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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l 08. 2022

진동

자연의 법칙

어제저녁에는 명상을 했다. 오랜만에 감각에 집중이 잘 되었다. 정리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틈) 배가 사르르 느낌이 이상하네…….



아침 일찍 일어나 독서를 했다. 책을 자주 읽어도 몰입이 되지 않는데, 오늘따라 집중이 잘 되는 것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틈) 배가 부른 느낌이야. 괜히 신경 쓰이게.



핸드폰 달력에는 오전 11시에 전시 방문 일정이 잡혀있었다. 학교 선배의 전시였다. 간장 계란밥을 해 먹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한 뒤 나갈 채비를 했다. 옷차림도 마음에 든다. 집 문을 나섰다. 오늘따라 아침이 상쾌하다. 빈손으로 가는 게 뭐해서 꽃 한 송이도 샀다. 가끔 사람들에게 꽃 한 송이씩을 선물하는 데 그럴 때면 내 기분이 더 좋아지더란다. 꽃 한 송이를 들고 2호선 전철을 타고 합정동으로 향했다. 



(틈) 여기서 내가 홀연히 느끼는 게 있었다. 살갗 위에 어떤 파동이 진동을 일으키고 있던 것이다. 파리지옥이 파리를 잡을 때 입을 한 움쿰 웅크리듯이 몸의 구멍들이 움츠러드는데 영문을 모르겠는 것이다. 사람 만나는 걸 이렇게까지 긴장하나 의구심이 들던 차, 전시장 입구에 도착했다. 



아(!) 뭔가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다가왔다. 주변 술집들이 아침 햇살에 못 이겨 눈 꼭 닫고 회색빛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마냥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곳에도 불빛도, 사람도, 열린 문도 없었다. 다시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초대 페이지를 보니, 이런. 첫날 오프닝은 오전 11시가 아닌 오후 5시였다. 



갑자기. 갑자기.

살갗 위에 파동이 파르르 한 진동을 넘어서서 수직 낙하하는 원자들로 바뀌었다. 온몸의 원자들이 해발 2,744미터에서 골짜기 아래로 미친 듯이 날아내렸다. 땀구멍들에서는 수분이 빠져나오고, 머리 위로는 혼이 빠져나오고, 항상 뭉툭한 감각을 유지해오던 몸통에서 짜릿하다 못해 바늘로 찌르는 듯한 감각이 아랫배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 시간 바뀐 걸 확인하니까 몸이 반응하는지 모르겠지만, 악, 일단 화장실 가야 해.



고통스러운 발자국을 내디디면서 합정역 3번 출구로 향하려는데 3번 출구 근처에는 화장실이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5번 출구로 향했다. 심호흡을 하며 몸에게 진정하라고 괜찮다고 달래봤다. 조금 효과가 있었다. 31도 기온에서 땀을 삐질 흘리며 역사로 들어오니 집에 바로 가도 될 듯하여 카드를 찍고 내려왔다. 그런데, 아뿔싸. 반대 방면으로 내려왔다. 다시 올라간다. 교통비를 버렸다는 생각에 조금 착잡해졌지만, 카드를 찍고 집 방면으로 다시 내려왔다. 열차는 3역 전에 머물러 있었다. 



팟스zzzzz. 갑자기 배 안에서 누가 나를 찌른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아씨. 열차 전역에 도착했는데. 버티자. 버텨보자. 아 안돼. 일단 화장실 가야 해.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와 카드를 찍고 나온다. 다시 매 발자국이 가시밭길이 되었으며 60m가 600m 같이 느껴진다. 아니 이럴 거면 카드 찍기 전에 이러지. 



그런데 화장실에 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갑자기 배는 씻은 듯이 나아졌다. 발아래로 집 방면 열차가 지나가는 진동이 느껴진다. 지금 내 몸에는 진동이 없는데. 화장실에서 나와 나는 다시 카드를 찍고 내려갔다. 당산역으로 향한다. 내렸다. 출구로 나왔다. 이제는 집에 가서 화장실을 가야지하고 마음먹고 횡단보도 앞에 있었는데….



와. 살갗 위 진동은 폭풍우 치는 원자 칼날이 되어 나를 컥컥 찔렀다. 그렇게 2, 9호선이 같이 있는 당산역의 9호선 역사로 들어가 진동들을 뿜어냈다.



화장실에서 나와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요동치던 몸의 감각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수면 위에 흐르는 물결로 변했다.


자연의 법칙은 전철 배차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풉.

자연의 법칙은 거스를 수가 없네.

왠지 웃음이 나왔다. 나는 진동에 반응할 수밖에 없는, 원자 덩어리 자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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