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퀀텀점프 Mar 17. 2024

수의사의 가장 힘든 시간

Angel of Death

수의사로 일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도 있지만, 반대로 가장 힘든 시간들도 있다. 바로 동물들에게 안녕을 고해야 하는 안락사의 순간들이다.


2주 전에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중증 상태의 환자들 진료가 많았다. 안락사를 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은데, 그 주에는 매일 안락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그래서 병원 스태프 중 한 명이 나를 'Angel of Death'라고 별명을 붇여주었다. 부정 탄다며 그리 부르지 말라고 했건만, 어찌 된 사연인지 매일 안락사를 해야 하는 케이스가 생겨버렸다. 별명 때문이었는지 그냥 일이 그리 된 것인지는 몰라도, 안락사 케이스가 생길 때마다 나는 그녀를 째려주었다.


 내게 매일 안락사 케이스가 생기는 것을 보고, 원장이 미리 안락사 스케줄을 자신의 일과에 넣는 배려를 해주었다. 그러나 그날도 어김없이 또 다른 안락사 케이스가 생겨버렸으니, 그 주에 나는 저주를 받은 것이 틀림없다.


안락사는 정신적으로 상당히 힘든 과정이다. 그래서 내 감정적인 부분을 진료 케이스와 분리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케이스마다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emotional burn out이 오기가 쉽다. 번아웃은 우울증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북미에서 수의사는 자살률이 높은 직업군에 속한다. 의료직군이 그렇듯이 육체적인 정신적인 번아웃이 많이 오기 때문이다. 3D (Difficult, Dirty, Dangerous) 직업군에 속하는 수의사는 감정적으로 중립을 지키는 것이 참 중요하다. 정신적인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말 못 하는 동물들을 진료하다 보면 감정적으로 얽히기가 쉽다. 특히 오랫동안 봐왔던 동물이 갑자기 건강상태가 악화되거나 급작스런 죽음을 맞이할 때는 감정적으로 중립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동물을 사랑해서 수의사가 되었으나, 죽음도 감내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긴다.


죽음이 쉬운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수의사인 내 입장에서는 말로 어디 아프다 힘들다 한마디도 표현하지 못하는 동물들이 아픔 속에서 고통받는 것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사람은 아프면 아프다 말하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동물들은 자신을 돌보는 주인들이 알아채지 못하면 아파도 아프다 표현하지 못한다. 무언가 이상하다 생각해서 동물병원에 왔을 때 이미 늦은 경우도 종종 생긴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아픈 것을 숨긴다. 그것이 야생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는 아픈 것을 드러내는 순간은 도태와 죽음으로 연결된다. 아무리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생활을 해서 길들여졌다고 해도 야생의 본능은 남아있다. 일부 예외는 있다. 아주 작은 상처와 아픔에도 아파죽겠다며 난리는 치는 이른바 "Drama queen"들이 있다. 이런 경우는 바로바로 병원에 오게 되니, 차라리 다행이다.


안락사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시행이 된다. 말기 환자의 고통경감, 치료의 경과가 좋지 않을 때, 또는 축주의 경제적 사정으로 비싼 치료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동물들의 주인인 축주와의 진료를 통해 충분히 상의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법을 해본 후 정말 최후의 방법으로 실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 진료마다 동물들의 통증정도를 확인하고, 진통제를 처방하고, 최대한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법을 해보지만, 모든 동물들이 다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안녕을 고해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결정을 해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목이 메는 경우가 많다.


안락사의 순간은 단지 의료적인 행위만이 아니다. 축주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에게는 힘든 순간이다. 하지만 겪어보니 언어는 의사전달을 하는데 생각보다 큰 역할을 담당하지는 않는다. 그 순간을 대하는 태도, 배려, 그리고 비언어적인 요소들이 더 큰 역할을 한다.


힘들었던 안락사 주간을 마치고, 주말에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그리고 Angel of Death의 별명에서 벗어난 한 주를 지나고 나니, 한 클라이언트가 꽃과 함께 카드를 보내어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갑작스럽게 결정하게 되어 클라이언트가 안락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던 케이스였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여러 단계에서 "부정의 단계"를 힘들게 지나온 케이스였다. 일주일이 지나서 이렇게 꽃으로 감사를 표현해 주니 너무 감사했다. 사랑스러웠던 그 강아지의 부재를 식구들이 잘 받아들이길 빈다.


안락사는 힘든 일이지만,  동물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다는 사실에 나도 주인들도 위안을 받는다. 말 못 하는 짐승의 고통을 방치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그때 우리가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우리가 동물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왜 동물들은 인간들처럼 긴 수명을 가지지 못하고 태어나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할 때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