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 ② 남겨진 마음이 건네는 말

페이지 너머의 풍경 - 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by 순간의 기록자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무너진 돔 아래, 맨발의 노인이 지팡이를 들고 앉아 있고, 사제복을 입은 신부가 그 앞에 서 있다. 긴장과 고요가 스며 있는 것 같다.]


* 이 글은 『국경을 넘어 ① 긴 여행의 길 위에서』에 이은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각각 독립된 문장에서 출발해 파생된 생각을 풀어낸 글이라, 본 글만으로도 이해에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

다만, 첫 편을 먼저 읽으시면 글의 흐름이나 정서적인 결을 조금 더 선명하게 따라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본 글은 『국경을 넘어』 속 소년 빌리가 여행 중에 마주한 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쓰였음을 덧붙여 둡니다.





"나는 신(神)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신(神)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책의 2부에서 소년 빌리가

여행 중 생명의 기운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황폐한 마을에서

한 노인을 만난다.

그 노인은 젊은 시절 신부였던 시기에

만났던 또 다른 노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불법 침략자에 맞서 싸우기 위해 교회로 들어갔던 부모는 포탄에 목숨을 잃었고, 아이였던 그 노인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 혼자 살아남았다.

시간이 흘러, 지진으로 외아들을 잃고 절망에 휩싸인 그는 수년간 떠돌다 폐허가 된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아내의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신을 부정하고 싶은 삶이었지만, 그는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

신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방랑하던 그는 결국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고향 교회의 돔 아래 자리를 잡고, 자신과 마을, 신부에게 신의 존재를 묻는 삶을 살며 신부를 ‘목격자’로 남긴다.


“행동은 목격 속에서만 의미가 있네.
목격자가 없다면 그 행동에 대해 누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결국 행동은 아무것도 아니고,
목격만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지.” 217p
“세계가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에 생명을 주는 것은 목격자가 아니겠느냐고?
목격자 없이 이야기가 어떻게 존재하겠느냐고?” 218p
“당신 자신을 구하시오.
당신 자신을 구해.” 222p


신부는 깨닫는다.

삶의 교훈은 삶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을.

오직 목격자만이 그 삶의 무게와 의미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을.


“하느님은 목격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실은 말이야, 하느님이 없다면 목격자도 있을 수 없다는 거야.
세상이라는 것은 없으며, 그저 세상에 대한 각 개인의 의견이 있을 뿐이지.” 224p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신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나에게 이 문장은

단순한 믿음을 찾는 이의 고백이 아니라

생애 전체를 녹여낸 말처럼 느껴졌다.


끝내 응답하지 않는 존재에 대한 원망과 기다림, 그 침묵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의 고백.


노인을 보며 ‘살아남은 자’에 대해 생각했다.

사랑하는 이들은 떠났고,

어떤 설명도 구원도 없이 남겨진 삶.

누군가는 그 삶을 증명하려 애쓰고,

누군가는 침묵 속에서 조금씩 무너지고,

또 누군가는 그냥,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할 뿐이다.


나 역시, 몇몇 글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무엇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막연한 부채감 속에 살아왔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

그 마음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쓰려하니

내 이야기가 가볍게 소비되거나

누군가의 호기심 속에 소모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이내 마음의 셔터를 내리고

글쓰기를 멈췄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불현듯 ‘우주에서 떨어져 나온’ 따뜻한 이의 시선이 마음에 닿았고,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그냥 쓰면 된다.’는 평온이 찾아왔다.


노인처럼

그저 존재의 흔적을 남겨도 괜찮겠다는 생각.

살아냈고,

어떤 일들이 있었고,

지금 이렇게 남아 있다는 것.


그 말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노인은 아무것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지켜본 신부는 달라졌다.


삶의 교훈이란 것이 있다면,

삶 그 자체보다는

그걸 바라본 사람의 마음에 머무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존재를 향한 감각,

삶에 대한 예의와 같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천천히 바라보는 마음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신의 축복 같기도 하고 형벌 같기도 한 일상을 살아간다.

진실을 말하고,

누군가를 기억하고,

믿음이 무너진 자리에서도

툭툭 먼지를 털 듯 다시 일어나

어디론가 걸어간다.

그게 살아가는 일인지도.


그래서 지금은

누구를 설득하거나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남겨놓고 싶다.

나 또한,

“이런 일이 있었다고.”


그 말이

누군가에게 하루를 조금 더 견디게 해주는

숨 한 번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이제,

쓸 수 있고 쓰고 있다.

의식적으로 잊으려 했던 긴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세월과 함께 잊은 것도 많고,

마음이 자라면서 사라진 기억들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욕심을 내어,

기억이 나면 나는 대로,

생각이 나지 않으면 않는 대로,

내 기억의 파편 속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려 한다.



『국경을 넘어』를 읽고 떠오른

오늘의 페이지 너머의 풍경은 여기까지입니다.

짧게 덧붙이자면,

어떤 순간이 닿아 세례를 받은 적이 있고,

유일신을 믿진 않지만

그래도 신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어렴풋한 믿음을 품고 있습니다.


사찰을 가면 합장을 하고,

교회를 가면 두 손을 모으고,

성당을 가면 성호를 긋습니다.


아마도 저도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신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 말에 가까운 어딘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삶의 어떤 순간에

나름의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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