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엄마
어쩌다 보니 싱가포르 기러기 엄마의 삶은 태릉인의 삶과 같다.
서울이었으면 아빠가 몸으로 함께 놀았겠지만, 어쩌겠는가. 만능 엄마가 되는 수밖에...
태릉인의 아침은 씽씽이와 함께 시작된다.
짧은 등굣길이지만 아들은 전속력으로 씽씽이를 타고 등교를 한다. 나의 100미터 달리기는 필수이다. 아침부터 땀에 흠뻑 젖는다.
집에 와서 잠깐 정비를 하고 콘도에 있는 헬스장으로 간다. 나를 위한 운동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간단한 근력운동과 30분 걷기는 소중한 힐링 타임이다.
3시가 되면 아들을 픽업하러 나간다. 모자와 선크림은 필수이다. 하교 후 바로 집으로 오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뺑뺑이를 타기도 하고 ( 원래 이름은 회전무대라고 한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모래놀이를 하기도 한다. 아들의 선택에 따라 나는 뻉뺑이를 내내 돌리거나, 나도 신발을 벗고 모래성을 같이 쌓는다.
수영이라도 하고 싶다는 날이면, 둘 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속으로 풍덩이다. 이제 막 물에 뜨기 시작한 아들은 구명조끼를 벗고 수영장을 누비기에, 물속에서도 밀착마크는 필수이다.
주말이 되면 태릉인의 훈련은 강도가 더욱 세진다.
일단 군장 배낭 같은 24리터 배낭에 각종 외출용품을 넣는다. 도시락, 여벌옷, 크록스, 모자, 비상약품, 물, 간식 등등등. 배낭을 메고 어디든 출발이다. 차가 있다면, 남편이 있다면 짐을 나누겠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혼자 가방을 둘러멘다.
어떤 날은 집 근처 호수공원 놀이터에서 5시간씩 논다. 태양이 작렬하고 중간에 소나기가 쏟아져도 아들은 매우 신이 난다. 덩달아 땀으로 샤워하는 건 나다. 그래도 집 근처에 이렇게 멋진 친환경 놀이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어떤 날은 근처 스케이트파크에서 씽씽이 훈련을 한다. 아들이 500미터도 더 되어 보이는 트랙을 씽씽이로 달리는 동안 나는 자전거로 아들의 뒤를 쫓는다. 아들 혼자 트랙을 돌다 무슨 일이 있을 수 있어, 자전거로 같이 트랙을 돌다 보면 허벅지가 뻐근한다.
또 어떤 날은 학교에서 달리기 행사가 있다고 한다. 부모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을 줄 알았더니 꽤나 모였다. 댄스로 몸을 풀고 아이들과 같이 학교 운동장을 5바퀴 달린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아들을 쫓아 달리다 보니 나의 아드레날린도 폭발한다. 선생님이 뿌려주는 물을 맞으며 나도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렇게 밖에서 놀다가 더우면 또 수영을 하겠다고 한다.
그래.. 아직 에너지가 남았구나. 수영해야지... 수영하자. 그래도 땀에 흠뻑 젖은 몸을 수영장에 맡기니 정말 시원하긴 하다.
일요일에는 가끔 성당에 간다. 초반에는 매주 가다가 요즘에는 약속도 생기고 해서 '가끔'이라고 하는 게 양심적일 것 같다. 성당까지 가는 버스가 마뜩지 않아 자전거를 타는데, 아들을 태우고 편도 15분씩 30분을 달리다 보면 허벅지가 펌핑됨이 느껴진다. 근력 운동이 따로 없다.
회사를 다니며 거의 매일 마셨던 카페라테를 마시지 않은지 3개월이고, 외식은 일주일에 한두 번이 전부이다. 매일 운동을 한 시간씩 하고, 아들과 땀을 흘리며 노는 시간도 매일 한 시간 이상이다.
본의 아니게 매우 건강한 태릉인의 삶을 살고 있다.
아들 가진 엄마가 모두 태릉인은 아닐 테다.
하지만 언제 또 이렇게 아들과 헉헉거릴 때까지 같이 땀 흘리며 운동을 할까 싶어 난 열심히 태릉인으로 살기로 했다. 언젠가 아들이 나를 찾지 않는 날이 올 때까지는, 자발적 태릉인으로 살아볼 작정이다.
훈장 같은 나의 구릿빛 피부가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