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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데이비버 Dec 10. 2021

#2 잔치를 하려던 건 아닌데...

촌멋 촌쿨의 자세

2021.10.19. 시루떡 주문 @부자떡집

2021.10.20. (오전) 계약서 도장 

2021.10.20. (오후) 떡...잔치?

  시골에 빈 집이 그렇게 많다는데, 가을공사를 목표로 시작한 집찾기는 가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우리집을 만나기까지 80여채의 빈 집을 봤다. 말 그대로 봤다. 위성 지도로 빈 집 같아 보이는 지붕을 찾아내고, 로드뷰로 한 번 더 확인 후, 날을 잡아 여러채를 한번에 도는 식이었다. 좋은 집도 많았고, 깜짝 놀랄 상태의 집도 많았다. 하지만 우리가 살 수 있는 집은 없었다. 매물 시장이란게 형성되어 있지 않았고, 비어있는 집이어도 부동산 혹은 동네 지인분께 애둘러 여쭤봐야 사정이라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우리의 소식을 전해 들은 지인분께서 수소문해 구해주신 집이 지금의 우리집이다. 처음에는 집도 두 채인 데다가, 작은 마을 가운데에 앉은 집이어서 주저했으나, 막상 가보니 땅이 넓어 사방으로 여유가 있고, 마당으로 볕이 훤히 들어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우리가 그렸던 모습은 아니지만, 다른 방향으로 상상 외의 촌집라이프가 펼쳐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느낌이 시루떡 한 말로 사실이 되었다. 우리집 주인할아버지는 동네 이장님을 오래 하셨던 분으로, 옛날(정말 옛날)부터 온 가족(삼촌,사돈,팔촌 모두)가 한 동네에 터를 잡고 살아오신 동네 터줏대감이다. 어렵게 집을 구해 감사한 마음이 큰 만큼, 오래 살아온 집을 정리했을 때 느끼실 상실감(?)에 잘 대처하고 싶었다. 몇차례에 걸친 만남 후,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날, 이장님(전직 이장이지만 여전히 이장님으로 통함)과 동네 분들에게 인사를 겸해 떡을 한 말 맞추자는 의견이 나왔다.   

  물론, 이장님께 여쭤보았을 때 돌아오는 답변은 "에유~그런거 안해도 돼유~" 였지만, 아닌게 아니라는 충청도식 대화의 기술을 익힌 터, 대답은 "네~" 하고 떡은 떡대로 준비했다. 그리고 결과는 모두가 행복. 이장님 내외분께 떡을 드리고, 동네분들께 인사를 부탁드리니, 바로 떡을 지고 마당으로 가자는 주문이 떨어졌고, 이동하는 사이 이장님은 부녀회장님(이 분도 전직 부녀회장이지만 계속 부녀회장으로 불리신다.)과 몇몇 핵심 인사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 마당에 떡이 도착할 즈음 이미 열일곱 가구에서 봄 철쭉 색깔의 할머니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상상 외의 촌집라이프가 막 시작되는 순간이다. 다들 손에 왜 박스를 들고 오시나 했더니, 방석이다. 이 집 마당 볕 잘 드는 것을 모를 리 없는 분들이다. 떡 받아 집으로 들어가는게 무슨 재미. 순식간에 자리가 펼쳐지고, 우리는 떡을 썰고, 담고, 저 아래 점포로 막걸리를 사러 가고 있었다. "거 마실거 없나~?" (절대 있냐고 물어보시지 않는다. 충청도식 화법 1교시) 


 촌멋, 촌쿨. 누군가에게는 이런 저돌적(?)인 앞마당 잔치의 시퀀스가 불편할 수 있겠다. 타인에게 간섭 받기도 하기도 싫고, 엘레베이터에서 인사 또한 받기도 하기도 싫다. 윗집에서 나는 발소리나 줄었으면 하는 우리들에게, 철쭉부대의 거침 없는 돌격은, 가드를 올릴 새도 없이 모두를 무장해제시켰다. 


  그런데 무장해제된 틈으로 건너오는 눈빛과 말들이 가을볕처럼 따숩다. 간섭이 될 말은 되려 먼저 사리는게 눈에 보이고, 젊은 사람들이 오니 좋다는 말만을 수차례 전하신다. 그리고 시작된 잔치에서, 우리는 뒷전. 그들만의 촌멋 촌쿨 대화가 오간다. 떡은 수단이었을 뿐, 볕 쬐며 놀 구실이 제대로 되어드린 듯 하다. 

  어느 한 집이라도 모른 채 소외되지 않도록 부녀회장님의 전화 다단계는 계속되었고, 결국 천안에서 김치찌개집을 하는 윗집 내외분 퇴근을 마지막으로 앞마당 잔치는 끝이 났다. 볕이 길어지는 동안, 이장님께 집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도 듣고, 부녀회장님께 앞마당 배추의 사연도 들었다. 집을 살리는 데 필요한 얘기들이고, 아직 누군지 모를 옆집 가족에게도 전하고픈 소식이다. 


  촌집에 어울리는 촌멋과 촌쿨의 자세를 기록해둔다. 이토록 멋지고, 쿨하다면 얼마든지 따르고 싶다. 우리 모두 촌멋 촌쿨해지는 촌집라이프를 그려본다.









[촌멋 촌쿨 떡잔치를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9NHBqVJBOo8&t=23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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