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까맣게 그을린 팔에 말근육을 잔뜩 감추고 그 팔로 내 어깨를 쓱 두르며 '엄마' 부른다.
내가 들고 있는 장바구니를 가져가며, '엄마. 이건 제가 들게요' 무심히 이야기한다.
남편을 닮아 다리가 길고, 운동을 해서인지 옷 속에 감추어진 상체가 제법 다부지다.
웃는 상의 얼굴이라 귀엽기도 하지만, 눈빛만큼은 살아있어 때론 매섭기도 하다.
목소리는 찬찬하고 나에게는 다정하다.
가만히 쓰다 보니 드라마의 주인공 같기도 하고, 처녀시절 이상형 남자의 모습 같기도 하다.
이번 생에는 그 무엇보다 마음이 잘 맞는 남편을 만났기에 더 이상의 욕심은 없지만, 아들 녀석만큼은 이런 모습으로 자라줄 수 있진 않을까 살짝 욕심을 좀 내 본다.
하지만 우리 아들은 아직 만 5세.
내가 생각하는 이상형의 아들로 크기엔 아직도 탈피가 필요한 많은 날이 남아있다. 지금은 그저 내 팔을 잡고 '엄마, 엄마'를 무한 반복하는 꼬꼬마일 뿐이다.
이런 꼬꼬마를 내 이상형의 아들로 키우기 위한 첫 번째 미션은 운동시키기.
한국에 있을 때부터도 나의 미션은 계속되었지만, 새롭고 낯선 것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아들은 태권도도 거부하고, 축구도 몇 달 만에 그만두었다.
싱가포르에 와서는 수영을 시켜보려 했지만, '엄마와 물놀이하는 것만' 좋다는 아이의 확고한 신념 덕분에 미션은 무산되었다. 그래도 농구에 관심을 보여 농구공을 사주었더니 학교 끝나고 드리블 연습과 슛 연습을 매일 하기는 했다. 물론 '엄마와 함께'라는 전제 덕분에 나도 땀범벅이 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싱가포르에 있는 국제학교에 다니다 보니, 운동에 대한 노출은 한국보다 확실히 많기는 하다. 국제학교에서는 농구부, 수영부, 배구부, 축구부 등 많은 운동팀을 꾸리고 아이들도 공부와 병행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방과후 학교 놀이터에서 놀고 있자면, 멋진 레이어드 슛을 연습하는 고등학생, 배구 스파이크 연습을 하는 중학생, 축구 드리블을 연습하는 초등학생 등, 저마다의 운동에 몰두하며 얼굴 가득 땀범벅인 아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특히 수영팀은 매일 아침과 오후, 등하교 길에 마주친다. 유치원 건물 옆에는 학교 수영장이 있는데, 학교 수영팀 학생들은 수업시작 전, 후로 늘 수영 훈련을 한다.
매일 아침이면 어깨가 떡 벌어진 금발의 고등학생이 젖은 머리칼을 날리며 바나나를 먹으며 걸어간다. 또 아주 균형 잡힌 몸매를 가진 여학생은 젖은 긴 머리를 뒤로 묶고 사과를 깨물며 스포츠 가방을 어깨에 메고 교실로 걸어간다. 상큼한 비누 향기와 적당한 수영장 냄새. 왠지 모를 활기차고 싱그러운 기운에 나와 아들은 매일매일 등하교 길에 수영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후가 되면 수영팀이 훈련하는 모습도 직접 볼 수 있다.
정규 수영장 사이즈와 똑같은 크기의 풀에서 잔근육이 가득한 남자아이들이 딱 붙는 수영복 바지를 입고 스타트대에서 출발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멋있다'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또한 군더더기 없는 매끈한 몸에 미끈한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거침없이 접영을 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감탄만 나올 뿐이다.
그렇게 매일 학교 수영팀이 아침, 오후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등하원을 하던 아들이 어느 날 말했다.
'엄마. 나도 허스키(학교 수영팀 이름이다) 형아들처럼 수영하고 싶어!'
옳다구나.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내가 그토록 바랬던 운동하는 아들....
그 길로 수영 방과 후 수업을 등록하고 매주 수요일 그 멋진 허스키 형아들이 있는 수영장의 한쪽 유아풀에서 아들이 수업을 시작했다.
이제 막 발차기 수업을 하고 있는 아들 앞에, 멋진 허스키 형아들이 접영으로 기록을 재며 연습을 하고 있다. 훈련이 일찍 끝난 남학생 하나가, 팀 이름이 써져 있는 검정 수영모를 벗고 머리를 쓱 넘기며 걸어가자 등뒤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아이가 남긴 물 발자국에 언젠가 멋지게 성장해 있을 아들의 모습을 괜히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