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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크고 있다

by 세상에

싱가포르 나이 다섯 살 아들의 최애 놀이는 의자로 집 만들기이다.

식탁 의자 4개를 정사각형으로 세워두고, 그 위에 담요를 덮고 쿠션으로 옆을 막아 나름의 아늑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확보된 공간에는 아들이 좋아하는 장난감, 책, 인형 등등을 넣어두고 그곳에서 책도 읽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했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의자 집을 다시 원상복귀 시키는 것이 아쉬웠던 아들은, 소파 밑에 두 번째 아지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직 몸이 작은 아들은 소파 밑에다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쌓아두며 비밀 하우스라며 신나 했다. 아마 엄마가 들어오지 못하는 자기만의 비밀공간이어서 더 좋아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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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로 만든 첫 번째 아지트와 소파 밑 두 번째 아지트. 청소가 힘들었다>


"아들아, 혹시 네 방이 있으면 좋겠어? 네가 사랑하는 물건을 둘 수 있는 그런 방 말이야"

"응!"

1초의 망설임 없이 아들의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에 아들의 방이 있긴 했지만, 책과 침대만 있을 뿐 신생아시절부터 나와 남편이 그냥 꾸며놓은 방이었다. 하지만 3살 즈음 무렵부터 아들은 혼자 잠자기 무섭다며 우리 부부와 한침대를 쓴 이후로, 아들의 방은 그냥 방이 되었다.

우리가 한국에 있었다면, 그 방을 재정비하여 아들의 살림살이로 채웠겠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집주인이 들여준 가구에 내가 맞춰사는 신세라 가구를 새로 들이거나 빼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게스트룸 용도의 슬라이딩 침대가 덩그러니 있는 작은 방의 옷장을 정리해 아들만의 공간을 확보해 주었다.


그러자 아들은 너무도 기뻐하며 자기의 소중한 물건을 옷장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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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공간 꾸미기에 신이 난 아들의 뒷모습. 어떡하면 좋니 이 messy 함을>


아들이 커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들이 독립된 공간을 원하기 시작함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독립해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가리키는 것이라는 육아 전문가의 이야기를 상기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첫 독립의 발자국을 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사실 싱가포르에서 아이는 많이 컸다.

아들은 학교에서 혼자 수영복을 입고 벗고 정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샤워도 혼자 할 수 있게 되었다. 하기 싫은 일과 같이 하고 싶은 일들이 명확해졌고, 쉬운 영어책은 혼자 읽고 깔깔거리기도 했다. 기억력과 언어 구사도 매우 구체적이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할 때도 많았다. 며칠 전에는 비 오는 날 후덥한 화장실에 들어간 아들이 "호텔 체크인하고 처음 들어갔을 때의 습한 냄새가 나"라고 해서 흠칫 놀랐다.


아들과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어느 주말에는 아들과 마리나베이 쇼핑몰에 데이트를 한 적이 있다. 원래 계획은 쇼핑몰 안의 보트를 타보는 것이었다. 데이트의 목적인 보트를 타고, 간식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헬릭스 브리지가 보였다. 그리고 헬릭스 브리지 저 멀리에는 싱가포르 플라이어가 보였다. 아들은 대관람차를 꼭 타고 싶다며 같이 가자고 졸랐다. 그래서 아들 손을 잡고 한참을 걸어 사진으로만 보던 싱가포르 플라이어를 탑승했다. 이후 마리나베이 쇼핑몰로 다시 걸어와 저녁밥을 먹고, 8시 스펙트라 분수쇼까지 보고 집에 들어갔다.


이런 여행 스타일은 남편과 내가 아이를 갖기 전의 여행 스타일이었다.

여행을 가면 대충 무엇을 할지 정하긴 하지만, 둘이 배낭을 메고 걷다가 보이는 우연한 장관에 홀린 듯 머물거나, 계획하지 않았던 액티비티를 신나게 하고 와서 그게 뭐였는지 다시 찾아보는 것.

그런 여행을 아들과 싱가포르에서 함께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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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플라이어 열쇠고리를 꼭 쥔 아들과 함께 걷던 헬릭스 브리지. 이제는 너와 함께 배낭을 메고 여행을 다니는구나>


이렇게 생각보다 훌쩍 자란 아들이 독립된 자신만의 공간을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으니라.


내 눈에는 아직 꼬맹이이지만, 아들은 점점 커가고 있었다.

이렇게 크다 보면 어느덧 내 곁을 정말 떠나는 날이 오겠지?


언젠가 아들이 성인이 되어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싱가포르에서 엄마와 자기가 둘이 살았던 다섯 살 2025년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때 곁에 있던 엄마가 온마음으로 온몸으로 아들을 사랑하며 온종일 아들과 함께하는 1년을 보냈다는 것을 기억해 줄까?


기억하진 못하더라도, 그때의 따뜻한 마음만은 꼭 기억해 주길...


20250319_231921.jpg <내가 장염으로 아침에 급히 학교 화장실에 간 적이 있다. 그것을 보고 나를 놀리는 친구에게 대차게 화를 냈던 아들. 아들이 있어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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