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서다.
내가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를 선택한 것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목표만을 위하여 경주마처럼 뛰는 무리 속에 끼고 싶지 않았고 나만의 행복과 가치를 추구하고 싶었다. 제주에 내려와 그동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렇게 살았다.
어느 직장이나 그렇겠지만 40대는 한창 일할 나이다. 경험이 많고 능숙하며 아직 젊다. 이 시기는 왕성하게 일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승진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다. 내가 의사가 없다고 해도 주위에서 가만히 두지 않는다. 자의반 타의반 승진의 길에 들어서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면에서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한 나는 자유로운 편이었다. 나의 가장 큰 무기는
"승진할 거면 서울에서 하지 제주도까지 내려와서 왜 해요?"
라는 말이었다. 이 말 한 마디면 대부분 더 이상 승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지난 달, 교장님이 찾으신다고 해서 교장실에 불려갔다.
"연구학교 신청할 건데, 연구부장 해주실 수 있으세요?"
연구학교에 연구부장! 최악의 제안이었다.
"교장 선생님, 제가 능력이 안 되어서요. 죄송합니다."
교장님의 제안이 먹히지 않자 옆에 있던 교무 부장님까지 합세를 했다.
"선생님 경력도 있는데 승진을 떠나 후배들을 위해 봉사도 해야지요. 경력이 너무 아깝잖아."
그날은 대답을 하지 않고 잘 버텨내지만 이후에도 여러 번 불려다니며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크~~!
제주도에 살면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같은가 보다. 그리고 40대의 20년 경력 남교사는 절대 자유로울 수가 없다. 몇 번을 버티고 고민한 끝에 다시 부장 교사의 길에 들어서기로 했다. 내가 뭐라고 학교라는 직장조직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하라면 해야지. 그렇다고 승진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복잡한 요즘 승진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본다. 승진을 하는 것도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지만, 하지 않는 것도 거절의 용기가 필요하며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둘 다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이왕 하기로 한 것 멋지게 일해야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으니 일 년을 업무와 함께 즐겨볼 생각이다.
'드루와! 드루와!'
아~~!
하지만 아직 두려운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