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학부모 민원
나는 초등교사이다.
그리고 나는 초등학생 학부모이다.
초등교사가 학교현장에서 일어났던 일을 쓰고자 하면 매우 조심스러운데, 자칫 교사의 입장에서만 글을 쓰려는 것처럼 비추어질 것 같아서이다. 하지만 나는 교사이기 전에 초등학생 학부모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속이 뒤집히고 열불이 난다. 아이의 말만 들으면 담임 선생님께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내 아이를 괴롭히는 학급 학생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쫓아가 혼쭐을 내주고 싶다. 아들과 딸을 키우고 있는 학부모! 이것은 직업과 상관없이 대한민국 어느 부모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학교에는 비상식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매우 자주.....
어려서 봐주었더니 어린 것이 건방지게 말하네!
10년 전 1박 2일의 교육여행일, 문자나 전화 한 통 없이 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다 우리반만 늦게 출발하고 수없이 문자를 하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학부모에게 마지막으로
<어머님, 아이가 학교에 못 오면 못 온다고 문자 한 통 남겨주시면 안 되나요? 이 일은 학교에 복귀하면 교장, 교감 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절차에 따라 결석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문자를 남기자 내게 온 답장이다. 그 학부모는 문자 이후에도 전화를 해서 교육여행 내내 폭언을 쏟아내었다.
참아. 앞으로 교직생활 하다보면 별일 다 있어. 난 더한 일도 겪었어.
지옥 같은 교육여행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 이 사실을 교무실에 알리자 교장선생님이 한 말이다. 난 그때 알았다. 교직사회라는 곳이 이렇구나. 뭐든 조용히 넘어가 주기를 바라고 누구 하나 나서지 않는 곳!
"학교에서 아무런 조치 안 하시면 저 개인적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나는 교장실을 나와 학교전담경찰에게 연락을 했다. 경찰이 바로 학교로 달려와 사안 조사를 시작하려 하자 그제야 학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교는 이 일이 외부에 알려지거나 시끄러워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학교에 온 학부모에게 모든 문자 내용과 전화통화 녹음을 제시하자 학부모는 그제야 마지못해 사과를 했다.
"말이 심했네요. 죄송해요."
"이제 됐지? 학부모님이 사과도 하셨는데."
뭐가 되었다는 거지? 사과 한 마디면 정신적인 충격까지 모두 해결되는 것인가? 그 학부모는 학년이 올라가서도, 심지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나를 괴롭혔다. 학생이 학교에 오지 않아 걱정을 하고 마음 졸인 대가가 교직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는 일이 될 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린 것!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학부모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막말을 경험하는 젊은 교사들은 예전에도 많았고 지금은 더 많다. 재미있는 것은 나의 경우는 40대 중반의 남자교사가 되니 민원이 사라졌다. 내가 경험이 쌓이고 능숙해지기도 했겠지만, 학부모님들에게 40대 중반의 남자교사는 참 불편한 사람이다. 나이는 비슷하거나 많고, 교육경력은 20년씩 되고, 거기에 남자라니! 이보다 불편할 수가 없다.
이번 서이초 사건을 접하며 슬픔보다 선배교사로서 미안함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있어왔고 지금도 여전한 학교현장의 문제를 외면하며 조용히 살아온 것에 대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내가 30대 중반의 나이에 학부모에게 '어린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모멸감을 느낄 때 조용히 넘기기에 급급했던 교장, 그러한 선배 교사들도 지금의 사태를 만든 방관자이다. 승진이나 출세에 별다른 관심이 없고 그저 조용히 글이나 쓰며 살고 싶은 초등교사이지만 비겁한 방관자가 되지 않으리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그것이 모든 괴로움과 아픔을 짊어지고 떠난 서이초 후배 선생님에 대한 선배교사로서의 최소한의 책임이자 양심일 것이다.
https://newsis.com/view/?id=NISX20230725_0002389207&cID=10201&pID=10200
*<40대 초등학교 부장교사의 생존기>라는 제목으로 매거진을 발행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날것 그대로 다루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