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너머의 풍경 – 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국경을 넘어』 표지. 선과 악, 고독한 존재의 길 위에 놓인 질문들을 품은 이야기.]
『국경을 넘어』에 대한 이야기를 두 편으로 마무리하려 했으나, 노트북을 다시 열었습니다.
코맥 매카시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선과 악의 모호함, 세상의 냉혹함, 그리고
구원 없는 인간의 고독한 여정은 예상보다 더 깊이 저를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는 독자로서 작가의 세계관과 제가 발 딛고 선 현실 사이의 교차점에서, 미처 답하지 못한 질문들을 다시 던져야만 했기에, 이 세 번째 이야기로 마침표를 찍으려 합니다.
『국경을 넘어』는 우리가 믿고 싶은 정의라는 개념을 낯선 방식으로 흔들어 놓는다. 작품 속 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정의로운 자가 찾고 있는 체계는 결코 정의 자체가 아니라 그저 그 체계일 뿐이며,
악의 무체계는 사실상 악 그 자체임을 모른다고. 415p
우리가 정의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특정한 시스템을 향한 믿음일 뿐,
그 안에 진짜 정의가 담보되는 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악은 설명이나 논리 없이도 악 그 자체로 존재하며, 그 본질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작품은 현실에서도 권선징악의 도식이 자주 무너지는 풍경을 서술한다.
악을 행한 자들이 평온히 삶을 마감하고, 슬픔은 남겨진 자들의 몫이 되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민낯이라는 듯 말이다.
말해 무엇하겠는가? 해당 문장을 읽으며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보란 듯이 정의가 승리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물음표를 지울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이 ‘악’이라 규정하는 일을 일부분이나마 직접 겪어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사회적 부조리로 인해 3년간 복지시설에 감금된 경험.
‘작은 악’이라 치부하기엔 너무 크고 뿌리 깊고, 감당하기 힘든 폭력이었다.
책의 시선대로라면, 나는 그저 세상의 무력함을 깨닫고 체념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정의를 말하고 싶다.
그건 순진해서가 아니라, 악을 경험해 봤기에 더 간절하게 붙잡게 되는 의지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는 시대와 맥락에 따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생물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정의가, 모든 악으로부터 세상을 구하진 못하더라도
악을 조금이라도 작아지게 만드는 힘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책에선 정의와 진실을 찾을 때 논리와 설명이 필요함에 따른 피로감을 얘기하지만,
대화와 설득, 그리고 논리적 설명을 통해 공유된 진실은
오히려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 나는 또 하나의 인상 깊은 장면을 만났다.
주인공 빌리가 낯선 이들과 마주 앉은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한 술 취한 사내가 술을 따라주며 마시기를 강요한다.
주변은 침묵과 경계로 가득 차 있는 분위기, 거절이 불러올 위험.
빌리는 그 술을 입에 넣는 순간 주변이 안도감으로 채워진 듯 하지만 이내 뱉어버린다.
나는 그 술잔 의미를 동조와 침묵, 혹은 방관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돌아보지 말라”는 이의 충고에도 등을 돌려 술 취한 사내를 바라보고,
옳든 그르든 몸을 돌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간다.
나는 그 장면에서 이 시대의 다양한 인간 군상이 떠올렸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채상병 사건.
진실을 규명해야 할 국가가 책임을 회피할 때
“너의 일이 아니잖아”, “그냥 조용히 있어”라는 말들이 독버섯처럼 자라난다.
심지어 고통을 겪은 유가족에게
“얼마면 되냐”, “보상받았잖아” 같은 말을 던지며,
고통을 돈으로 환산하려는 잔인한 말도 서슴지 않는 방관자 혹은 동조자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앞에서 어떤 이는 빌리처럼 술을 뱉어버리고,
고개를 돌려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고,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양심과 의지로 정의와 진실을 찾아 기꺼이 길을 걸어가려는
이 시대의 깨어있는 시민들을 생각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이 책이 놓치고 있는 부분도 분명히 보였다.
깊은 사유와 절제된 문장 속에서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작품이었지만,
여성을 대상화하는 방식으로 풀어내 마음 한편을 불편하게 만든 문장들도 있었다.
여성을 ‘몰두되기 위해 존재하는 물건’으로 말하고, 남성의 욕망과 충동의 대상으로만 그리는 구절들.
이는 단순히 인물의 왜곡된 시선이라 보기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흘려버리는 것은 문제적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책일수록 감동과 감탄에 더해
그 안의 균열과 한계도 함께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더 이상 ‘정의가 승리할 것이다’라는 말만으로 위로받지 않는다.
그러나 ‘정의는 존재할 수 없다’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선택 앞에 서 있다.
술잔을 받아 마실 수도 있고 뱉을 수도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
완벽한 정의는 어려워도,
그 악이 조금이라도 작아지도록 만들 수는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특별한 이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는 책 이야기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기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 술잔 앞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했나요?
이 글이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정의'를 묻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