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너머의 풍경 - 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이 글은 『노마드랜드』를 처음 만났을 때의 제 고민과 사색을 담은 초고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매거진 발행을 준비하며, 그때의 진심을 지키면서도 더 편안하게 읽히도록 문장을 다듬어 보았습니다.]
줄거리: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안정적인 은퇴를 꿈꾸던 중산층들이 빚, 건강 문제, 구조조정 등 여러 어려움에 직면했다. 이 책은 그들이 집 대신 밴(자동차)을 거주 공간 삼아 저임금 노마드 노동자로 유랑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면면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논픽션이다. 저자는 직접 그들과 함께 유랑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
어느 북튜브 채널에서 가볍게 들었던 이야기에 끌려 읽기 시작한 책. 처음엔 소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제시카 브루너라는 저널리스트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밀착취재와 자료조사를 거쳐 완성된 책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책의 줄거리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을 읽는 내내 물기 없는 밤고구마를 물 한잔 없이 꾸역꾸역 삼키는 듯한 기분이었다. 만약 소설이었다면 호박고구마처럼 좀 더 부드럽게 페이지를 넘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이 사실에 기반 한 이야기라는 점이 나를 읽는 내내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노마드 노동자들 중에는 석사, 학사 학위를 가졌거나 대기업의 임원, 회계사, 기술자, 관리자, 경찰 등 이른바 “배운 사람” 들이 많았다. 그들은 각자의 삶에서 열심히 노후 준비를 했음에도 불안정한 경제 상황 앞에서 속수무책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글을 읽는 내내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그들과 비교했을 때, 제대로 된 노후준비는커녕 현재의 삶마저 안심하지 못하는 나의 상황이 겹쳐지니 불안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불안정한 고용환경과 빈부격차는 미국 못지않게 심각하고,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통용된다. 개인주의는 이기심을 넘어 이타심마저 위협할 정도로 우려스러운 수준이고, 사회보장 시스템은 너무도 미미하다. 그러던 중, 아래 구절을 읽으며 다른 사색의 세계로 진입했다.
노마드 대부분은 그 꼬리표를 마치 전염병인 것처럼 피한다. 그들은 어쨌거나 ‘하우스리스’다. ‘홈리스’는 다른 사람이다. 326p.
- 도시에서 밴에 들어가 살면, 사람들은 당신이 홈리스라고 생각한다.
- 사람들이 당신을 홈리스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당신은 자신이 홈리스라고 느끼기 시작한다.
- 그래서 당신은 뻔한 위장을 시작한다…‥ ‘정상’으로 보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면서…‥ 327p.
책 속 노마드 노동자들은 법률적으로 ‘홈리스’와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을 절대 홈리스(사회적 폭력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추방된 사람들, 낙오자들, 타자들, 빈털터리가 된 사람)로 규정하지 않았다. 대신‘하우스리스’(기존 주거 형태인 주택, 아파트가 없는 사람)라고 선을 긋는다.
나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기에 그들의 ‘선 긋기’가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했다. 동시에, 그들을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한 국가 시스템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나는 어릴 적 유괴를 당해 ‘형제복지원’이라는 곳에 오랜 시간 감금됐다. 온갖 폭행과 인권유린이 자행되던 고통스러운 그곳에서 내가 그 시간을 견뎌내는 동안, 오직 자식을 찾겠다는 부모님의 3년간 기나긴 헌신 덕분에 해방 될 수 있었다. 당시 부모님은 나의 정서적 안정과 일상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을 했고, 그 덕분에 나는 그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다.
그러다 대학시절, 우연히 군사정권의 피해를 알리는 책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시 접했다. 그때서야 나는, 내가 겪었던 일이 단순한 개인적 고통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나 나는 침묵 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고작 20살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 사건은 밝혀져야 할 많은 진실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 내막을 모르는 사회에서 나는 그저 ‘운 없이 불운을 경험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지인들은
“그런 곳에 있었으면 그 여파로 나쁜 곳으로 빠지기 쉽다.”
“그런데 OO는 구김 없이 밝고 착하게 잘 자라고 있어 다행이다.”
라는 위로의 말을 부모님께 건넸다.
이런 말을 듣고 어린 내가 드는 생각은
‘아, 그런 곳(?)에 있다 온 아이들은 어둡고, 나쁜 길로 빠지는 게 일반적이구나’였다. 그리고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점점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피해자이기 이전에 그 사회적 편견과 낙인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내 감정과 별개로 더욱더 밝은 아이가 되어야 했고, 그 편견을 넘어서야 했다. 그 기억을 다시 꺼내는 일은, 이미 벗어나기 위해 애썼던 낙인을 다시 마주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잘잘못을 떠나 그 자체가 나에겐 공포였다. 그렇게 나는 현재 내 삶을 지켜내기 위해, 그 과거와 ‘선’을 그었다.
노마드 노동자들이 ‘홈리스’와 ‘하우스리스’를 선명하게 구분하려 했던 것도 바로 그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러 사회적 충격을 피하지 못해 비록 주택과 아파트가 아닌 ‘바퀴 달린 부동산’이라 불리는 밴(자동차)으로 주거지를 옮겨 유랑 부족이 되었지만, 그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단지 저임금 노동자로의 삶을 선택한 것일 뿐이라고,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용기 있는 분들의 오랜 노력 끝에 형제복지원 사건은 비로소 사회적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나 역시 암울한 시기에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을 겪었다. 그래서 잊고 싶었기에 잊은 듯이 살아가려 노력했다. 오늘도 나는 내일의 나를 위해 하루를 알차게 살아가려 마음을 다진다.
하지만 과거의 실타래를 제대로 풀지 못했기에, 여러 책을 읽다 보면 묵혀졌던 감정들과 책의 글귀들이 맞물려 다양한 생각들이 피어오른다.
그런데 사회가 정의하는 ‘사회적 낙오자’, ‘빈털터리’인 ‘홈리스’로 자신을 정체화 한다면, 정말 그런 삶을 살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은 아닐었을까? 노마드 노동자들은 두렵지만, 현재의 삶에 충실하며, 삶을 낙관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
『노마드랜드』는 내용 자체가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살면서 먹고 사는 것에 걱정이 없거나, 완벽한 노후준비가 된 사람이 아니라면, 혹은 사회복지 시스템 구축에 부정적인인 생각을 하는 독자라면 한번쯤 이 책을 읽어보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