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시간의 조각들 — 말해지지 못한 존재와 기억을 복원하는 시간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해 뜨는 아침, 여성 러너가 무릎을 꿇고 앉아 러닝화를 단단히 묶고 있다. - 그림 ai]
기억을 더듬으며 날짜를 다시 한번 체크했다.
“분명히 전화를 주셨을 때 9시 반이라고 들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문 앞에서 5분 정도를 서 있었다. ‘뚜벅뚜벅’ 계단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활동가로 보이는 분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아직 출근 시간 전이라 다들 오고 있을 거예요.”
“아, 네.”
사무실 창문들을 열어젖히며 별일 아닌 듯 대답을 하는 활동가를 보며, 다시 한번 시계를 힐끗 쳐다봤다.
5분 정도가 더 지나자 활동가들이 하나, 둘 들어오더니 9시 반 정각이 되자 거짓말처럼 모든 인원이 출근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출근시간은 업무 시간이라며 최소 30분은 일찍 전에 출근해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잔소리를 건네던 일반 직장 부서장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전했더니 이후 돌아온 말이 신선했다.
“그런 강요를 하면 안 되죠. 그렇게 30분 전 출근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 준비시간까지 노동시간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노동자 기준의 사고가 낯설었다.
그리고 또 하나. 호칭은 위계에서 자유롭기 위해 모두가 이름이나 별칭으로 불렸고, 직급에 상관없이 서로 존대를 했다. 위계에 따른 호칭을 부여하지 않은 평등한 관계가 자연스레 자리 잡혀 있었다.
이런 조직 문화 속 일원이 되어 함께 활동을 해간다 생각하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쌓여가며 이곳의 수평적 문화와 자유로운 의사피드백은 내 안에 깊이 새겨져 버린 수직적 문화와 충돌하며 혼란을 일으켰다. 다시 말해 낯선 공간 속 나를 바꿀 필요가 없었던 곳에서 새로운 시스템 속에 마주한 나는 암흑의 1년을 겪게 된다.
C단체는 인원이 대표, 사무국장, 나, 활동가 1명 해서 총 4인이었다.
업무 분야가 나누어져 있기보다 한 활동가가 여러 영역을 집행했다. 막히는 게 있다면 사무국장과 바로 소통해 해결하면 되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D단체는 달랐다. 인원도 5배 이상 많았고, 체계와 틀이 명확했다. 업무는 혼자 처리하는 게 아니라 팀 안에서 업무별 주담당을 정하고, 팀 회의를 통한 피드백 속 사업을 함께 집행해 나가는 구조였다.
성명을 쓰던, 기자회견문을 쓰던, 현수막 만들든 피드백은 빠지지 않았다. 고민 끝에 결과물을 내놨지만 수정은 이어졌다. 위축감이 들 때도 있었고, 부아가 치밀어 올라 “이럴 거면 님이 하지 왜 나한테 시켜?”라는 말을 속으로 외치며 이를 악문 적도 있었다.
노동, 복지, 건강, 미디어, 반차별, 성폭력 등 수많은 영역에서 성평등을 지향하며 활동하다 보니 긴급 사안이 터지면 기자회견문 작성, 현수막 제작, 장비점검, 발표자 섭외까지 무엇하나 손이 닿지 않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사적인 삶도 흔들렸다. 그 시절 애인과 관계가 틀어져 결국 이별을 맞았고, 정서적 불안은 더욱 깊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둘까’라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러나 곧바로 “야, 정신 차려! 내가 어떤 마음으로 들어왔는데”라며 스스로를 붙잡았다.
얼굴은 어두워지고 말도 줄어들었다. 팀장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버티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 나도, 팀도 바뀌어갔다. 같은 팀 연차 높은 동료들과 팀장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나는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피드백에 힘들어하는 신입활동가를 마주할 때면 이해시키려 노력하는 나를 본다.
지금은 피드백이야 말로 우리가 함께 더 나아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언어라는 걸 안다. 그렇게 나는 함께하는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다져나갈 수 있었다.
사무실에만 앉아있던 나에게 현장은 낯설고 강도는 높았다.
“활동가는 체력이 우선이다.”라는 생각으로 입사한 뒤, 출퇴근길 왕복 12~14Km의 거리를 자전거로 다니고 푸시업 챌린지를 시작했다. 정자세로 1개도 못하던 내가 하루 100개를 채울 정도로 몸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무리한 욕심은 화를 불렀다. 양쪽 어깨에 오십견이 찾아와 2년 넘게 고생해야 했다.
도수치료도 잠깐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차라리 PT를 받을 걸 하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을 굳힌 뒤, 병원에서 뼈에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잘못된 자세였는지도 모르겠다는 내 말에 트레이너는
“잘못된 자세 때문이 아니라,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운동을 계속해서 그래요.”
헬스장에서 만난 트레이너에게 들은 말은 충격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몸은 욕심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버릇은 완전히 버리질 못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나만의 건강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2022년에는 “1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하기”를 결심했고, 401일간의 운동을 해내며 그 약속을 지키기도 했다.
지금은 러닝의 재미에 완전히 빠져서는 매일 7~10Km의 거리를 달리며 꾸준히 나를 지키고 있다.
그렇게 활동가로서의 길을 10년째 걸어왔다.
이제는 버티는 시간을 지나, 내가 좋은 동료가 되고 좋은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올해, 조직의 배려 속에 안식년을 맞게 되었다.
사회인이 되고 처음 가져보는 길고 깊은 쉼이다.
‘돌아갈 땐 업그레이드된 내가 아닐지라도, 적어도 업데이트된 나로 꼭 돌아가자.’
그 다짐을 마음에 새기고 소소한 것들을 챙기며, 책을 읽고 운동을 하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다음 회차는 에필로그를 마지막으로 『기록되지 않은 아이』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