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퀀텀점프 Feb 16. 2024

엄마는 인스타를 시작했고, 딸은 인스타를 끊었다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해 가는 가족

큰소리 떵떵 친 인스타 인플루언서 프로젝트가 2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큰 변화는 없다. 당연하다. 내가 엄청난 실력과 빵빵한 콘텐츠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넘사벽으로 이뻐서 얼굴만 들이밀어도 되는 존재도 아니고, 남들이 인정해 줄 만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저 인스타라는 해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모래알 중에 하나이다. 단지 중간에 혼자서 지쳐 파도에 쓸려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모래알 중에 좀 커져서 누군가의 발에 딱 걸려서 보인다면 더 좋겠다.


인스타를 시작한 나는 신세계에 놀라고 있다. 아니 이런 재밌는 세계를 나는 이때껏 무시해 왔단 말인가? 동기부여와 자극이 되는 포스트나 릴스도 너무 많고, 내가 직접 가보지는 못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으면 힐링이 된다. 단지 영상이 너무 짧은 게 흠이다.


뒤늦게 인스타를 시작한 구세대 엄마는 신나 하는데, 딸은 어제부로 모든 소셜미디어 계정을 삭제했다. 유튜브도, 트위터도 인스타도 삭제했다. 자신이 너무 많은 스크린 타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딸은 소위 인싸가 아니다. 애니메이션과를 지망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이다. 만화를 좋아하는데 그 취향도 일반적이진 않다. 또래들과 생각하는 방향도 달라서 틱톡을 극도로 싫어하고 연예인, 화장, 남자친구, 패션등 또래가 관심 있는 영역에 관심이 1도 없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게임 캐릭터를 좋아한다. 그러니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한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딸에게는 너무 흥미가 없으시단다. 그래도 그럭저럭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없애고 난 딸은 영화를 1편 반이나 보았단다. 지난번에 식구들이 다 같이 넷플릭스에서 굉장히 감성적인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멋진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었다. 제목은 기억이 안 난다. 그것과 비슷하게 감동을 준 애니메이션을 보았다고 한다. 이전 같으면 긴 스크린타임을 가진 영화보다 유튜브를 선호했을 텐데, 지우고 나니 호흡이 긴 영화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책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최애 소설 중인 하나인 두께가 베개만 한 셜록홈스를 다시 읽기 시작했단다. 학교에서도 인스타를 보려고 폰을 들었다가 없으니 다시 내려놓고 친구들과 더 대화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긍정적인 결과인가? 내가 딸에게 권고를 하거나 눈치를 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결정해서 한 일이라서 더 대견하다. 부디 SNS 금단 증상을 잘 이겨내길 바란다.


딸과는 다른 게 엄마인 나는 인스타 세계에 발을 담갔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제 이유 없이 폰을 들어 인스타를 확인한다. 인스타와 카카오톡의 알람음은 해체를 해놓았다. 알람이 오면 자꾸 폰을 보는 버릇이 있어서 꺼 놓은 것이다. 이렇게 했더니 습관적으로 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줄긴 줄었다.


인스타의 세계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90넘은 미국 할머니가 자신은 평생 남의 관심을 받고 싶었는데 90 넘어 이루었다면 너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너무 귀여우셔서 키득거린다. 일본에서 운동을 하는 20대 여자분의 체력과 유연성, 균형감각에 감탄사를 연발하고, 영어 원서 추천 영상을 보며 다음번엔 저 책도 사서 볼까? 생각을 해본다.


어라? 나는 내 영어 콘텐츠를 퍼스널 브랜딩하기 위해 인스타를 하고 있는데 나의 관심사인 운동, 독서등등 영역이 무지 확장되고 있다. 물론 영어 공부 관련 콘텐츠도 열심히 보고 있다. 아! 저렇게 릴스를 만들면 되는구나. 이렇게 만드니 깔끔하고 보기가 좋네. 등등 여러 가지 영상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는다.


인스타를 시작하든 그만두든 방향이 더 나은 삶으로 가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좋지 않을까? 나는 인스타를 통해 삶을 다양한 각도롤 보기 시작했고, 딸은 인스타를 끊음으로써 좀 더 현실의 삶에 충실하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