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로 – 일상 속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따라 걷는 시간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어두운 배경 속, 알렉스 샤프가 연기한 윌 다우닝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얼굴 오른쪽 절반은 점차 해체되며 해골과 우주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3 Body Problem’과 공개일, 넷플릭스 로고가 함께 배치된 공식 홍보 포스터.]
이 글은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 6화를 보고 파생된 개인적 감상을 중심으로 쓰였습니다. 주요 장면과 결정을 언급하고 있으니 아직 시청하지 않으신 분은 참고해 주세요.
천천히 아껴보는 드라마, 넷플릭스 《삼체》 6화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인이 지구인을 ‘벌레’라 부르고, 400년 뒤 지구에 침공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 세계에 퍼지자, 인간 사회는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거리엔 폭동이 일어나고, 가로등마다 목을 맨 이들이 줄지어 걸려 있다. 외계인을 신처럼 떠받드는 새로운 종교까지 등장한다.
그 장면들을 보며 생각했다.
불안에 잠식된 인간은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을까.
죽음을 선택하거나, 광신에 기대거나, 타인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겨우 자신을 지탱하려는 모습들. 그 무너짐은 너무도 빠르고, 자연스러울 만큼 비극적이다.
공포는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고, 무력함은 믿음을 잃게 한다.
믿음을 잃은 인간은 결국, 자신이 먼저 무너지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그 절망의 끝에서, 더 이상 지구에 희망이 없다고 믿고 외계인을 불러들인 인물—예원제.
자신의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선택, 인류의 운명을 외계 생명체에게 넘긴 그 결정에 대해, 진청은 묻는다.
예원제는 말한다.
“구세계를 쳐부수고, 신세계를 이룩하라.”
그 옛날, 그녀의 아버지가 홍위병에게 죽임을 당하던 시절, 자신이 유일하게 공감했던 구호였다고.
그녀는 그 문장을 통해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려 한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이해받을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던 삶.
살아남는 것 자체가 전부였던 그녀의 시간 속에서,
고통은 끝내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채 응고되었고,
절망은 무지한 독단으로 굳어졌다.
절망은 어떻게 그렇게 변질되는 걸까.
당장 오늘 나의 안위조차 긍정할 수 없는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고립된 자아가 만들어낸 또 다른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예원제의 대답 앞에서도 진청은 흔들리지 않는다.
“당신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모든 인류를 배신했다.”
예원제는 외계인의 침공조차 인간의 위선과 거짓에 대한 응징이라 말하며 자신의 결정을 두둔한다.
그리고 진청은 말한다.
“당신 딸은 당신을 위대한 물리학자라고 했지만,
당신은 그렇게 기억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반역자야.”
그 대답에 예원제는 되묻는다.
“그럼 너는 어떻게 기억될 것 같아?”
진청은 단호히 대답한다.
“맞서 싸운 사람으로.”
그 순간, 진청은 그 어떤 타협도 회피도 않겠다는 투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서로를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자주 흔들리고, 불안에 잠식되며,
어떤 날은 스스로를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럼에도,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미는 사람들—
진청처럼, 끝까지 묻고 저항하는 사람 덕분에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인간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기억하는 것,
그 자체가 어쩌면 구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윌 다우닝.
그는 암에 걸려 죽어가면서도 진청에게 자신의 감정을 끝내 말하지 못한다.
친구들의 응원에 아픈 몸을 이끌고 고백하러 갔지만,
연인과 함께 있는 진청을 보고는 조용히 돌아선다.
사랑을 하면 표현하고 싶다.
상대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건 너무나 당연한데,
다우닝은 그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아픈 것을 이유 삼아 고백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는 걸.
그 고백이 오히려 그녀에게
무책임한 감정의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그는 말 대신,
더 넓고 멀리 닿는 방식을 택했다.
자신의 마음보다 그녀의 삶을 먼저 고려한 사랑.
허공에 흩어질 무겁고 아픈 말이 아니라,
물리학자이자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진청에게 그는 그녀의 별을 사는 것으로 마음을 전했다.
그것은 다우닝이 택한,
가장 조용하면서도 단단한 사랑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
누군가가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우리는 서로를 더 자주 돌아봐야 한다.
나 역시 때로는 불안 속에 흔들리고,
어떤 날은 무너질 듯한 감정에 잠식되어 살아간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
“나도 그래, 나도 불안해.”
그 말 한마디가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건 아닐까.
그렇기에, 인간의 위선과 절망 속에서도
끝내 질문하고, 맞서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다시 서로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당신은, 누군가의 어둠을 함께 걸어준 기억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