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너머의 풍경 - 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이 글은 『활자 잔혹극』을 처음 만났을 때의 제 고민과 사색을 담은 초고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매거진 발행을 준비하며, 그때의 진심을 지키면서도 더 편안하게 읽히도록 문장을 다듬어 보았습니다.]
북튜버 김겨울 님의‘겨울서점’에서 김상욱 교수가 책의 첫 문장을 읊조리는 순간, "읽자!" 는 생각에 온라인 서점에 접속했지만, 아쉽게도 절판이었다. "그렇다면!" 곧바로 도서관 앱을 켜 검색했고, 그렇게 책을 손에 넣었다.
그 강렬했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책의 줄거리는 의외로 간결하다. 독자들은 유니스 파치먼의 성정을 엿볼 수 있는 사건들을 따라가며, 그녀가 피커 데일 일가에 입주 가사도우미로 취업하는 과정, 그리고 그 일가 내에서 어떤 내적 갈등이 폭발하여 살인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알아간다. 보통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사건을 역순으로 풀어가는 방식은 자칫 이야기의 힘을 잃게 만들 위험이 있다. 하지만 저 첫 문장에 흥미를 느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먼저 읽어본 독자로서 이 소설은 그 우려를 지워줬다.
이 책을 읽겠다 마음먹은 건 강렬했던 첫 문장 때문이었지만, 도대체 어떻게?라는 의문을 품고 책장을 넘겼다. 책 속 인물들처럼 나 또한 유니스에게 ‘왜 이렇게 차가운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책을 덮었을 때는 죄를 묻기보다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40년 넘는 시간을 살얼음판을 걸었을 그녀가 한없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온몸이 경직되고, 몰라도 아는 척. 오직 눈치 하나로 위태로운 순간을 모면해야 했을 유니스 파치먼. 그 차가움은 어쩌면 그 하루들이 덧씌워진, 처절한 몸부림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한국의 문맹률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다행히 세계 최고 수준으로 낮다고 하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곧 ‘정말 안도해도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스쳤다. 당장 햄버거 가게만 가도 키오스크 앞에서 역정을 내는 사람들을 간간히 보게 된다. 거리에는 한국어인지 외국어인지 모를 혼용된 간판들이 즐비하다.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알 것이라고 생각하며 배려 없이 행해지는 정책이나 집단 이기주의 행동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피커 데일 일가는 ‘그들의 시선’으로 유니스를 대했기에 안타까운 죽음으로 내몰렸다. 나 또한 내가 알고 ‘지식의 저주’에 갇혀 ‘나만의 시선’으로 타인에게 소통 없이 행한 말과 행동이 없다고 어떻게 자신할 수 있을까. 끝 모르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되새기며 글을 적었다.
글을 쓰면서 책 문장이 적힌 이미지 파일을 몇 개를 만들어 첨부했다. 처음에는 이미지에 문장이 적혀있으니 굳이 텍스트로 또 적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곧 이 행동이 얼마나 배려 없는 일이었는지 깨닫고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시각장애가 있거나 이미지 확인이 어려운 분들은 대체 텍스트를 통해 내용을 파악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누락하려 했다는 점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앞으로도 오늘처럼 부끄러워 얼굴을 붉힐 일이 많으리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건,
나는 계속해서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부족하지만 이 글을 통해 『활자 잔혹극』에 관심이 생겼다면, 당신을 환대로 맞이할 도서관으로 달려가 보기를 권합니다.
※ 이 글을 작성했던 2022년과 달리 2025년 6월 26일 현재 이 책은 각 서점에서 개정되어 판매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