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너머의 풍경 - 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검은 배경 위에 놓인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표지. 연분홍색 표지에는 파란색 사슴 머리를 한 갑옷 입은 사슴이 창과 방패를 들고 있는 그림이 인쇄되어 있다. 책 오른쪽 측면에는 다양한 색상의 포스트잇이 빽빽하게 꽂혀 있다.]
* 이 글은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를 모두 읽은 독자를 전제로 한 감상입니다.
작품 전개의 설정보다는 문장에서 파생된 생각들을 중심으로 풀어냈지만, 범인을 명확히 언급하고 있으니 아직 책을 읽지 않으신 분은 참고해 주세요.
제목: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 / 옮김: 채성은 / 출판: 민음사
줄거리: 폴란드의 외딴 산골 마을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은퇴한 여성 교사 야니나는 이를 ‘자연의 복수’라고 믿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실에 접근해 간다.
책을 덮었을 때, 뚜렷한 감정이라기보다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것 같은 여운이 남았다.
따뜻하지만 쓸쓸하고, 아름답지만 회한이 밀려드는 느낌.
"나는 내 사망일자를 알고 있다"는 야니나의 말이 두세 번 반복될 때마다 묘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만약 그것이 느닷없는 일이 아니라면, 삶의 끝을 미리 안다는 건 세상을 더 자유롭고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 나는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한층 더 깊이 있게 다듬을 수 있었다.
야니나는 연쇄살인범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그녀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녀의 선택은 복잡한 질문을 남겼다.
자연과 동물, 별과 시를 사랑하고, 세상이 뭐라 하든 자신만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강렬한 자기 확신과 인간 중심적인 사회 폭력에 맞서 기꺼이 심판자가 되어 거침없이 저항하는 인물.
‘자신만의 우주에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 아닐까.
그녀가 죽인 이는 모두 죄를 지은 사람들이었다.
학대자, 폭력자, 침묵의 공범들.
순간적으로는 “죽을 만도 하지”라는 감정이 올라왔지만, 동시에 이런 질문도 따라왔다.
"그래도, 그녀가 집행자가 되어 그들을 죽여도 되는 걸까?"
나는 그녀의 선택 앞에 멈춰 바라보았다.
인간만을 생명의 주체로 보는 사회의 침묵,
자연을 도구처럼 다루는 무관심,
눈앞에서 정의가 무너지는 광경을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하는 무기력함.
야니나는 아무도 듣지 않고, 아무도 행동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방법으로 고분군투하다
결국엔 스스로 판단자이자 집행자가 되었다.
그 이해 앞에서 나는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나에게 던진 질문.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지난한 현실 앞에 변화는 요원하다 느껴질 수 있지만,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다양한 관점을 모아가는 과정이 변화의 작은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 함께 연대하고 그 공감대를 넓혀간다면 더디지만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나의 방식이고, 야니나와는 다른 결의 책임감이라 여겨졌다.”
이 책은 문장 하나하나가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꽈배기 도넛에 입힌 설탕이 떨어지듯 우수수 눈이 떨어졌다."- 11p.
"인간의 시체는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가 아니라 막 풀을 먹여 주름을 곧게 편 리넨 시트처럼 고집스러우리만치 뻣뻣했다." - 21p.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둠이 조금씩 걷히며 흩날리는 눈송이가 허무의 공간을 조금씩 채우기 시작했다. 눈송이들은 일말의 서두름도 없이, 마치 깃털처럼 허공에서 자신의 고유한 축을 따라 회전하면서 그렇게 천천히 떠돌았다.” - 26p.
"먹먹한 슬픔과 비탄. 매번 동물이 죽을 때마다 느껴지는 이러한 회한과 애도의 감정은 아마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나의 애도가 끝나면, 또 다른 애도가 이어지므로 나는 끊임없이 상중(喪中)이다. 이것이 나의 상태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눈밭에 무릎을 꿇고 앉아 차갑고 뻣뻣한 어린 멧돼지의 털을 계속 쓰다듬었다." - 148p.
위와 같은 문장을 읽는 순간 사물은 더 깊이 보였고, 감정은 더 섬세하게 느껴졌다.
"분노는 모든 지혜의 근원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동시에 숨을 고르며 잠시 멈춰 섰다.
분노는 명료함을 줄 수 있지만, 동시에 맹목을 부르기도 하니까.
우리는 감정에 휘둘린 채, 자주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이 문장은 나에게 동의와 경계가 동시에 일어난 문장이었다.
가장 씁쓸했던 장면은 ‘개가 스스로 감옥으로 돌아가는’ 순간(52p.)이었다.
억압적 상황에 길들여진 존재의 무력함을 극명하게 느꼈다.
어쩌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가 만들어 놓은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비판적 사고나 저항의 의지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한 은유처럼 느껴졌다.
이 책 속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詩)가 여러 장에서 인용된다.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이것이다.
“자신이 보는 것을 의심하는 자는 무엇을 행하든 끝내 믿지 못하리라.
태양과 달이 서로에게 의심을 품으면
둘 다 곧 하늘에서 사라질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였다.
나 자신을 믿지 못하면 결국 삶 전체가 흔들리는 게 아닐까.
우리는 흔들리고, 고심하고, 망설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 삶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게 결국,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일지 모른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나에게 많은 질문을 남겼다.
어쩌면 세상은 쉽게 나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파괴와 혐오, 침묵과 무기력이 계속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믿는다.
변화는 더딜지라도
우리가 각자 품고 있는 작은 질문과 행동들을 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조용히 스며드는 변화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결국, 희망은 우리 안에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