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딸과 단둘이 지내려니....
사춘기 딸과 단둘이 지내려니 하루하루가 상처의 연속이다.
딸이 입학한 학교는 교복이 예쁘기로 유명하다. 딸이 지금 다니는 학교에 입학하고 싶어한 이유이기도 하다. 교복이 예쁜든 아니든 그건 중요치 않고...... 날씨가 아직 추워 교복코트도 함께 맞추어 주었는데 딸아이는 코트를 입으면 교복의 멋이 살지 않는다고 교복만 딸랑 입고 다닌다.
"딸! 날씨 춥잖아. 코트 입고 가."
라고 말하자
"하나도 안 추워."
라고 대답하는 딸. 부모로서 걱정되는 마음에
"아직 겨울 날씬데? 밖에 추워."
라고 말하자 딸이 내게 말했다.
"그건 아빠가 나이 들어서 그래!"
어쩌면 그렇게 말 한마디한마디 상처주는 말만 콕 찝어 하는지..... 요즘은 딸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왔다갔다 한다.
하긴.... 자기도 스트레스 받겠지. 가뜩이나 사춘기인데 '여자아이가 아빠랑 좁은 복층 오피스텔에서 함께 지내야 하니 스트레스겠지.' 라고 생각은 하지만 부모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요즘 내가 딸아이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내가 다 알아서 해."
이다. 내 눈에는 하나도 알아서 하는 것 같지 않은데 뭘 다 알아서 한다는 건지.... 지금도 딸아이는 야간 연습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으이구! 속터져~~ 처음 딸아이와 단둘이 서울로 올라왔을 때 며칠은 우울증이 온 것처럼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다. 지난 학교에서 중책을 맡아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마무리 짓지 못하고 올라가야 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했고, 이제야 정착을 해서 안정적으로 지내나 했는데 가족과 떨어져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는 사실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런데 유일한 위로였던 딸마저 나에게 상처를 주면 나는 무엇에 위안을 얻고 지내야 하는 것인지..... 며칠을 이런 기분으로 살다보니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래서 아내와 전화를 할 때면 툭하면 신세한탄을 하고는 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했나? 지금은 그때처럼 다운되어 있지 않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딸이 비록 사춘기여서 가시 돋힌 말로 내 마음을 찌르기는 하지만, 이 세상 어느 아빠가 나보다 더 딸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까? 어차피 크고나면 부모 곁을 떠나갈텐데, 그러고나면 지금의 이 시간도 사무치게 그리울텐데. 그래서 나는 딸과 투닥거리는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아빠 팔은 날 잠이 오게 하는 마법이 있어."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딸은 잠이 안 오면 날 찾아와 내 팔을 베고 잠이 들었다. 내 팔에서 스르르 잠이 들며 이렇게 말했다. 확실하다! 그 마법은 이제 생명력을 다했다. 가끔 딸아이 방에 가서 농담으로
"오늘 아빠랑 잘...." "아니!"
라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가라고 하니 뭐, 그 마법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다. 처음에는 그것도 참 섭섭했는데 이제 나도 미련을 버려야겠다. 사춘기 딸이 아빠 품을 서서히 떠나가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테니 말이다.
남들은 나를 딸바보라고 딸바부팅이라고 놀리겠지만 딸이 원하는 학교를 들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응원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딸이 걷고 있는 꿈의 여정에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다. 거기에 더해 딸의 인생에 많은 시간을 추억으로 함께 할 수 있으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딸도 성인이 되어 내 곁을 떠나게 되면 지금의 시간이 소중하게 남아 있겠지. 오랫동안 아빠를 기억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사춘기 딸아이로 인한 상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단지 감사한 일일 뿐이다.
아직 날씨가 춥다. 내일은 꼭 코트를 입혀서 학교에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