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벌레’들의 울림과 희망의 노래

마음의 산책로 – 일상 속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따라 걷는 시간

by 순간의 기록자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넷플릭스 '삼체' 공식 포스터. 밤하늘과 고딕 건물 앞에서 다양한 인종의 주연 배우들이 모여 서 있다. 중앙의 여주인공은 베이지색 블레이저 차림으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으며, 주변 인물들은 각자의 특징적인 복장을 하고 있다. 신비롭고 진지한 분위기 속, 제목 '3 Body Problem'이 하단에 보인다.]


이 글은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 7, 8화를 보고 파생된 개인적 감상을 중심으로 쓰였습니다. 주요 장면과 결말을 언급하고 있으니 아직 시청하지 않으신 분은 참고해 주세요.






오늘 드디어 아끼고 아꼈던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의 마지막 두 에피소드를 봤다. 공포영화와 더불어 현실감 없다고 SF 장르 자체를 꺼렸던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반성한다.


영화를 방불케 하는 웅장한 스케일과 이야기는 인간 본성, 사회 구조의 모순, 극한의 윤리적 딜레마에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며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가는 시간이었다. 시즌1의 피날레 장면을 보며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함께 가슴속 깊이 남은 잔상들을 되짚으며, 나만의 ‘삼체’ 마무리 감상평을 남겨보려 한다.



인간, 그 나약하고도 이기적인 '벌레'들의 초상

가장 마음을 씁쓸하게 했던 장면 중 하나는, 윌 다우닝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누나 부부가 병실로 찾아와 유산을 요구하는 장면이었다. 당장 삶이 사라지고 있는 것을 선명하게 느끼고 있는 동생 앞에서, 물질적인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의 이득만을 얘기하는 누나의 모습.


체념하듯 어머니에게 받은 유산 모두를 누나에게 주겠다고 말하는 윌. 보일 듯 말 듯 윌의 눈에서 흘러내린 한줄기는, 가장 가깝다 여겨지는 혈육에게서마저 마주해야 하는 인간의 본연의 깊은 탐욕에 깊은 환멸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누나가 윌에게 항변하듯 "웨이트리스나 하며 정규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물리학 같은 학문은 꿈도 못 꿨다"라고 자신의 삶을 토로하듯 짧게 지나가듯 내뱉는 대사에서, 영국 또한 다를 바 없는 일그러진 사회의 한 단면이 마음을 더욱 씁쓸하게 했다.


열악한 가정환경 속에서 한정된 자원의 기회는 항상 남성에게 우선 되는 사회, 여성이라는 이유로 꿈조차 꿀 수 없었던 한 개인의 삶. 그리고 그것이 낳은 비극적인 단면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일그러진 사회의 단면을 꼬집듯 보여주었다.


이처럼 '삼체'는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인간 사회의 불평등과 인간 탐욕의 면면을 사실적으로 드러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각성, 가장 찬란하고 비극적인 상실감

하지만 인간의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사랑의 서사는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윌 다우닝은 시한부 삶의 끝자락에서 진청을 향한 숭고한 사랑을 '별'이라는 이름으로 남겼다. 그리고 진청도 윌의 사랑을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 또한 윌을 깊이 사랑했음을 자각하게 되자, 윌의 뇌가 단순한 유해가 아님을 확신했다. 수백수천 만 년이나 떨어져 있다 해도 윌은 여전히 살아있는, 사랑하는 존재로 인식했고, 결국 애인이었던 라지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녀는 윌의 뇌가 삼체에게 회수되면 확률이 ‘0%는 아닐 것’이라는 희망, 즉 "윌이 다시 사람의 모습을 갖출지도 모른다"는 과학자로서는 하기 힘든 기적 같은 소망을 말한다. 그러고는 윌이 좋아했던 지구의 씨앗을 함께 실어 보냈다.


다시는 볼 수 없어도, 완전히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간다 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진청. 그러나 백만분의 일의 성공 확률로 우주로 띄워졌던 윌의 뇌는 궤도를 이탈하고 만다.


궤도를 이탈하는 탐사정을 바라보며 무너지는 그녀의 절망 어린 얼굴. 그것은 단순한 실패의 얼굴이 아니었다. 인류의 희망뿐 아니라, 수백수천 만 년 떨어진 우주 공간을 떠돌 윌을 생각하며 그녀가 느꼈을 좌절감과 상실. 그것은 비극 그 자체로 그녀를 무너뜨리는 듯했다.


희망의 씨앗과 잘못된 믿음에 대하여

인류 종말의 씨앗을 뿌린 닥터 예는 뒤늦게 자신의 과오를 후회했다. 외계인과 가장 가까이서 소통했던 그녀는 사울에게 인류가 대적할 방법을 ‘신의 연주에 끼어든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건넨다.


