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 ‘보통’의 사랑 — 『노멀 피플』

페이지 너머의 풍경 – 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by 순간의 기록자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NORMAL PEOPLE" 위에 깡통 속에 누워있는 사람을 그린 삽화가 있다. 삽화 아래 한글로 제목 노멀 피플"이 있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샐리 루니 장편소설 | 김희용 옮김"이라고 적혀 있다.]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의 인격에 강한 영향을 받아 그 인격을 순순히 수용한 다음에야 하늘이나 땅의 계시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인간 정신 변화의 비밀이다."— 조지 엘리엇, 『다니엘 데론다』



책의 시작 전 맨 앞장에 기재된 문장이다.

'다른 누군가의 인격에 강한 영향을 받아' 해당 문장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그리고 책을 덮었을 땐, 이 문장이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오늘 이야기해 볼 책은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이다.

'노멀 피플(Normal People)'. 제목 그대로 ‘보통 사람’ 혹은 ‘정상적인 사람’으로 해석되며 평균의 범위, 무난하고 튀지 않는 그 무엇으로 읽힌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 출신의 메리앤과 코넬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까지 숱한 끊어짐과 연결 속에 이어지는 사랑 이야기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해피엔딩의 틀을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독자에겐 결말이 다소 불편하거나 무언가 깔끔하지 못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다.


그들의 관계는 읽는 이로 하여금 위태로움을 느끼게 한다. 사랑 이야기임에도 계급 차이, 말하지 못한 감정, 상처와 불안 등이 섬세하게 표현된다.



'보통 사람'의 이면

다시 책으로 돌아가 ‘보통 사람’ 메리앤과 코넬을 만나보자.


우리가 얘기하던 사회적 시각의 조건을 충족하는 ‘보통 사람’의 전형인 두 사람은 더없이 좋은 조건처럼 보인다. 모범생에 평범한 연애도 하는, 생애 주기 전철을 순조롭게 잘 밟아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두 사람.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 『노멀 피플』이라는 제목에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들의 내면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보통'과는 거리가 멀 기 때문이다.



메리앤과 코넬: 내면의 그림자

메리앤은 변호사인 어머니 덕분에 경제적 어려움 없이 부유한 집에서 자랐다. 지적으로 우월한 면을 보이며 독립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친구다.


그렇다면 내면은?

가족으로부터 거의 학대 수준으로 방치되어 자란 탓에 자신을 하찮은 인간으로 보고, 사랑받지 못할 존재로 생각한다.


즉, 사랑받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이나 파괴 같은 거래가 필요하다는 믿음을 내면화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코넬은?

차분한 성격에 교우 관계도 좋고 운동과 공부도 잘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 “엄마 친구 아들”이다.


메리앤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엄마와는 정서적 안정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내면 또한 감정 표현에 서툴고 사회적 시선에 민감하다.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그의 서툰 감정 표현으로 관계를 망치는 인물이다.


사회가 말하는 ‘보통’은 참 단순하고 편리한 말이다. “보통 학생”, “보통 연애”, “정상 가족”. 이런 말들은 사회가 용인하는 기준과 규범에 부합하며 이상하거나 잘못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단어로 인식된다.


그런데 『노멀 피플』은 그 ‘보통’에 이면 또한 결핍, 위태로움, 자책, 불안이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다.


마치 저자가 두 사람의 서사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보통’과 ‘정상’이라는 말이 얼마나 역설적인지를 현실감 있게 전하며 ‘보통’의 무게를 전달한다.



메리앤의 변화: 자기 파괴를 넘어

책을 읽으며 이해하기 더 어려웠던 쪽은 메리앤이었기에, 그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그녀는 전개 내내 수동성과 자기 파괴적인 모습을 보인다.


아이에게 세상은 가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가족 안에서 자아가 형성되고, 그 안에서 사랑을 배운다.


