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로 – 일상 속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따라 걷는 시간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촬영 카메라 속 인물들이 프레임 안에 포착되고, 그 장면은 외부에서 여러 시선에 의해 바라보고 있다.]
브런치스토리는 내게 생각을 풀어내고 소통할 수 있는 즐거운 놀이터다.
많은 작가들의 좋은 글을 손쉽게 접할 수 있고, 덤으로 공감과 자극도 함께 따라온다.
틈날 때마다 좋은 글을 읽고 라이킷 버튼을 누르는 것은 나름의 만족감을 준다.
오늘 마음의 산책로를 함께 걸으며 나누고 싶은 주제가 마음에서 일어나 노트북을 켰다.
며칠 전 여느 때와 같이 구독 중인 작가님들의 브런치에 들러 글을 읽고 라이킷 버튼을 눌렀다.
그러다 최근 천재 인연 추리단 이라는 소설을 집필하시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 무연고 작가님의 <우리의 삶을 채워주는 것들>이라는 매거진에 올려진 글 (가난함의 반대편에는)을 읽고 라이킷 버튼을 누르려는데 순간 멈칫했다.
내가 이해한 작가님의 글은
부유함과 가난이 비교되는 물질적 풍요를 넘어 가족 간의 사랑과 나눔, 소박한 행복의 가치를 강조하는 글이었다.
한 마디로 라이킷 버튼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왜 주저하지?라는 생각이 들어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내가 찾아낸 결론은 작가님의 글이 문제가 아니라 그 TV프로그램이 나를 주저하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뒤늦게 이유를 깨닫고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 라이킷 버튼을 눌렀다.
문제적이라고 느꼈던 그 TV 프로그램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유튜브 검색을 통해 해당 TV 프로그램을 찾아보았다. 어느 종편 채널에서 외국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특정 프로그램의 홍보나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고, 글의 초점을 '미디어가 가난을 다루는 방식'이라는 본질적인 문제의식에 맞추기 위해 프로그램명은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한국에서 제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작은 안도감이 들었다.
내용은 부자 가족과 가난한 가족이 일주일 동안 서로의 집과 생활비를 바꿔 살아보는 체험 프로그램이었다.
가난한 가족은 부잣집에서 넉넉한 비용으로, 부자 가족은 가난한 집에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생활한다.
그리고 프로그램 말미에는
부자 가족이 가난한 가족에게
그동안 경제적 이유로 갖지 못했던 물건들을 깜짝 선물로 건네고,
가난한 가족이 기뻐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그런 내용이다.
내가 주저했던 지점은
미디어가 가난을 어떻게 다루고 소비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과 연출 방식에서 간접적인 모멸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이해하는 데 가장 적합한 단어는 '대상화'와 '착취적 시선'이 아닐까 싶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그들의 결핍을 보여준 뒤,
부자가 '선행'이라는 이름으로 일시적 물질 지원을 제공하는 그림은
마치 가난을 구경거리처럼 만들고 소비하는 방식으로 느껴졌다.
이러한 방식은 가난한 사람들을 프로그램 속에서 '소재'이자 '도구'로 전락시킨다.
또한 그들의 존엄성은 부자들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는 배경장치로 소비될 뿐이다.
물론 프로그램을 제작한 의도나
선행을 베푼 부자 가족의 마음은 순수했을 수 있다.
그들은 분명 좋은 뜻으로 베풀었을 것이고,
도움을 받은 가족 역시 당장의 어려움 해소에 기뻐했을 것이다.
심지어 프로그램을 본 많은 시청자는
이 장면을 보며 '훈훈하다', '감동적이다'라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선의로 포장된 구조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타인의 연민과 구경거리 속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이 '훈훈함' 속에는
가난의 본질을 외면하고,
오히려 가난을 전시하고 소비함으로써
시혜자의 만족감을 채우는 미묘한 폭력성이 숨어있다.
순수한 의도로 시작되었을 텐데
'내가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나?'라는 자문을 던져보기도 했다.
부자 가족은 억울할 수 있고,
가난한 가족은 도움에 감사할 수 있으며,
시청자들은 그저 감동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였으면 됐잖아.
뭐가 문제인데?
바로 그 지점이 문제였다.
의도가 아무리 선했을지라도,
미디어가 특정 대상을 다루는 방식은
그 대상에게, 그리고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와 인권 감수성을 갖추는 게 아닐까 한다.
* 미디어 리터러시: 미디어 정보 해독력(각종 미디어 정보를 주체성을 갖고 해독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그 이면에 숨겨진 의도와 프레임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따뜻한 감동'이라는 포장지 안에서
가난이 어떻게 전시되고 소비되는지,
그리고 이것이 과연 진정한 공감과 이해로 이어지는지를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인권 감수성: 인권(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감수성(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
즉, 인간으로서 가지는 기본적 권리에 대한 말이나 상황에 민감하게 느끼고 이해하는 마음이다.
방송 제작자라면 시청률에 앞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인권감수성을 고민해야 한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동정의 대상이나 흥미 유발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고,
그들의 주체성과 목소리를 존중하며,
일회성 도움보다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가난은 단순히 개인의 게으름이나 불운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는 복잡한 현상이다.
이를 단순히 '물질적 결핍'으로만 축소하고,
일시적인 시혜로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완전히 흐리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미디어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구조를 이해하고
관점을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정한 공감은
상대방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을 넘어 그들이 처한 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며,
더 나아가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우리가 감동한 그 장면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