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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부장교사의 생존기

학교에서는 절대로 일을 벌이면 안 된다.

by JJ teacher

나는 초등학교 연구부장이다. 연구부장이 맡은 여러 가지 업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교원 연수'라는 일인데 교사들의 연구와 연수를 총괄하는 일이다. 훌륭한 강사를 초빙하고 유익한 연수 시간을 마련하여 교사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이 업무의 핵심이다. 나는 애초에 승진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어쩌다 부장을 맡게 되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업무의 목표를 '차별화된 높은 질의 교원 연수'에 두었다. 그래서 그동안 한 달에 한 번 유익한 연수 진행을 위하여 노력했다.

"연수가 너무 유익해졌어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잠시 보람도 느꼈지만 세상 일이 모두 내 마음 같겠는가? 요즘은 상처의 연속이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내 과도한 열정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제주도, 섬의 특성상 유명한 강사를 학교에 모시기가 힘들다. 2~3시간의 강의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까지 와야하고 강사비 또한 공무원 규정에 따라 주기 때문에 야박하기 그지 없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유명한 강사가 이리 먼 제주도까지 비행기를 타고 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두세 곳 강의하는 것이 낫다. 1학기 초, 나는 초등교육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강사분을 초빙하기 위하여 연락을 취했다. 지리적, 시간적, 경제적 이유로 역시나 거절! 그 강사분도 담임교사를 맡고 계셨기 때문에 더욱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 번의 통화 끝에 10월 말 금요일이 마침 재량휴업일이라 그때 오실 수 있다는 응답을 받고 연수일정을 잡았다. 내가 강사 이름을 이야기 하자 사람들은

"정말요? 그 사람이 정말 우리 학교에 와요?"

하는 놀라운 반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연수가 학생들 수업이 모두 끝난 늦은 시각에 시작이 되고 휴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퇴근시각을 훌쩍 넘긴 6시가 넘어 끝이 난다는 이야기에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경력이 있는 선생님들은 '그러려니~'하셨지만 젊은 교사들의 반응이 문제였다.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MZ선생님들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MZ세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개인의 시간을 침해하는 것이라는데 그 노골적인 거부의 반응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대놓고 말은 하지 못해도

"우리가 언제 불러달라고 했나요?"

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강사 선생님이 우리 학교만을 위하여 서울에서 오시고 여러 번 부탁한 끝에 어렵게 모셨다는 이야기는 내 개인사정일 뿐이었다. 연수공간이 마땅치 않아 학교에서 가장 큰 교실을 빌리고자 10년도 더 차이가 나는 후배 교사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하자 그 교사는 "안 된다."고 완강하게 말하였다. 정작 젊은 선생님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벌인 일이었는데,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침해한다고 완강하게 거부의사를 밝히는 후배교사 앞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든 생각,

'참~ 세상 많이 변했구나.'

선배로서, 부장교사로서 후배교사를 불러다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만일 그렇게 한다면 내게 붙을 꼬리표는 뻔했다.

"아유~ 저 꼰대!"

교무실로 돌아와 혼자 씩씩대며 앉아있는 방법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학교에서는 절대로 일을 벌이면 안 된다.


비단 학교 뿐이겠는가? 아무리 그 의도가 좋고 선하다 해도 자신의 시간을 침해한다고 생각하면 달가워 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 사회이다. 내가 이번 연수를 추진한 것이 연구부장으로서 소속 교사들의 발전과 연찬을 위한 선한 의도였다는 것은 자신하지만 이를 알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참 유리멘탈이다.

사람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이렇게 상처 받으니

나는 언제쯤 강철멘탈을 가질 수 있을까?

교사들에게 매일 욕을 먹고 사는

교장교감은 하기 힘들 것 같다. 해서도 안 될 것 같다.


1학기부터 준비했던 연수가 2주도 남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욕먹으며 준비했으니 연수가 잘 끝날 수 있도록 꼼꼼하게 준비해야겠다.

빈틈없는 완벽한 연수가 되어서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아주 어려운 일이겠지만......

너무 좋았다고, 다시 또 하자는 반응이 나오도록 해야겠다.

그러면서 동시에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앞으로는 절대로 일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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