제발 이번만 살려주세요!!!!”     

  두루 작가님도 이런 적이 있으신가요?          

  달콤한 휴일을 선물해 주신 부처님께 감사인사를 올리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말 제가 감사한가 봐요.           

  자부심,     

  자부심이라는 말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단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가짐”          

  음...     

   음...     

     음...     

  하다가 10분간 어떤 단어도 쓰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땐, 선생님이 혹은 주변의 어른들이 “넌 자신감이 넘치는구나!”이 말씀을 자주 해주셨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떠한 것도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드네요.     

  다만, 굳이 두 가지를 꼽자면(갑자기 한 가지가 더 생각이 나서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을 자신”     

  “어디서도 굶어 죽지 않을 자신”               

  이 두 가지입니다. 답변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24시간을 분단위로, 초 단위로 쪼개 살지는 않지만 이 시간들이 모여 결국 계절이 되고, 분기가 되고, 1년이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서, “꾸준히”는 아닐지라도 시간이 생기면, 운동을 하고, 하늘을 보며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책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만 꾸준히 한다고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요.      

  우리는 모두 현재에 충실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도 저도요. 6월에 큰 도서전이 열린다니! 너무 기대되고 가고 싶습니다. 초대해 주세요! 달려가겠습니다(웃음).               

 강동원 배우님이 ‘유퀴즈’에 나오셔서 하셨던 말이 생각납니다.     

 예전에는 안 되는 일이 있으면, 왜 안되지? 이럴 리가 없는데! 불같이 화내기도 했는데,      

 이제는 불혹의 나이가 되니,      

 이게 안되지? 당연히 안 되는 거지. 그렇지 좀 더 내가 열심히 해보자!     

 이렇게 생각이 변화되었다고요.      

  이 말을 듣고는, 불같은 열정으로 탄식할 때, 잠시 숨을 내쉬며 생각해 봅니다. 한숨을 내쉰다고 해서 열이 식지는 않습니다. 이미 머리는 뜨겁고, 가슴은 답답하니까요. 두루 작가님은 이런 상황에서 이미 유연하게 넘어가시는 듯하네요. 프로젝트 공모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다음을 준비하시니까요.          

  두루 작가님도 불같이 화낼 정도로 왜 안되지!? 했던 적이 있나요?     

  왠지 제가 상상하는 작가님의 모습은 너털웃음을 지으시며, 엘라스틴 한 머리를 넘기며 푸른 산을 바라보며, 눈을 감으시고 혼자 가슴 아파하실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저의 ‘오해’인지 모르겠지만요 부디 다른 모습이라면 알려주세요.           

  오늘은 비가 오고, 바람이 찬 밤입니다.     

  잠시나마 탁했던 숨이, 내일은 시원하길 기도합니다.          


  2024년 5월 16일

  잠을 자고 깨어난 메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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