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서울에서 근무할 때 승진을 위해 돌진했다. 대학원 석사를 거쳐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남들은 기피하는 부장교사를 도맡아 하고(나의 주종목은 대한민국 교사들은 모두 싫어하는 '생활부장' 학폭업무를 관장하는, 1년만 해도 10년은 늙어버리는.) 부설초등학교로 옮겨 교육부 연구과제를 모두 떠안는 그런 교사였다. 참고로 나는 부설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밤 9시 이전에 퇴근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렇게 승진을 위해 정주행하던 내가 모든 것을 때려치고 제주도로 내려왔다.
제주도에 내려와 가장 좋은 점은 아무도 나의 이러한 이력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정말 조용히 지내고 있다. 있는 둥, 없는 둥.... 이렇게 지내는데 신기한 것은 내가 담임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나를 좋아한다.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능력있는 교사는 단 한 가지,
나에게, 내 아이에게 잘 해주는 교사이다.
교육청에서 일 잘한다고 인정해주는 교사? 공문 잘 처리하는 교사? 아무 필요 없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들 잘 가르치고, 내 아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면 최고다.
작년 교원평가 서술형. 18년의 교직생활 동안 처음 학부모에게 전 영역 만점을 받았다.
새학년도가 시작되며 부장교사 보직에 대한 압박이 심했다. 일요일까지 교감님의 전화를 받으며 잠을 설치며 고민해야 했다. 우리 마음 약하신 교감님께서는 나를 많이 원망하시고 섭섭해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어이 거절했다. 그렇게 나는 승진이 교직생활의 목표 1순위였던 부장교사에서 평교사가 되었다.
나는 승진이 두렵다.
각종 공문을 처리하고, 승진 점수를 관리해야 하는 내 자신이 두렵다.
"얘들아, 잠깐 독서 좀 할래? 선생님이 급하게 할 일이 생겨서."
라는 말을 해야 하는 내 자신이 두렵다.
그리고 승진해서 한 곳에만 있어야 하는 내 자신이 두렵다. (교육공무원은 교감 이상의 관리자가 되면 지역을 옮기기 힘들다. 나처럼 역마살이 있는 사람이......)
나는 자유롭고 싶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의 교육관대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
다른 것에 치이지 않고 내 수업만 생각하고
승진점수 따위는 따지지 않는 그냥 단순한 교사가 되고 싶다.
그래서 지금 제주도에서 그렇게 살고 있다.
오늘 학교에서 한 선생님께 이런 말을 들었다.
"선생님, 오늘 장학사 시험 공문 왔던데, 한 번 해보세요. 임용고시 두 번 합격하신 분이 장학사 시험 정도야."
마음이 뒤숭숭해서 아내에게 이 말을 전하자 아내가 한 마디 했다. (서울 출신 아내는 역시 명확하다.)
"승진할 거면 뭐하러 제주도 내려왔어? 서울에서 하지. 나 다시는 당신 시험 뒷바라지 못해. 장학사 시험 준비할 시간에 당신 좋아하는 글이나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