어린 시절의 메리앤도 가족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정받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숱한 시도들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냉소와 방관과 가학만이 맴도는 가정환경 속에서 메리앤이 다다른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존재 가치 없는 자신과,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로서의 자기 확신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 시도들이 좌절되었음에도 그녀에게는 사랑받기 위해 고통을 견디고 감내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생각에 이르니 오빠가 메리엔에게 침을 뱉는 행동을 함에도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는 수동성이,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원하지도 않는 폭력을 요구하는 등의 자기 파괴성이 이해가 되었다.


그런 삶을 살다 자신을 원하는 코넬을 만났다.


자신을 하찮은 존재라고 여겼는 데,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여겼는 데, 그런 자신을 향해 스스럼없이 다가온 코넬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메리엔은 그를 통해 희열과 불안과 공허를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관계의 전환점: 구원은 자신으로부터

시간의 흐름 속 두 사람은 내면의 상처를 짊어진 채 숱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그리고 메리앤은 그 이별의 시기에 다른 이들을 만났다. 그들과의 만남 속에 그녀는 그 무기력하게 학습된 기존의 수동성과 자기 파괴성을 재확인하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가치 없음을 견고하게 확신으로 굳혀간다.

그러다 다른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때릴 것을 코넬에게 요구했지만 거부된다. 요구가 거부되는 상황에서 메리앤은 자신이 거부되었다는 것에 처음에는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사랑은 반드시 고통을 수반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능성. 그 새로운 가능성이 그녀 안에서 균열을 내며 자리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오빠로 인해 코뼈가 부러진 상황에서 코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 구절에서

"뭐야? 또 자신이 아닌, 코넬로부터 구원받는, 백마 탄 왕자님의 현대판 흐름인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참아내는 것 외에는 살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인물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해당 장면이 소설 전체의 중심이자 전환점이 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은, 언제나 그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 그리고 그 요청에 기꺼이 응답하는 코넬까지.


책 처음 페이지의 인용문처럼 메리앤은 코넬의 인격에 영향을 받아, 스스로 달라졌다.


서로를 변화시키는 사랑

코넬 역시 자신의 마음보다 사회적 시선에 더 신경을 썼던 그였다. 그러나 메리앤과의 관계를 통과하며 달라진다.


그 보잘것없는 시선이 두려워 고등학교 시절 사귀는 것을 비밀로 했던 그였다. 그러나 고교 동창들의 새해 파티에서 메리앤에게 키스를 하고, 보란 듯이 사랑한다 말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에피소드에서 다시 이별을 고민해야 하는 순간 "네가 그리워 병이 날지도 모른다고 “, ”내가 여기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줘 “라고 본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한다.


이처럼 두 사람은 비록 여러 차례 어긋나는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랬기에 흔들리고, 실수하고, 고통받았지만 그 모든 시간을 통과했기에 변화되고 단단해진 게 아닐까.


그리고 그녀는 생각한다.

'고독으로 인한 고통은, 그녀가 예전에 가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느끼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는 그녀에게 마치 선물처럼 선한 면모를 선사해 주었고, 이제 그것은 그녀의 것이라고, 사람들은 정말로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324p.


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 코넬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불안해하지 않으며 이야기한다.

“넌 가야 해. 난 항상 여기 있을 거야. 너도 알잖아.” 324p.


『노멀 피플』은 사랑과 사람의 이야기 이면서, 우리가 사람을 통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어떻게 ‘나’를 다시 살아내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한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책을 처음 시작할 때 만났던 인용문과 묘하게 짝을 이루는 구절을 남겨본다.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런 시도를 그만두는 게 어떨까. 차라리 타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상대 또한 기대오도록 내버려 두는 게 어떨까.' 320p.



저 또한 책을 읽기 전, 다른 이의 인격에 강한 영향을 받아 삶의 궤도가 바뀌기도 한다는 걸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분 덕분에 나를 더 사랑하게 된 케이스랄까요.


그래서 고통스러운 이별일지라도 당장의 좌절에 일어설 힘이 없다 할지라도, 저자가 말한 것처럼 그 이후엔 새로운 시작을 만든다는 것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어떤 관계로 인해 삶의 문장이 새로 쓰이기 시작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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