이는 압도적인 '신'과 같은 삼체 앞에서 인류가 겪게 될 처참한 고통이 따를 것을 경고하면서도 싸움을 멈추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이 마지막 메시지를 통해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삶을 마감하기 위해 과거 외계인과 조우했던 천문대로 향한다.


그곳에서 삼체에게 맹목적 믿음으로 세뇌된 타티아나와 조우하게 된다. 한때 닥터 예를 신에게 자신들을 이끄는 지도자로 바라보고 존경했던 타티아나. 이제는 삼체의 실체를 알아버렸고, 후회하는 모습으로 대척점에 서 있는 닥터 예의 얼굴. 그녀는 타티아나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닥터 예의 눈에 비친 타티아나는 한때 자신처럼 잘못된 믿음에 사로잡혔던 과거의 모습이자, 동시에 맹목적인 신념이 얼마나 무서운 광기인지를 느끼게 하는 자화상을 보는 듯한 기분이지 않았을까.


나에게 타티아나의 맹목적 믿음은, 소름 끼치는 현실의 그들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믿음을 신념화하고 그것이 어긋나다고 느꼈을 땐 폭력까지도 서슴지 않는 극우 집단이나 혐오/차별주의자들이 그들이다. ‘잘못된 믿음’이 얼마나 무섭게 개인의 주체성을 잠식하고 타인을 해할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경계하며 곱씹게 되는 장면이었다.



'벌레는 어디에나 있고, 없앨 수 없는 우리 자신이다 ‘

윌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희망이었던 계단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깊은 절망에 빠진 진청과 사울에게 정보요원 다스는 숲 속의 수천수만 마리의 벌레(매미) 떼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들은 우리를 벌레로 본다. 어디에나 있고, 없앨 수 없는 존재. 벌레는 안 죽는다."

이 말을 통해 진청과 사울은 다시 희망을 되새기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들의 발걸음이 시즌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삼체가 아무리 인류를 '벌레'라 멸시하고 박멸하려 해도, 인간은 그 벌레의 끈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는 역설적인 희망이었다. ‘그래, 우리를 벌레라고 한다면 벌레의 존재 이유와 생명력을 보여 주겠다.’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치열한 분투 속에 피어나는 해학적이고 승화적인 모습. 그것 또한 나약하고 삐뚤어진 인간 본성에 깃든 모습 중 하나이지 않을까.


나는 이 장면에서 ‘퀴어’라는 단어의 시작이 행동하는 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사회에 재평가되고, 재정의된 역사와 겹쳐 보였다. 삼체에서 얘기되는 ‘벌레’라는 개념과 ‘퀴어’라는 단어의 역사가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초 '퀴어'라는 단어 또한 국가 권력과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 의해 '이상한', '기묘한'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시작되었다. 다시 말해,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들은 '벌레'로, 사회적 '타자'이자 혐오의 대상이 되어 박멸되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곤 했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가. 아무리 소수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해도 '어디에나 있고, 없앨 수 없는 존재'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오늘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


또한, ‘박멸’ 하려 했던 부당한 국가권력과 혐오세력에 맞서 동성애 권리 운동을 했던 이들을 통해 ‘퀴어’라는 단어는 이제 전 사회적으로 다양한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포괄하는 긍정적인 의미로, 포용적이고 자랑스러운 상징적 의미로 재정의 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 우리 사회는 이제 차별적인 시선과 혐오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을까? ‘누구도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사회적으로 명문화하여 법적 제도적으로 인권을 보장하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다. 우리 국민 70%가 동의를 하는데도 온갖 억측 섞인 프레임을 씌워 18년 동안이나 제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별들의 침묵 속,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

'삼체'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이기적이며, 때로는 어리석은 존재인지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매회 증명하듯 드러나는 고독하고 상처받는 인간들의 모습은 늘 씁쓸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모든 나약함과 좌절 속에서도, 인간은 결국 서로를 통해 희망을 찾고, 다독이며 대안을 찾아 나선다. 다스의 단순한 메시지가 좌절에 빠진 진청과 사울을 다시 일으켜 세웠듯, 인류는 결국 혼자가 아닐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게 아닐까.


나는 이 방대한 SF 서사 앞에, 우리에게 던지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외로워 말라.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인류의 구원이 압도적인 기술이나 독단적인 리더십에 있는 것도 아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가슴에 따뜻한 이타심을 품으며 함께 삶을 살아가자"는 따뜻한 연대의 외침으로 들렸다.



매미 떼를 통해 '벌레는 죽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우리 사회의 여러 환영받지 않는 존재들, 삼체에서 말하는 듯한 여러 '벌레'들(소수자, 차별받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던진다고 생각하시나요? 서로에게 힘이 되어야 할 우리는, 어떤 고민과 대안을 찾고 함께 살아가야 할까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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