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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집밥이 그리워 요리를 한다

by 세상에 Mar 25. 2025

드디어 지겨워졌다. 나의 맛없는 요리가.


제일 간단한 돼지고기 굽기, 간단한 야채볶음, 샤부샤부, 카레는 나도 지겨워졌고.

파스타, 떡국, 국수를 먹이면서는 이 탄수화물 폭탄을 어찌하랴 싶었다.

브리또도 랩도 아닌 토르티야 쌈, 빠에야도 리소토도 아닌 국적 불명의 볶음밥도 물리기 시작했다. 

냉동 치킨. 냉동 김말이, 냉동 볶음밥. 진한 MSG의 향내가 가득한 저녁을 먹고 나면, 하루 온종일 물이 먹혔다. 그것을 먹고 있는 아들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동생이 급할 때 쓰라고 보내준 캠핑용 국에서는 드디어 라면수프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미역국과 육개장의 맛이 똑같다. 아들은 왜 미역국에서 라면맛이 나냐며 맛있다고 했다. 


진정 엄마가 해준 집밥이 먹고 싶어졌다. 

꾸밈없는, 강렬한 맛은 없지만, 슴슴하고,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 조미료의 텁텁함이 느껴지지 않는 집밥. 아니 엄마 밥이 먹고 싶었다. 


아들이 먹을 수 있는 요리다운 요리가 뭘까 생각하다, 안동찜닭을 생각해 냈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레시피 중에 집에 있는 양념만으로 만들 수 있는 초간단 레시피를 찾았다.

닭을 사고, 인터넷에 나온 대로 계량을 해서 졸였다. 

요리를 못하는 나는 모든 조리기구를 다 꺼냈고, 사방팔방 양념장이 튀었다. 주방에 전쟁이 났다. 밑재료 준비하는데 1시간, 졸이는데 30분, 치우는데 1시간이다. 다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이래야 했나 후회가 밀려왔지만, 집밥을 먹고 싶다는 일념이 모든 수고를 이겼다. 


드디어 그날 저녁 떨리는 마음으로 아들에게 저녁상을 내었다.

"아들아.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찜닭과 비슷하게 만들어 봤어. 어떤지 함 봐봐"

닭다리를 한번 뜯더니.... 

엄지 척이다!!!


<나름의 요리 같았던 요리, 찜닭. 아들아 잘 먹어줘서 고마워><나름의 요리 같았던 요리, 찜닭. 아들아 잘 먹어줘서 고마워>

됐다!!!

이제 나도 즐길 차례이다.

인터넷 레시피라 그런지 내 입맛에 달긴 했지만, 나름 색도 괜찮고 냄새도 그럴싸했다. 

닭다리는 아들에게 양보하고, 양념 가득 배인 감자를 밥에 착착 비벼 한 숟가락 떴다.


"아... 이 맛이야!!!" 


그날 저녁 나는 저녁밥을 두 그릇 먹었다. 


그렇게 탄력을 받은 나는, 다음날 사다 놓은 연근으로 연근 조림을 했다. 

찐득하고 달고 짠 그 연근 조림을 먹고 싶었다. 

올리고당이 없어 꿀로 대충 맛을 냈다. 색은 안 나와도 맛은 있었다. 


내친김에 엄마밥상을 흉내 내어 들깨 미역국에 고등어를 구웠다. 제법 밥 같은 밥이었다.


3일 연속 나름 성공을 하고 나니 엄마한테 자랑하고 싶어졌다.

아들이 학교에서 만든 비행기를 손에 꼭 쥐고 하굣길에 내 품에 뛰어 안기며 자랑하듯, 나도 우리 엄마한테 자랑하고 싶어졌다. 

그날 밤 70이 넘은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해서, 다짜고짜 자랑했다. 찜닭도 먹고, 연근 조림도 먹고, 들깨 미역국도 끊였다고 조잘조잘 떠들었다. 구르프를 말고 졸려하고 있는 엄마한테, 17대 1의 싸움에서 이긴 무용담처럼 어떻게 장을 봐서, 무슨 양념을 넣어, 어떻게 조리를 해서, 손주가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목소리 높여 자랑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엄마가 조용히 입을 떼셨다. 

"원래 엄마랑 멀어져야 요리가 늘어. 모든 자식들은 엄마 요리가 제일 맛있어. 아들한테는 네 음식이 제일 맛있는 밥일 거야. 아들 덕분에 너도 따뜻한 밥 한 그릇 잘 먹었네~ 축하해!"


엄마한테는 무조건 자랑해도 된다. 

잘 못해도 자랑해도 된다. 

우리 엄마니까.


<사랑해 엄마~><사랑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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