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너머의 풍경 – 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이 글은 『이방인』을 2022년 읽고, 제 고민과 사색을 담은 초고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매거진 발행을 준비하며, 그때의 진심을 지키면서도 더 편안하게 읽히도록 문장을 다듬어 보았습니다.]
*부조리: 이치에 맞지 아니하거나 도리에 어긋남. 또는 그런 일.
오늘은 알베르 카뮈의 고전 '이방인'을 통해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소설은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해변에서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라는 인물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게 되는 이야기다.
이 책을 처음 완독 했을 때, 솔직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뫼르소의 이질적인 행동에 불편함만 느꼈고, 판사의 살인 동기 질문에 그가 내놓은 모호한 대답은 수수께끼 같았다. 어딘가 어정쩡한 기분을 남기는 책이었다. 누군가에게 검사를 받는 것도 아니니 '읽었다'는 것에 스스로 타협하고 다시 펼쳐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뫼르소가 취한 한 행동이 나의 오래전 기억을 소환해 냈고, 그 어정쩡함을 넘어서 제대로 소화하고 싶어 재독, 삼독을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비가 억수같이 오던 어느 가을날이었다. 암으로 5년간 투병하던 어머니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학교에 있던 나는 선생님의 ‘집으로 가보라’는 한마디에 뭐라 표현할 수 없지만, 엄마와의 마지막 날이 될 거라는 직감에 휩싸였다. 집으로 가는 내내 ‘정말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라면 임종만은 지켜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오빠는 입을 굳게 다문채 어머니 곁을 지키며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고, 어머니는 잠들어 있는 듯했다. '오빠 엄마 괜찮은 거지? 잠들어 있는 거지?'라고 물었지만, 오빠는 눈물만을 흘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엄마가 덮고 있는 이불 위로 엄마를 흔들며 말했다. '엄마 일어나 봐, 잠든 거잖아. 엄마 일어나 봐'라고 애원했다. 그러다 엄마의 손목을 잡았을 때, 이 세상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차가움이 손을 통해 전해졌다. 그 순간, 엄마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발인하는 날, 나는 울지 않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어머니의 관이 땅으로 내려졌고, 흙을 담은 첫 삽이 관 위에 뿌려졌다. 4일장을 치르는 내내 엄마의 영정사진만 봐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엄마가 그리워 어른들 몰래 엄마의 채취가 배인 베개를 끌어안고는 방구석에서 수건을 입에 틀어막고 울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가시는 길엔 의젓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임종을 지켰던 오빠에게서 들은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은 이러했다. "내가 아파서 너네들 컸을 때 따뜻한 밥 한 끼 만들어 먹이지 못한 게 한이 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식 걱정을 하며 세상을 떠난 어머니였다.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까지 목 놓아 울어버리면 어머니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 속으로 되뇌었다. '엄마, 우리 걱정은 말고 이젠 아프지 않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그런데 갑자기 묘지까지 함께 온 조문객 한 분이 내 등을 계속 떠밀며 다그치듯 말했다. "엄마 가시는 마지막 길인데 넌 왜 울지 않니?, 그렇게 울지 않고 어머니 보내면 어머니가 섭섭해하신다. 울어라!", 심지어 "애가 독하네, 철이 없어서 그런가?"라는 말을 쏟아내며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계속 흔들어댔다. ‘남의 속도 모르면서 왜 저렇게 함부로 말을 하는 거지?’라는 억울한 마음과 겨우 참고 있었던 감정이 뒤엉켜 봇물 터지듯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 아주머니는 그제야 "아이고 참고 있었던 거구나. 내가 몰랐네. 미안하다, 미안해"라며 뒤로 물러섰다. 당시 중학생 아이의 언어로는 복잡다단하게 얽힌 감정에 정의를 내릴 수 없었다.
'이방인'을 통해 그 당시 "억울함"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던 그 감정을 비로소 다시 정의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당사자의 상태와 생각보다 지켜보는 이가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을 거리낌 없이 요구하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사회적 통념상 ‘다들 그렇게 하니까 너도 그래야 한다’는 식의 강요에 대해, 그리고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분노였다.
그것과 별개로, 뫼르소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죄가 아니라, 살인이 발생하기까지의 그의 단편적인 사고와 무심함이 점철된 조건반사적 행동에 죄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감옥 안에서 보인 삶에 대한 애착을, 부조리한 세상임에도 조금만 더 일찍 삶에서 녹여냈다면 어땠을까.
이 책 ‘재미있어?’라고 묻는다면, 재미로 읽을 책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어쩌면 뫼르소의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에 불쾌감을 느끼는 경험으로 끝날 수도 있다. 실제 이 책을 주제로 한 독서모임에서 참여자 중 한 명은 뫼르소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분개하며 그를 사이코패스라고 단정 짓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책에 대한 이해는 각자 다르고 정답이 정해진 것도 아니기에, 그저 내가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 책 이야기를 해보았다.
어느 정도 시간 뒤, 나는 다시 '이방인'을 펼칠 것이다.
그때는 또 어떤 생각이 나를 사로잡을지 모를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