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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ll Kim Mar 03. 2021

영국 병원 체험기

영국의 의료 시스템은 국영인 National Health System (NHS)이다. 앰뷸런스 한번 부르면 니오는 몇 백만 원 청구비가 무서워 참는다는 미국의 의료 괴담(?)과 비교해서 영국의 의료는 이민 가면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만큼 순조롭지 않았고 수준 높은 한국 의료 서비스에 익숙해진 덕에 높아진 기준을 충족시키기엔 부족했다.

약간 영국 의료 체계를 이민자 관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NHS는 기본적으로 세금으로 꾸려지기 때문에 영국 시민 및 영주권자는 무료이다. 과거엔 이민자도 차이가 없었지만, 2016년쯤에 이민 비자 비용에 NHS 비용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연간 비용이고 영국 재정 상황에 따라 금액은 변동할 수 있으니 비자를 준비하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결국 가족 포함 수백만 원에 비용에다 월급에서 세금으로 NHS를 내지만 생각보다 혜택을 받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우선은 의사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일반 병원을 가기 위해서는 우선 동네 의원 (General Practitioners, GP)에 예약 후에 방문해야 한다. 그 후에 GP 의사가 소견서를 써주면 일반 병원으로 가게 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예약 후 GP 방문까지 1주 정도, 그 후에 일반 병원까지 가면 대부분 간단한 병은 낫게 된다. 그래도 빨리 의사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병원 응급실로 가는 것이다.

General Practioner (GP)

영국 생활 초반에 나의 교통수단은 자전거였다. 자전거로 30분 정도 거리라 운동 삼아 출퇴근을 하던 중에 공원 주차 방지 기둥에 넘어져서 갈비뼈와 손가락을 부딪혔다. 혼자 넘어진 거라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다시 일어나 가던 길을 갔다. 다음날 사무실에서 일어난 일을 동료에게 말하니  깜짝 놀라며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갔다. 아침에 일어날 때 통증도 있던 차라 동료의 도움으로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도착해서 당황한 것은 우리나라 응급실처럼 응급 침대가 있는 공간이 아니라 우선 접수대가 나를 맞았다. 접수를 고 언제나 이름이 불릴까 하염없이 기다렸다. 한두 시간이 지나니 그제야 주변에 같이 기다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응급실로 앰뷸런스를 타고 오거나 출혈 같이 눈에 띄는 응급 환자가 아니면 우선순위에 밀리고 보통 서너 시간을 대기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한다. 이것을 알턱이 없는 나는 불안한 마음에 접수대를 서성이고 몇 번 확인 끝에 드디어 의사를 볼 수 있었다.

내가 간 병원은 회사 근처인 Basildon에서 제법 큰 대학 병원이었고, 나중에 둘째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만나본 의사는 사정을 듣더니 팔을 흔들어 보라고 한 후  통증을 확인하고 괜찮다고 하니 손가락만 X-ray만 확인하는 게 아닌가. 더군다나 손가락 뼈는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정상이라며 정 아프면 진통제 사 먹으라고 했다.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고 회사를 하루 쉬었음에도 황당함은 가시지 않았다. 계속 진통이 없어지지 않아서 한 달 뒤에 한국에 들어온 차에 정형외과에서 사정을 얘기하니 바로 흉부 X-ray를 찍으니 갈비뼈가 금이 갔지만 붙고 있는 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영국 병원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고, 간단한 병은 참아서 그 후로 한 번도 개인 질병으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 병원에 인상 깊은 경험도 있었다. 둘째가 영국에서 태어나고 3주 남짓한 2018년 2월 말쯤에, 신생아 정기 검사를 위해 건강 도우미 (Health Visitor)가 집에 방문했다. 임신하면 한국만큼 산부인과 의사를 자주 보진 못하지만, 출산 전후로 해서 산모와 태아, 그리고 신생아의 건강을 집에 출장 (?) 와서 챙겨준다.  Health visitor는 간호사나 산파(Midwives, 옛날 우리나라 산파보다는 의미가 넓은 개념이고 정확한 이미지를 얻고 싶다면 Netflix의 "Call the Midwife"를 추천한다)가 보통 맡는다. 별 걱정 없이 Health visitors를 맞았는데, 변을 잘 못 본다는 얘기와 얼굴색을 보더니 바로 병원에 가보라고 얘기하는 게 아닌가. 놀란 마음에 Basildon 병원의 응급실로 달려갔다. 서너 시간을 각오했지만 이번엔 진짜 응급으로 인식됐는지 한 시간도 안돼서 의사를 볼 수 있었다. 바로 황달 검사를 하고 얼마 후에 결과를 받아 보니 황달 지수 (Jaundice level, or Bilirubin level)가 1000 mmol/l (or 58.4 mg/dl)  이상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빛 치료론 부족하고 혈액 교환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우선 신생아 중환자실 (NICU)으로 옮기고 담당 의사와 간호사가 정해졌다. 다행히 혈액 교환 전에 빛 치료로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전에 아버지 입원해 계실 때 몇 달 경험으로 병원 생활은 익숙해졌지만, 3주 된 아들을 인큐베이터에 지켜보는 마음은 안타까웠다. 어려운 과정에 인상 깊었던 것은 전담 의사와 간호사가 24시간 붙어 있으면서 돌봐주고 보호자까지 신경 써주는 것이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영국 병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게 된 계기였다.

Thank you for saving my son, Basildon hospital!

1주일 지나서 안정을 되찾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후에도 몇 달가량 병원에 방문을 요청하여 사후 경과까지 챙겨주는 것에 다시 한번 감동을 받았다. 얼마 후에 청구서가 날아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원래 병원비는 무료지만 신생아는 비자를 받기 전이라 외국인으로 처리가 되어 3백만 원의 청구비를 받았고, 출생 후 3개월까지는 부모의 비자로 커버가 된다는 규정을 확인해서 3십만 원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영국 병원의 극과 극을 경험해보니 당연하게 누렸던 대한민국의 선진 의료 시스템에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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