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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teacher Aug 12. 2024

술을 끊을 것이라고 말해 버렸다

왜 그런 약속을.... 이윽고 찾아온 금단현상!

  술을 끊을 것이라고 말해 버렸다.

  그것도 가족 모두 모인 자리에서 진지하게 선언했다.

  도대체 왜 그런 약속을....


  사건의 발단은 딸아이 때문이었다.

  딸아이가 지금 예중 입학을 준비하는 수험생인데 방학이라고 스마트폰을 잡고 놓지 않고 있어 확인을 해보니 하루 사용시간이 10시간을 넘었다. 충격을 받은 아내와 나는 당장 딸아이의 아이폰을 압수하고 갤럭시폰으로 바꾼후 어플을 깔아 사용시간을 제한했다. 그리고 딸아이를 식탁 앞에 앉혀놓고 정신교육에 들어갔다. 이래서 합격할 있겠니? 나중에 후회할 행동은 하지 마라.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등등. 딸바보인 내가 더욱 충격을 받은 것은 집앞 연습실을 등록해 주었는데 그곳에서 스마트폰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너 거기서 폰만 하는 것 아니지?"

  "아니지! 아빠 나 못 믿어?"

  잘한다고만 믿었었는데 딸아이가 나를 태연하게 속였다는 사실에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무엇인가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나는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크게 말해 버렸다.

  "너 예중 합격자 발표날 때까지 아빠 술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열심히 해!"

  내딴에는 고통분담 차원의 엄청난 결심으로 이야기한 것인데, 하루가 지나고 딸아이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아빠, 나 시험 보는 거랑 아빠 술 안 마시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러게 내 말이.....! 난 이 말 한 마디 때문에 지금 엄청난 금단현상을 겪고 있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 하루 일과를 마치고 tv를 보며 마시는 맥주 한 캔이 얼마나 큰 기쁨인데

  가족들이 모두 잠들고 넷플릭스 영화 한 편을 보며 마시는 하이볼이 얼마나 달콤한데

  제주도 신선한 해산물과 함께 마시는 소주 한 잔이 얼마나 짜릿한데

  분위기 좋은 펍에 앉아 제주도 바다를 보며 마시는 생맥주가 얼마나 낭만적인데


  나는 이 모든 행복을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아들딸 앞에서 자신있게 선언을 했는데 부모가 되어 가지고 며칠 못 견디고 술잔을 입에 댄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에 나는 지금 손톱을 물어뜯으며 참고 있다. 마침 이번 달 말, 드디어 바디프로필을 찍기에 오히려 잘 된 일이긴 하지만 딸아이 입시가 끝나는 10월 중순까지 참아내야 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나는 맥주 생각이 날 때면 헬스장으로 달려가 운동을 하고 온다. 맥주 대신 마시는 물이 몇 컵인지 모른다. 내가 이토록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막상 끊게 되니 가슴 어딘가가 참 공허하다. 그렇다고 내가 한 약속을 깨고 싶은 생각도 없다. 시원한 생맥주 생각이 날 수록 더욱 독하게 이겨낼 생각이다. 남자가 체면이 있지, 아빠가 무게가 있어야지.... 술생각이 난다고 쪼르르 편의점에 달려간다는 것은 내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부모는 자식 앞에서는 다 똑같은 존재인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부모를 볼 때면 '나도 크면 저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자식의 고통 분담을 위하여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하루아침에 끊어 버릴 수도 있다니! 나이가 들고 자식이 커갈 수록 부모로서의 무게감이 크게 느껴진다.

  오늘밤, 나만큼 아니 나보다도 더 맥주를 좋아하는 아내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집앞 분위기 있는 펍을 보고 농담삼아

  "우리 몰래 한잔만 하고 갈까?"

라고 했다가 도끼눈을 뜨는 아내를 보고 이내 꼬리를 내렸다. 아내도 나 때문에 강제로 동반 금주 상태이다. 합의 없이 질러버렸다고 어찌나 눈치를 주는지...... 이래서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하는 거다.


  뭐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이왕 선언을 했으니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금주를 이어갈 생각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맥주를 생각하며 입안에 군침이 돌고 있으니 나의 금주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지금 위기다! 얼른 일어나 얼음물이나 한잔 들이켜야겠다.

   

술 생각이 날때마다 헬스장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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