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로 – 일상 속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따라 걷는 시간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영화 『서브스턴스』 공식 포스터. 중앙에는 입술을 내밀고 손키스를 보내는 여성(데미 무어)의 클로즈업이 배치되어 있고, 주변엔 핑크빛 배경 속 또 다른 여성의 눈물, 주사기, 방 번호 503, ‘더 아름답고 완벽한 나’라는 문구 등 강렬한 상징 이미지들이 조각처럼 나열되어 있다. 외모, 젊음, 자아의 경계를 넘나드는 바디 호러이자 심리 스릴러.
※ 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시청하지 않으신 분은 참고해 주세요.
오늘 풀어낼 이야기에 영감을 준 영화는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서브스턴스』다. 친구가 추천할 당시, 재미있고 ‘적당히’ 고어스럽다고 했지만, 공포물 초보자인 나로서는 어느 정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피칠갑을 하는 영화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초보자의 시각으로 하는 말이다.
영화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외모 지상주의, 나이 듦에 대한 강박, 자아와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대중의 시선에 굴복하는 자기 파괴를 비판하려 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의 의도와 메시지는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났다. 충분히 잘 찍은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본 뒤에도 무어라 콕 짚어 말할 수 없는 찝찝한 불편함이 남았다. 초보자의 시선으로 인한 극단적이고 적나라한 피칠갑 영상에 대한 거부감은 아니었을까 잠깐 생각해 봤지만 그 이유는 아니었다. 이후, 감상평을 묻는 친구의 질문에 말하기를 뒤로 미루고는 마음에 물음표를 남겼다.
다음 날 아침, 루틴으로 포함된 차를 홀짝이며 베란다 너머 푸른 자태를 뽐내는 나무친구들을 눈에 들였다. 멍하니 의식의 흐름을 좇다 그 물음표가 떠올랐다. 마땅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에 불편함의 근원을 찾기 위해 ‘영화를 다시 봐야 하나?’,라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영화를 다시 봐야 하지?’를 생각하다 순간,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했다.
나란 사람은 글 쓰는 걸 누구보다 어려워했다. 연애 당시 편지 받는 게 너무 좋다는 전 애인분의 소박한 바람에도 애써 모르는 척 지갑만을 열었다. 그러다 결국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거치고서야, 그분의 강력한 요구로 생일만큼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편지를 쓰게 됐다.
그랬던 내가 2022년 6월 초 브런치스토리팀에 문을 두드렸으니 그분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사람 오래 살고 볼 일이야’라고 했을 것 같다. 글쓰기를 그토록 어려워했던 내가, 심지어 어두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호기롭게 도전장을 던졌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고작 4, 5편의 글만으로도 나가떨어지기 충분했다. 호기로웠던 도전은 나약한 자신에 대한 실망과 혐오, 그리고 부담감만을 남긴 채 나에게서 멀어졌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귀인(?)을 만나 너무나 어이없게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되었다. (쓰지 못했던 마음을 다시 쓴다는 것) 다행히 지난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손에서 놓지 않았던 책과 삶의 경험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지금도 글쓰기는 여전히 쉽지 않지만, 부족한 글임에도 기꺼이 응원의 ‘라이킷’과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의 따뜻함 속에서 설렘과 기쁨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올해 5월부터 글쓰기를 시작하며 주당 최소 2개의 글은 올리겠다는 나 자신과의 다짐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일상 속 머무는 순간들을 좀 더 섬세하게 포착하려 하고,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을 글로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의식적인 마음가짐이 영향을 주어 『서브스턴스』또한 '작정하고 ‘ 집중해서 보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를 본 뒤 느꼈던 알 수 없는 불편감에 대해 혹시 그 ’ 작정한 ‘ 마음이 문제였을까 생각해 봤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이유가 되지 못했다. 내가 잡아낸 실마리는 다름 아닌 영화를 바라보는 내 태도의 문제였다.
일반적 나의 영화 보기는 ‘사심’을 가지고 영화를 봤다 한들 집중하다 보면 대부분의 관객처럼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몰입된다. 내가 주인공이 되거나, 감정이 이입되는 역할에 나를 연결 지어 1인칭 시점으로 생각하는 경우들 말이다.
주인공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젊은 시절 대중의 인기와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스타였다. 영화의 시작은 시간이 흘러 그녀는 50살 생일을 맞았고, 예전의 명예와 영광의 잔여물로 남겨진 아침프로의 운동강사 자리마저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해고 통보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는 지금의 나는 어떤가? 젊음의 대명사로 지칭되는 20대를 지나 30대와 40대를 갓 지났다. 아침을 맞을 때마다 내 얼굴과 신체는 식단과 운동 같은 온갖 노력에도 코웃음을 치며 나이 듦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처럼 『서브스턴스』는 그녀가 왕년의 스타였다는 것과 극적인 장치만 다들 뿐 지금의 나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다시 말해 스파클로 동화되어 생각하기 충분하다는 말이다.
평소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인해 벌어지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사회적 압력, 외모 지상주의와 나이 듦에 대한 멸시는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 자부했다. 때문에 나름의 중심을 잡고,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서브스턴스』는 그런 나를 ‘너 또한 사회적 모순 앞에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걸 직면하게 해 주었다.
만약 글을 쓰는 행위에 몰두하지 않았다면, 『서브스턴스』는 그저 '영상이 너무 강렬해서 좀 찝찝한 뒷맛을 남기는 영화' 정도로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을 쓰는 행위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어준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모호했던 감정의 형태가 글을 쓰는 과정에서 명료해졌다. 그 물음표의 끝이 예상치 못한 나 자신의 어두운 민낯과 대면하게 했던 그 순간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물음표를 놓지 않는 글쓰기를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때문에 불편한 진실은 앞으로도 나를 사정없이 흔들고 아프게 할 테지만, 그 순간들을 기꺼이 즐기며 소중한 여정의 벗으로 함께 변화해 나가겠다 다짐해 본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궁금증을 담아 여쭈어봅니다.
여러분의 글쓰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기록이었나요, 대면이었나요, 아니면 피난처였나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