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로 – 일상 속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따라 걷는 시간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숲 속을 향해 걸어가는 소녀와 거대한 나무들이 아치형을 이루고 있는 영화 '판의 미로' 포스터. 본 영화는 넷플릭스를 포함한 여러 ott사이트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이 글은 영화 한 편을 매개로 잊힌 역사와 지금의 현실, 그리고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책임에 대해 사유해 보려 합니다.
※ 영화의 주요 장면과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시청하지 않으신 분은 참고해 주세요."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종종 기존의 책을 더해 드라마, 영화를 추천받는다.
책에 취우 친 편협한 취향을 넓혀보려는 나름의 노력 정도로 보면 적당할 것 같다.
다양한 장르로 취미 영역을 확장해 보자고 마음먹지만, 워낙 책에 대한 편애가 깊다 보니 아직은 ‘의식적인 행사’에 가깝다. 그래서 주말이 다가오면 느슨해지는 마음의 빈틈을 노려, 추천받았던 작품에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오늘 이야기해 볼 영화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2006년 작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다.
손가락을 꼽아보니 상영 이후 시간이 19년이나 지났다.
그러나 영상미는 2025년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19년이나 지나서야 영화를 접하게 되는 나 같은 사람을 생각하면 저장 매체 발전(?)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야기의 배경은 1944년, 스페인 내전(1936~1939)이 종결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이다.
이 영화는 델 토로 감독의 내전 3부작 중 하나로 꼽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정부군과 비달 대위의 비인간적인 살상 장면들을 보며, 스페인 내전에 대한 궁금증도 생겨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군인이었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1936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는 군부, 가톨릭 교회, 지주, 귀족 세력을 지지 기반으로 삼아, 민주 공화국 정부를 무너뜨리고 파시스트 정권을 수립했다.
그로 인해 스페인은 약 40년 가까이 독재 정권을 유지했고, 이 기간 동안 탄압으로 학살된 자국민의 수가 50~6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내전이 한참 진행 중이었던 1937년 4월 26일 스페인 게르니카라는 작은 지역 일대를 프랑코와 동맹 관계를 맺은 나치독일군(콘도르 부대)이 비행기로 2시간 30분 동안 50톤이 넘는 폭탄을 무차별 폭격(게르니카 폭격)하여 1600명 이상의 무고한 시민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더욱 충격적인 건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길 원치 않았던 프랑코 군대와 나치는 폭격한 장소로 군대를 보내 시신을 광장에 모두 모아 불태워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래서 장례를 치르지 못한 것뿐만 아니라 이후 피해 조사까지도 확인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유명한 화가였던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라는 작품을 통해서도 그때의 참상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수많은 시민들이 ‘정적’이라는 이유로 고문, 투옥, 처형당했으며, 특히 여성과 아이, 노인 등 가장 약한 존재들이 무자비한 희생을 강요당했다.
기록에 따르면 ‘공화주의자의 후예’, 에게 ‘올바른 가치’를 심어준다는 국가의 미명 아래, 병원과 교회, 입양기관 등이 합심하여 조직적으로 영유아를 납치·감금하고, 서류를 조작하였다. 피해 아이들은 대부분 공화당파의 자녀들이었으며 우파성향의 가정으로 ‘입양’되거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실종되거나, 살해되었다고 한다. 자그마치 그 수가 1940년대부터 1950년대 초까지 서류로 남은 공식적인 기록만 3만 명 이상이고, 1990년대까지 추청 된 수는 30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이 사실은 2000년대 이후 생존자들의 증언과 문서 발굴을 통해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제대로 과거가 청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로 인해 영화의 배경이 된 1944년도가 얼마나 잔인한 역사적 비애가 깃든 시기였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감독의 세부적인 창작 배경을 알 수는 없어도, 판의 미로 속 배경뿐 아니라 왜 오필리아라는 어린 소녀가 주인공이 되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지는 단번에 수긍이 되었다.
영화는 산속에 숨어든 저항군의 반격과 정부군의 비인간적인 살상뿐 아니라, 일상 속 억압과 침묵, 공포의 장면들을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방해하려는 듯 건조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곧 시선을 오필리아에게로 옮겨 미로 속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자, 봐. 이게 현실이야.”라고
나는 분명 영화의 장면으로 두꺼비 괴물 봤는데, 기득권층의 탐욕이 떠올랐다. 또한 손바닥에 눈이 달린 눈 괴물을 봤는데 오필리아에게 무자비하게 달려드는 모습을 보며, 볼 수는 있어도 자신의 소명을 잊은 채 권력자에게만 충성하며 생각 없이 공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생각났다.
가장 강렬했던 인물은 단연 비달 대위였다. 너의 의견은 필요 없고 내 판단만 중요한 인물.
배고픈 가족을 위해 토끼 사냥을 나왔다는 농부 부자의 항변에도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간단히 그들을 죽여버린다.
목에 총상을 입은 저항군을 향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이유로
무표정하게 방아쇠를 당긴다.
그의 폭력은 지나치게 무표정했다.
분노도, 광기도 없이 담담하게 사람을 제거하는 모습. 인간성이 철저히 말소된 권력의 얼굴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장면들에서 예상치 못한 눈물이 났다.
생각해 보니 그 눈물은 끓어오르는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행해지는 비달 대위의 냉혹하고 잔혹한 폭력성을 지켜보면서, 이 또한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한다는 게 너무 슬프고 안타까웠던 것 같다.
다행히 영화엔 그와 반대의 인물들도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은 사람은 메르세데스다.
겉으로는 비달 대위의 공간에서 일하는 가정부이지만, 실제로는 위험을 감수하고 반군 세력에 약과 음식을 전달하고 정보를 흘리며 사람을 살리는데 동참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저항군인 남동생 앞에서
자신의 행동을 평가 절하하며 권력자에게 기신하여 살아가고 있다고 자책하는 말을 꺼낸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녀는 위험을 무릅쓴 채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분노 대신, 약과 음식, 정보와 편지를 모아 반란군에게 건네는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천하며 저항하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진실의 기억을 붙잡고, 정의를 구현하려 분투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국 사회의 많은 참사와 사건들이 떠올랐다.
피해는 분명 존재하는데,
책임자는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럼에도 정의를 구현하려는 시민들에게
당면한 일을 먼저 처리하고 “나중에 처리하자”는 말로 진실을 흐리고, 기득권은 침묵과 회피로 정의를 덮으려 한다.
그리고 참사와 사고의 악순환은
또다시 반복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진실의 기억을 이어가겠다는 마음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고 믿는다.
메르세데스의 칼이 권력의 심장을 찔렀듯,
우리가 흘리는 조용한 눈물,
우리가 나누는 목소리,
우리가 찾아 나서는 기억의 조각들이
우리 사회의 왜곡된 물길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판의 미로』는 거대한 영웅 서사가 아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오필리아, 메르세데스, 저항군을 도운 의사 등등...
흔들리고 상처받는 나약한 인간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이 옳다는 믿는 것을 묵묵히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영화는 바로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동화를 빙자한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랍니다.
그러니 아이가 보여 달라고 조른다 해도,
이번만큼은 단호해지시길 바랍니다. :)
오늘, 우리는 어떤 폭력 앞에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