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너머의 풍경 - 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밤의 강물 위로 환하게 빛을 뿜는 거대한 다리의 야경. 어둠 속에서도 굳건히 길을 잇는 모습이 미지의 '국경'을 넘어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삶의 긴 여정과 깨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 이 글은 『국경을 넘어-코맥 매카시』를 모두 읽은 독자를 전제로 한 감상입니다. 작품 전개의 설정보다는 문장에서 파생된 생각들을 중심으로 풀어낸 글이니, 작품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더욱 깊이 공감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코맥 매카시의 『국경을 넘어』를 읽다가 다음 문장에서 멈춰 섰다. 벗의 추천으로 시작된 이 독서는 간결하고 압축적인 그의 문장들이 내면을 채울 때, 마치 거대한 해일처럼 감정의 폭발이 나를 덮쳤다. 한 구절만으로도 울창한 생각의 숲길을 거닐기에 충분했다.
“긴 여행은 종종 자기 자신을 잃게 만들지.”
저 문장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아서 나를 멈춰 세웠다.
삶의 여정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방향을 잃었고, 나라는 감각도, 마음의 자취도 흐려진 적이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방향을 알 수 없어 무작정 더듬는 손길 같았으며, 한 발자국만 내디뎌도 낭떠러지라는 걸 알면서도 내디딜 수밖에 없는 불안감이었다.
본의 아니게 일찍 세상으로 내던져졌고,
겪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시간이 있었고, 안전한 공간으로부터 격리되어 견뎌야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숱한 시간들.
그 끝도 없을 것 같은 긴 여행 같은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견디다
마침내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고 행하는 자리에 섰다.
그 긴 여행은 나를 좀 더 무심하지 않은 사람으로,
조금 더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으로,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한 변화에 발걸음을 보태고 싶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결국 그 길 위에서 나는 타인의 아픔에, 세상의 소외된 목소리에 조금 더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대신 그 선택들로 인해
그전 삶이 추구하던 물질적인 풍요라든가,
각자도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틈에서 각개전투를 하는 마음으로 살아내려 했던 것에서 이제는 거리를 두는 사람이 되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예전엔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많아야
삶이 안정된다고 믿었다.
손에 쥔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불안에 잠식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불안에서 자유로워졌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은 느리더라도 오래도록 곁에 두고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관계에, 가치에, 그 밖의 여러 의미 있는 것들에 시선이 머물고 있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삶을 살았다면,
조금 더 물질적 풍요를 안겨주는 직장에서
조금 더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면
조금은 덜 상처받고, 적당히 타협하며 평탄하게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네 삶에는 '만약'이란 가정은 없지 않은가.
세상은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대로 보이는 법이라고 했다. 장소가 사람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이 장소를 품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장소를 알기 위해서는 그곳에 가서 그곳 사람들의 마음을 보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지만 말고,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소년이 세상을 필요로 하는 만큼 세상도 소년을 필요로 한다고, 그것은 소년과 세상이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190p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건 '만약' 그런 삶을 살았다면,
나의 삶의 굴곡은 훨씬 덜 메말랐겠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협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제 글은 여기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앞에서 밝혔듯, 저는 삶을 대하는 태도도, 저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도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오래 걸어왔고, 조금 덜 무뎌졌으며, 그만큼 마음을 나누는 법도 현재진행형으로 넓게 확장하며 배워나가고 있답니다.
독자 여러분의 '긴 여행'은 여러분을 어떻게 변화시켰나요?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어떤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셨는지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