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였던 아버지는 이 사실을 본인의 굉장한 자부심으로 여기셨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아들이
"나도 아빠처럼 선생님 할 거야."
라고 말하는데 뿌듯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교대에 들어갈 때도, 임용고시를 공부할 때도 변함없이 응원해 주셨다.
"교사 집안에서 교사는 한 명 나와야지."
아버지의 이 말씀은 본인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나에게 교사라는 직업은 성적 맞추어 대학에 들어가서 어쩌다 보니 교사가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가업을 잇는 것이었고 일종의 소명의식이며 책임감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같아서 은근히 아들과 딸 중 한 명은 교사를 하기를 바랐다. 잠시 그랬었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수시로 바뀌지만
다행히 아들과 딸은 교사에 관심이 없다. 아들은 에니메이션 영화 감독이 된다고 하고 딸은 가야금 연주자가 된다고 맹연습중이다. 둘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예술 분야에만 관심이 있어 뒷받침해 줄 수 있을까 걱정은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생님은 관심 없다는 아이들을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교직사회가 어떤지, 교사라는 직업이 어떠한지 너무도 잘 아는 부부교사인 아내와 나는 자녀에게 교직이라는 직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아직 먼 이야기이지만 내 아이가 교대에 들어갈 정도의 실력이라면 그 성적으로 다른 것을 해보라고 하고 싶다. 내가 교대에 들어가던 시절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학교는 완전히 변했다.
교사는 보람 하나로 먹고 사는 직업이다.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위치에 올라가기 위해 교사를 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없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되고 나아질 때 교사는 가장 큰 보람을 얻는다. 아이들에게 존경을 받고 학부모에게 존중을 받는 것 이상 바라는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러한 것이 사라진 지금의 현실을 보면 교사라는 직업에서 어떠한 보람과 자부심을 느껴야 할 지 고민이다.
내가 교대 입학 면접시험을 치르던 한겨울,
아버지는 나를 시험장에 태워다 주시고 그 자리에서 꼬박 5시간을 기다리셨다. 성적이 아슬아슬해서 불안해했었는데 지금도 내가 교대에 합격하고 교사가 된 것은 아버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평생에 걸쳐 내 내면에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셨던 아버지 덕에 운명처럼 교사가 되었다고 믿는다.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첫발령이 나서 학교에서 근무할 때 내가 했던 말 때문에 동료 선생님들이 크게 놀란 적이 있었다.
"저는 주말이 싫어요. 아이들을 못 만나잖아요."
지금은 주말만 기다리는 교사로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이지만 그때의 교직은 내게 그랬었다. 내가 교사가 되던 때보다 지금의 젊은 교사들은 더 뛰어나고 훌륭한 인재가 많다. 교대 입학성적부터 이제는 사법고시에 버금가는 임용고시만 보더라도 나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교사가 된 후배들이 날개를 펴보기도 전에 꺾여 추락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들의 날개를 잔인하게 꺾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