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담임교사'의 공식에 관하여
올해 나는 담임교사가 아니다. 초등교사하면 자연스럽게 'O-O반' 선생님이 떠오르는데, 지금 나는 '체육선생님'으로 불리고 있다. 연구부장 보직을 받고 교무실에 근무하면서 3,4학년 체육을 가르치고 있는데 교직의 대부분을 담임교사로만 살아왔던 나에게 올해는 새로운 한해다.
담임교사와 전담교사의 차이, 이 둘은 분명한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둘 다 매력이 있다.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장점을 말할 때 나는 가장 먼저 독립된 공간을 말한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하교하면 교실은 나만의 공간이 된다. 상사나 후배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독립된 교실에서 수업준비를 하고 업무를 하는 것, 그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이 힘든 일이지만 나의 뜻대로 학급을 마음껏 운영할 수 있고 수업중이나 교실에 있을 때는 어느 누구의 침범을 받지 않는다. 반면 전담교사는 이러한 독립성을 누릴 수가 없다. 특히 나처럼 교무실에서 근무해야 하는 교사는 더욱 그렇다. 요즘은 내가 교사인지, 회사원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수업시간을 제외하고는 교감님, 수석교사님, 교무님과 하루종일 함께 있어야 하고 각종 보고 공문과 민원전화, 내방객 응대까지......하루가 참 고되다. 그리고 출근과 퇴근이 눈치 보인다. 교무실에 항상 먼저 출근해야 마음이 놓이고 교감님이 아직 퇴근 전이면 인사를 하고 먼저 나가기가 불편하다. 덕분에 나는 대한민국 회사원들의 고충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회사원과 다름이 없다.
그렇다고 전담교사가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담교사는 맡은 과목만 가르치면 되기에 아이들의 생활지도에서 자유롭다. 쉬는 시간에 싸우는 아이 때문에 골치가 아플 일도 없고, 점심시간에 편식하는 아이를 지도할 필요도 없다. 학생 문제로 학부모와 갈등을 겪을 일도 거의 없으며 학생 상담 업무에서 자유롭다. 단순하게 말해 내 과목만 잘 지도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오히려 다른 학급 일에 상관하거나 조언하면 자칫 월권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전담교사로서 가장 좋은 것은 단연 점심시간이다. 담임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급식을 먹어야 해서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를 때가 많은데, 전담교사는 점심시간에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갈 수가 있다.
이렇게 장단점이 명확한 담임과 전담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전담교사는 아이들로 인한 기쁨이 적다는 것이다.
20명이 훌쩍 넘는 초등학생과 하루종일 생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며 놀고 먹고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이러한 시간이 없으니 교무실에 근무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벌써 외롭다.
초등학생에게는 누가 뭐래도 우리 담임 선생님이 전부이고 최고다. 선생님이 우울하면 아이들도 우울하고 선생님이 웃으면 아이들도 따라 웃는다. 어디서 내가 이러한 대우를 받아볼 수 있을까? 그것도 이렇게 순수하고 예쁜 아이들에게...... 그래서 '초등교사=담임교사'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 같다.
오늘 역시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일어날 조짐이 없는 교감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도망치듯이 학교를 나왔다.
"연구부장은 초근 안해? 할 일 있으면 지금이라도 초근 내고."
라는 교감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다시 한번 다짐했다. 법정 근무시간을 더욱 철저히 지키기로! 할 일은 근무시간 내에 하고, 못다한 일은 집에 싸들고 오는 한이 있어도 초근은 하지 않기로.
내일부터는 퇴근시간이 되면 당당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려 한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말할 것이다.
"저 먼저 퇴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