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말이 마지막 글이었다.
그동안 일이 많았다고 애써 위안을 삼아보고자 한다.
10월 초
한국의 추석을 맞이하여 남편이 싱가포르에 왔다. 그 참에 우리 가족은 말레이시아 중부에 있는 라와 섬으로 3박 4일 여행을 다녀왔다. 싱가포르에 오래 살고 있던 친구가 우리 부부의 성향에 딱 맞는, '말레이시아의 몰디브'라며 강력 추천을 하기도 한 곳이다.
바다로 연결된 미끄럼틀이 있고, 숙소에서 나오면 백사장이 눈앞에 펼쳐지고, 낡았지만 아늑한 숙소에 누워 있으면 파도소리와 바람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그런 곳이었다. 소박하지만 삼시세끼 모두 제공되며, 공작새가 내 옆을 걸어가는 자연친화적인 곳이었다. 스노클링을 하다가, 수영을 하다가, 미끄럼틀을 타다가, 밥을 먹다가, 좀 졸다가, 그러다 섬 한 바퀴 산책을 하기도 했다. 삐그덕 거리는 낡은 숙소 앞에서 모래를 툭툭 털고 들어와, 샤워를 한바탕 하고 쉭쉭 돌아가는 선풍기를 켜 놓고 창문을 열면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 우리 가족에게는 지상낙원이었다.
10월 중순
드디어 시어머니가 싱가포르에 오셨다. 덥다며, 비행시간이 길다며, 할 게 없다며 그간 싱가포르 방문을 고사하신 시어머니께서 큰 마음을 먹고 우리 집에 오신 것이다. 못 미더운 며느리 덕에 당신이 드실 밥까지 꽁꽁 얼려 오신 우리 시어머니. 서울에서도 이렇게 길게 한 집에서 지낸 적이 없던 탓에 나는 나름 긴장도 많이 했고, 더운 날씨에 시어머니가 괜히 고생하시는 건 아닌지 걱정도 많이 되었다.
하지만 며느리의 어설픈 밥상에도, 싱가포르의 좁은 집에서도, 입맛에 맞지 않는 현지 음식에도, 더운 날씨의 관광지 투어에도 시어머니는 씩씩하고 건강하게 5박 6일을 보내셨다. 어쩌면 사랑하는 손자와 내내 함께 있을 수 있어 힘이 나셨는지도 모르겠다.
공항에서 시어머니를 배웅하는데 괜히 또 코끝이 시큰했다.
10월 말
아들의 중간 방학을 맞이하여, 호주의 서쪽 퍼스(Perth)로 드디어 여행을 다녀왔다.
한국에서 온 친정 아부지와 초등학교 4학년 조카, 그리고 만 다섯 살 아들과 함께하는, '엄마! 이모! 딸!....' 나를 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여행 가이드 겸, 콜센터 겸, 통역사 겸 수많은 역할을 나에게 요청했던 남자 셋과의 여행이었지만, 언제 또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싶어 일분일초가 소중했다.
다양한 자연경관을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서호주의 대자연( 아기자기와 대자연이라는 말이 안 어울리기는 하지만, 퍼스의 느낌은 그러했다), 함께했던 캥거루들, 우주의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쏟아지는 별,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우리의 숙소, 매일 저녁밥을 먹던 한식당, 함께 여행했던 소중한 인연들.
호주의 쌀랑한 초가을 바람이 아직도 코끝에 생생하다.
11월
정신없었던 10월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11월이 되었다.
개학을 한 아들은 다시 학교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아들은 학교에서 뮤지컬 공연도 올렸고, 처음으로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외국의 생일파티 문화를 경험했다.
핼러윈 덕에 아들은 캔디를 한 아름 받아왔고, UN Day라는 학교 행사에 태극기와 떡볶이로 한국을 소개했다. 케데헌의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스 스티커를 사랑하는 아이들과 오징어 게임의 딱지치기를 해보는 외국인들. 싱가포르에도 가득한 K 컬처를 보며,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에게 가슴속 깊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휘몰아쳤던 10월을 지나니 싱가포르의 바람도 사뭇 시원해졌다. 상점에는 패딩들이 걸려있고 길거리에 사람들은 제법 긴 옷을 입고 다닌다.
11월 중순
이번 주말에는 남편 회사에 있는 진수식 행사로 한국에 다녀와야 한다. 한국 집 정리도 이참에 좀 해 볼 생각이다. 한국에 한번 다녀오려니 일이 많다.
12월
원래라면 나는 12월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의 1년 살이를 정리해야 하는 시기니까 말이다. 하지만 싱가포르에 더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내가 싱가포르에서 취업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지 취업'은 처음 싱가포르 1년 살이를 계획했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지만, 현실의 벽을 일찌감치 깨달았었다. 그리고 그 현실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나의 목표는 달성했다고 위안 삼았었다. 그러나 기회는 부지불식간 느닷없이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 잊어버린 순간, 나에게 행운처럼 해외취업의 길이 열렸다.
그리고 나의 새로운 길을 진심을 다해 응원해 주고 지지해 준 남편과, 함께 고생을 나눠갖기로 한 가족들 덕에 나는 싱가포르에 더 머물기로 했다.
싱가포르에서 쓰는 그림일기는 이제 새로운 챕터를 향해 달려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