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에도 차 한잔의 여유가 필요하다.
어린이는 부모의 거울과 같다. 어린이가 가장 모델링을 많이 하는 대상은 자신의 부모이며 부모는 아이의 성격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은 순수하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도 그렇지 않은 아이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가끔 아이들의 순수함은 교사를 당황하게 한다.
"OO야, 오늘 아침 안 먹었니?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시무룩하게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를 보고 묻자 그 아이가 대답했다.
"엄마랑 아빠랑 싸웠어요. 아빠가 소리 지르고 엄마가 울고 난리였어요. 짜증나요. 아침부터."
아이의 기분을 살피려 물어본 말이 그 아이 가정사까지 알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이다. 도덕시간에는 '가정의 화목'이나 '효'에 대하여 수업을 할 때가 있는데 아이들은
"우리 아빠는 매일 술만 마셔요. 담배도 많이 펴요."
"우리 엄마는 매일 소리 지르고 혼만 내요."
라는 말을 여과없이 친구들 앞에서 말한다. 그럴 때마다
"그렇구나. 부모님도 사람이니까 화가 날 때가 있지. 선생님도 그럴 때 있어."
라고 넘기려 하지만 바로 들어오는 아이의 반박!
"매일 그래요."
그런 말을 하는 아이는 학교생활을 할 때도 무엇인가 불만에 가득 차 있다.
담임교사를 할 때면 학부모의 문자를 받고 당황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 흔한 '안녕하세요, 선생님'이란 사람사이 예의상 인사도 없고
'애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약 싸보냈으니 점심 먹고 약 좀 먹나 확인해 주세요.'
'오늘 친척집에 가야하니까 급식 먹고 바로 보내 주세요.'
라는 통보식의 문자를 보내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난 그럴 때마다
'네, 안녕하세요. 문자 확인했습니다."
라고 답문을 보낸다. 문자 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전화통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여서 전화를 끊고 나서는
'무슨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으셨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는 가정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교사이다. 내가 담임교사를 할 때 학부모님들이 가장 놀라는 점은 내가 쓰는 알림장이었다. 한 페이지를 훌쩍 넘는 알림장 내용에는 그날 생일을 맞이한 아이에 대한 축하인사, 오늘 공부한 내용, 과제, 학부모님께 당부하는 내용들이 모두 담겨 있다. 학부모와 교사 사이 오해는 모두 소통의 부재가 원인이라고 생각하기에 알림장을 쓸 때 신경을 쓰고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해도 돌아오는 학부모의 냉담과 무관심에는 나도 상처를 받는다.
화가 많은 사회,
나는 우리 사회가 화가 많은 사회라는 느낌을 갖는다. 나에게 엄마, 아빠가 매일 싸운다고 말한 아이의 학부모님은 1년 내내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꼭 전화통화를 해야할 일이 있으면 쉼호흡을 크게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각오를 하고 전화를 했다. 전화통화를 마치면
'절대 상처 받지 말자. 나한테만 그런 것 아니잖아?'
라는 생각으로 애써 위안을 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올해 교무실에서 부장교사로 근무하며 정말 많은 민원전화를 받는다. 본의 아니게 다른 학급에서 일어난 일들을 거의 모두 알게 되고, 선생님에 대한 학부모의 불만사항도 듣게 되는데 그중에는
'이 정도는 담임선생님이랑 통화해도 될 사항인데 굳이 왜 교무실에 하셨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도 많다. 교무실로 학급의 불만사항을 전달하는 학부모님의 내면에는
'교장, 교감 선생님이 이 선생님 불러서 어떻게 좀 해주세요.'
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심각한 사안을 제외하고 학급에서 일어나는 모든 책임과 권한은 교장, 교감이 아닌 학급 담임교사에게 있다. 교장, 교감이라고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리고 교장, 교감님도 이전에는 모두 일반 교사였기에 알고 있다. 이것이 학급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학교에서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내면에 화가 많으면 여유가 없다.
작년에 고학년 담임을 하며 내가 1년 내내 다짐했던 것은 '화를 내지 말자'였다. 우리반에는 매일 아침 Tea time이 있어 2명씩 돌아가며 교사와 차를 마시고 고민을 이야기 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차 한잔의 여유는 놀라워서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 아이도 이날 만큼은 친구들에게 너그러웠다. 마음의 여유는 이처럼 변화를 일으킨다. 고학년 아이들은 친구끼리 자주 싸우는데 난 그때마다 그 아이들의 손을 잡고 교사실로 가서 차를 타주었다.
"우리 이거 마시고 이야기 하자."
이것은 아이들을 위한 것도 있었지만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욱하고 올라오는 내 감정을 먼저 누르고자 함이었다. 만일 그러지 않으면
"지금 뭐하는 거야!"
라고 고함을 쳤을 것이 뻔하니까.
요즘 매일 언론에 보도되는 교권의 추락, 학부모의 갑질 문제.
어쩌면 이러한 모든 문제는
화가 많은 우리 사회 때문이 아닐까?
교사에게 문자로 용건을 말하기 전에
'안녕하세요? 선생님'이라는 인사를 건넬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이 사회와 개인의 내면이 지금의 현실을 만든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의 마음에도 차 한잔의 여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