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역사의 한 조각
지난 화요일에 강원도에 있는 신어머니 법당에 다녀왔다. 나보다 먼저 신내림을 받은 언니 두 명이 있었다. 언니들은 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신내림을 1년 반 전에 받은 큰언니와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는 작은 언니였다. 물론 내게 말을 편하게 해도 된다고 했지만 아직은 어색해서 다음에 말을 놓기로 했다. 신어머니는 굿판이나 공적인 자리에서는 언니로 모시고 평소엔 편하게 해도 된다고 하셨다. 덧붙여 말씀하시길 우리는 모두 존대를 쓴다고 하셨다. 실제로 신어머니도 내게 존대를 쓰셨는데 왜 그러시는지 궁금하긴 했다.
큰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큰언니는 신내림을 받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집안의 반대가 너무 심했다고 했다. 큰언니는 몸도 망가지고 정신도 무너지고 인간관계와 경제적 문제까지 모조리 날아가버려 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신을 받고 언니는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큰언니의 어머니가 굿을 해주신 신어머니께 무당년이라고 하셨단다.
갑자기 이게 생각난 건 어젯밤이었다. 생각해 보면 무당이란 정말 멋진 직업이 아닌가? 나쁜 일을 막아주고 복을 빌어주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람. 이렇게 보면 정말 멋진 일인데 왜 이렇게 천대받게 되었을까.
거기다 옛날에는 상류층 여성이 무당이 되면 선관이라 부르고 기도를 올리며 존경받았다고 했다.
하고 싶어도 신의 선택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어렵고 힘든 일인데 왜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욕을 들어야 하는 걸까.
여러 자료를 살펴보면 조선시대에는 유교와 성리학이 퍼지며 무당들을 귀신을 섬기는 자로 천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당의 일을 미신 취급하며 성 밖으로 쫓아내고 나라굿을 없애고 엄청난 세금을 물리고 법당을 헐어버리는 등 박해를 했다.
그런데 웃긴 건 나라에 흉년이 들거나 힘들고 어려울 때면 다시 무당을 찾았다는 것이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일제강점기에도 한국의 전통을 끊어버리려는 일본에 의해 무당들은 박해를 받았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신실하지 않은 무당들이 사기를 치며 더욱 이미지가 나빠졌다. 신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며 신굿 비용으로 어마어마한 금액을 청구한다든가 TV에서 자극적인 전개를 위해 없는 말을 지어서 하고 연기를 하는 무당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런 무당들이 돈을 벌어들이고 그 돈으로 사치를 하니 이미지가 더 나빠진 것 같다. 돈이면 다 하는 무당이라는 이미지나 사기꾼 같은 이미지. 그런데 신의 일을 해서 번 돈은 신의 뜻대로 사용해야 한다. 내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무당은 어디까지나 신의 뜻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존재해야 한다.
사기를 쳐서 돈을 번 무당에게서 신들이 떠나시면 무당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으니 또 거짓으로 사기를 치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나는 결심했다. 조금이라도 이 인식을 바꾸기 위해 글을 쓰자고.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을 가감 없이 기록해 사람들의 오해를 풀자고. 무당이 받는 오해는 곧 신들이 받는 오해이기도 하다.
신의 뜻을 받아 정말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자고 새롭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