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너라는 생활》을 읽고 '나'를 돌아본다

페이지 너머의 풍경 – 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by 순간의 기록자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김혜진 소설 『너라는 생활』 표지. 연한 분홍색 배경 위에 제목과 저자명이 적혀 있고, 하단에는 햇살이 비치는 현관문에 연한 핑크색 셔츠가 걸려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출판사는 문학동네."




내가 좋아하는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의 팟캐스트 오디오 매거진 '정희진의 공부'를 듣던 중 김혜진 작가님의 소설집 '너라는 생활'에 대한 얘기를 하시며 아주 인상 깊게 읽었다는 말씀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책의 추천사에는 ‘나’를 실연(實演)한 작품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이는 실제의 삶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소설이라는 뜻이었다. 이 문장을 읽고 실제 삶을 다룬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 어렵게 도서관 예약대출에 성공하여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책은 독립적인 단편 8편을 묶은 소설집으로 서술되는 방식이 2인칭이다. 삶에서 한 번쯤 겪어봄직한 일들을 사회적 문제나 비가시화된 소수자들을 자연스럽게 에피소드로 녹여, ‘나’의 시선으로 ‘너’를 풀어내는 이야기다.



'나'의 시선이 드리운 불편함

앞서 말했듯, 소설 '너라는 생활'은 철저히 '나'의 시점에서 '너'를 서술한다. 우리는 '나'의 시선을 통해 '너'의 행동과 감정, 상황을 바라보게 된다.


'나'가 '너'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에 나는 별 부담 없이 ‘나’에 이입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주장 없고 수동적이고 답답하게 그려지는 ‘너’의 모습을 오직 ‘나’의 시선으로 받아들였다. ‘너’를 그저 참아내고 감당해야 하는 존재로 읽혀 ‘나’에게 동질감과 안타까움까지 느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뒤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불편함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이게 뭘까...? 하는 생각에 그 불편한 감정에 다가가 보기로 했다.


내가 느낀 불편함은 '너'의 목소리를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스스로를 설명하거나 반론할 기회 없이, '너'는 철저히 '나'의 시선에 갇혀 있었다. 그렇게 그려진 '너'는 오직 참아내고 감당해야 할 존재로 남았고, 나는 그 시선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나 또한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너'다. 나는 늘 내 삶의 주인공이지만, 타인의 시점에서는 그저 '너'일 뿐이다. 내가 누군가를 답답하게 바라보았듯,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너'일 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정상성'의 시선이 가진 은밀한 폭력

다른 한편으로 들었던 생각은, 나는 이 책에서 '정상성'의 시점에서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소설에는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들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그들이 건네는 말들은 인정과 따뜻함이다. 그러나 ‘나’를 통해 본 그들의 시선은 얼마나 평등하지 않고 차별적인지 알 수 있었다.


"여기서는 편하게 생각해도 된다",
"우리는 다 이해한다",
"둘은 특별한 커플이잖아",
"두 사람 내가 항상 응원하는 거 잊지 마라"


나는 당신들을 지지한다는 건데, 이성애자인 내가 당신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응원한다는 건데 저 말들이 왜...?라고 생각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잠시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런 표현들은 마치 소수자가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이해와 관용을 베풀어야 할 대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겉으로는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너희는 나와는 다른 존재', '그래서 내가 특별히 응원해 줘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셈이다.


비록 나는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고 항변할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소수자를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기보다, 그 말을 듣는 상대에게 '선의의 대상'으로 위치 짓게 하는 은밀한 폭력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경청, 질문, 그리고 유연한 마음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의 ‘나’의 시선을 통해 ‘너’를 본다. 어찌 되었던 완벽히 이해 불가능한 ‘너’를 ‘나’는 어떻게 이 간극을 줄이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나의 질문은 여기까지 이어졌다.


내가 내린 결론은 적극적인 경청과 질문, 그리고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유연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만의 생각과 가치관을 굳힌다. 그렇기에 '내 생각이 옳다', '내 말이 맞다'는 확신에 갇히기 쉽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 말이 절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유연함과 열린 마음이야말로 타인과의 간극을 좁히고, 관계를 풍요롭게 하는 게 아닐까.



‘너’라는 존재를 통해 ‘나’를 돌아보다.

'너라는 생활'을 통해 타인을 향한 나의 시선을 돌아보고, '다름'을 인정하는 진정한 이해의 중요성을 다시금 새겨본다.


이 책은 타인의 삶과 생각을 엿보는 것을 넘어, 결국 우리 자신이 타인의 시선 속에서 어떤 ‘너’ 일 수 있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당신의 일상에서 '나'의 시선에 갇혀 '너'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나요?

반대로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내가 '너'로 규정되어 불편함을 느꼈던 순간이 있었는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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