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찬란한 바르셀로나 우울기
혼자 바르셀로나를 여행 중인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은 너무 우울해서 울었어. 이런 여행도 괜찮을까. 나는 답했다. 그럴 수 있지. 근데, 우울도 여행의 일부더라. 시간 지나면 우울했던 만큼 더 찬란하게 남더라고.
나 또한 홀로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며 라람블라 거리를 울면서 걸어봤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때는 2013년 11월, 프랑스로 유학을 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다.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의 바람을 잡아내고 아주 힘겹게 이별한 뒤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하도 기가 차서 잠시라도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그런데 혼자 하는 여행은 생각보다 많은 우울을 동반했다. 내 상황이 상황인지라 더 그랬을 테지만,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대화를 나눌 상대가 한껏 우울에 빠진 나 자신이라는 것은 좀 고역이었다.
우울한 사람치고는 참 야무지게도 돌아다녔다. 일종의 오기였던 것 같다. 그깟 자식 때문에 내 소중한 여행을 망칠 순 없어. 숙소에서 친해진 한국인 언니와 함께 국립미술관 분수쇼도 보러 가고, 민박집 사장님의 이민썰도 흥미롭게 듣고, 가우디 투어도 신청해서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불쑥불쑥 치고 들어오는 우울을 막을 순 없었다. 그렇게 4박 5일 동안 우울을 벗 삼아 열심히 돌아다니고 귀국 전날 밤, 페이스북에 여행후기(를 빙자한 우울기)를 장황하게 써내려갔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첫날밤
난생처음 빠에야라는 걸 먹고 맛있어서 눈물이 날 뻔했다.
그러고 바로 플라멩코를 보고 나와서는 왠지 울고 싶은 기분이 됐다. 집시의 한풀이 춤이라는 그것의 몸짓과 표정이 너무 슬펐기 때문일까.
둘째 날 피카소 미술관을 갔다. 아는 게 없어 이해할 수가 없었으므로 단체로 관광 오신 한국인 어르신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가이드 설명을 몰래 들었다. 근데 내 눈엔 피카소 작품들보다 한국에 계신 엄마아빠 얼굴이 아른거렸다. 우리 엄마아빠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나와서 자우메 광장을 둘러보고 돌아가는 길에 손잡고 여행하는 한국인 모녀를 보고는 또 눈물이 났다.
몬주익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 호안 미로 미술관에 들어갔다. 미술에 문외한인 내가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보고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던 마그리트의 <피레네의 성>이 걸려 있었다.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뻔했다. 이걸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앉아 영롱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며 성가대의 노랫소리를 듣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하에 있는 박물관에서 가우디의 설계도를 보는데 이걸 나보다 언니가 봤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생각에 기념품을 사려고 기념품샵으로 발걸음을 돌렸는데 문을 닫아서 눈물이 날 뻔했다. 꼭 사고 싶었는데.. 언니 생각이 났지만 내가 언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주인 아주머니가 해주신 아침을 먹으며 3개월 만에 먹어보는 따뜻한 미역국과 잡곡밥에 눈물이 날 뻔했다.
걷다 힘들면 그냥 주저앉아 노래 한 곡 들으며 쉴 수 있어서, 길거리에서 바니를 닮은 요크셔테리어를 볼 수 있어서, 누텔라맛 젤라또를 먹어볼 수 있어서, 지중해 바다를 볼 수 있어서, 숙소에 돌아와 걱정하는 엄마아빠의 카톡에 답장할 수 있어서, 그래서 나는 눈물이 났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가우디의 생애를 설명한 책자를 읽다가 한 구절에 마음이 꽂혔다.
Rien n'avance sans sacrifices.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나아가지 않는다.
나는 지금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었구나. 그제야 날 아프게 했던 그 시간들이 이해가 됐다. 그제야, 성장과정 잘 견뎌내라던 지우의 한마디가 이해됐다.
아, 이걸 알려고 나는 바르셀로나에 왔나 보다.
나는 눈물나게 행복한 사람이다.
C'est-à-dire, Barcelone m'a bien consolée!
불어로는 한 줄로 설명되는,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는 오늘의 일기 끝.
그래서,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바르셀로나는 나에게 눈부시게 찬란한 기억이다.
우울함도 한껏 즐기다 보면 필연적으로 그 아름다움을 내보인다는 것을 알려준 곳.
때로 우울은 훌륭한 여행 메이트가 되어 준다. 성가시다고 우울을 억지로 내칠 필요는 없다. 기필코 언젠가는 꼭, 꼭, 찬란함으로 되돌려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