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이 불행을 지속시킬 것인가?
제 2의 서이초 사건이 대전에서 일어났다는 뉴스에 관련 기사를 읽어보다가 익숙한 이름에 잠시 멍해졌다. 관평초등학교! 내가 서울로 발령을 받아 이사를 오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초등학교였다. 본가에 내려가면 집에서 내려다 보이던 초등학교, 저녁을 먹고 부모님과 운동장을 걷고 운동을 하던 곳이 관평초등학교였다. 2000년대 관평동에 '대덕테크노벨리'라는 명칭의 대단지 아파트가 지어지며 동화초, 배울초, 관평초가 차례로 들어섰다. 대단지 아파트이기는 하지만 대전의 외곽에 위치해 있고(이곳은 신탄진에 가까우며 충북의 초입이다.) 워낙 조용한 동네이기에 이렇게 불행하고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교권침해, 학부모 갑질 문화는 대한민국 어디든 만연한 일이구나!'
이번 관평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은 서이초 사건보다도 더욱 심각하게 느껴졌다. 학군에 사셨던 선생님은 학부모와 마주칠까봐 가까운 마트도 가지 못하고 먼 거리의 마트를 다니셨다고 하고 (관평동에는 관평롯데마트가 있다. 아마도 10km 거리의 만년동 이마트까지 가셨던 것 같다.) 길거리에서 학부모와 마주치면 반말을 비롯한 온갖 수모를 당하셨다고 한다. 더욱이 이러한 일을 4년 동안 겪으셨다. 대전이 고향이고 관평동에 살았던 나는 뉴스 기사를 보며 선생님의 생활 동선과 그 당시 느끼셨을 감정이 느껴져 더욱 마음 아팠다. 선생님께서는 볼일이 있어 집밖을 잠시 나서는 순간에도 학부모와 마주칠까봐 두렵고 공포스러우셨을 것이다. 남편분과 자녀가 자신의 고통을 알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며 혼자서 모든 아픔을 감내하셨을 것이다. 담임이 교체되고 가해 학부모 학생과 같은 층에 선생님을 배정도 하지 말라는 민원을 학교에서 전달 받았을 때는 모멸감과 수치심에 당장이라도 학교를 그만두고 싶으셨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반말 섞인 욕설을 들을 때면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으셨을 것이다.
내가 부모님의 손을 잡고 저녁 산책을 했던 추억 가득한 초등학교에서 이토록 비상식적이고 잔인한 일들이 행해졌다니 소름이 끼친다.
서이초 교사 사건, 서울 사립초 기간제 교사 사건, 주호민씨 사건, 거짓 카이스트 학부모 사건, 호원초 교사 사건, 용인시 체육교사 사건, 관평초 교사 사건까지.... 이처럼 불행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지만 학교 현장은 변한 것이 있을까? 정말 신기할 정도로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7차에 걸친 30만 교원의 질서정연한 민주적인 집회가 있었고 '가르칠 권리'에 대한 50만 교원의 하나된 외침이 있었지만 학교 현장에는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툭하면 아동학대, 학습권 침해, 정서학대...... 이제 교사도 강해져야 한다. 부당한 요구와 선을 넘는 항의에도 조용히 사과하고 넘어가기만을 바랐던 관리자, 대다수의 예쁜 학생들에 대한 생각과 투철한 교직관 때문에 참아넘기기만 했던 교사의 인내심이 오늘날의 사태를 키운 것일지도 모른다. 갑질 학부모 그들은 그러한 고마움을 알지 못한다.
나는 지금까지 (남들이 보기에는) 학부모, 학생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별로 큰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학급을 경영하는 나를 보고 가끔 선생님들이
"선생님은 어쩜 그렇게 화도 안 내세요? 아이들이 말 안 들으면 어떻게 하세요?"
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고는 했다.
"그냥 한숨 쉬어요. 한숨 쉬면 참아지더라구요."
그때는 자신있게 대답했던 말이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회의감이 느껴진다. 학생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혼을 내고 지도하는 것이 교사의 참된 모습일 텐데, 20년에 가까운 교직생활은 나를 어느새 '생존형 교사'로 만들어 버렸다.
서이초 사건을 겪으며 요즘 수업시간에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은 선생님의 가르칠 권리를 빼앗는 거야. 그게 바로 교권침해야. 너는 지금 친구들의 학습권도 침해하고 있어."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사의 교권과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인식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이러한 엄격한 가르침이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교권이 무너진 것은 하루 아침의 일이 아니다.
교권과 학습권이 균형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현직 교사로서 가장 화가 나는 것은
50만 교원의 하나된 외침이 있었는데도
실질적인 대책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무능한 교육부와 교육청이다.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실질적인 변화와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한
지금의 불행은 지속될 것이다.
언제까지 이 불행을 지속시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