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현실 사이의 간격_<택시 드라이버>

by 정아름

마틴 스콜세지,1976, <택시 드라이버>


생각이 멈추어버렸다.

이제 냄새나는 것이 필요하다.


진리에 가까운 것은 향기를 내지만 진실에 가까운 것은 냄새를 풍기는 법이므로. 택시 드라이버를 다시 본다. 더러운 것을 본다. 이 영화는 말한다. 도시의 이 많은 인간 쓰레기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나 냄새를 풍기는가?


트래비스의 혼잔 말로 영화는 시작한다.


"쓰레긴(동물들은) 밤에 쏟아져 나온다. 매춘부, 깡패, 남창, 호모, 게이, 마약 중독자. 인간 말종들이다. 언젠가 저런 쓰레기를 씻어내 버릴 비가 쏟아질 것이다. 손님이 원하면 어디든 간다. 브롱크스, 브루클린, 할렘까지 어디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런 것들은 내게 전혀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불면증이 있는 그는 쓰레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밤거리를 어디든 개의치 않고 달린다. 쓰레기들을 지나쳐가고, 태우고, 그리고 어딘가에 떨군다. 하지만 그는 잠이 들지 못한다. 그에게는 밤과 낮이 온통 뒤섞여 사라져 버린 듯 보인다.


"12시간을 일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제길, 지루한 날들의 연속이다. 내 인생엔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 평생을 내 안에 갇혀 보낼 순 없다. 남들처럼 똑같이 살아야 한다."


그런 그에게 첫번째 변화가 찾아왔다.

베티.


"하얀 원피스를 입고 천사처럼 나타났다. 쓰레기 같은 뉴욕에서."


대통령 후보 선거사무실의 홍보 책임자인 그녀에게 트래비스는 다가가 말을 건낸다.


베시: 뭘 원하시죠?

트레비스: 커피 한 잔 할래요?

베시: 왜요?

트레비스: 이유를 말해주죠. 외로워 보여서요. 사무실 옆을 지날때면 당신 주위에는 사람들도 많고, 전화도 늘 분주해 보여요. 하지만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죠. 당신 눈빛이나 행동하는 걸 보면 행복해 보이지가 않아요. 뭔가가 필요해 보여요. 친구같은 존재가요.

베시: 당신이 친구가 되어 준다고요?

트레비스: 맞아요.


배 운것 많고 좋은 직장을 가진 베시가 쥐뿔도 없는 택시운전사와 커피를 마셨을까? 물론이다. 당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보는가. 책상 위의 많은 서류 뭉치들을 보는가.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소리와 카톡 소리를 듣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많은 것들 중 친구같은 존재는 있는가?

아니면 당신도 베시처럼 외로운가?

당신은 당신 그대로를 받아 줄 친구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두 번째 만남에 트레비스는 베시를 포르노 영화관에 데려간다.그리고 당연하게 차인다.


베시: 이런 류의 영화를 본다고요?

트레비스: 그렇게 나쁘지 않아요.

베시: 같이 자자고 말하는 거나 같아요.

트레비스: 그럼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 갑시다. 나는 어떤 것이 좋은지 잘 몰라요. 하지만 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어요.

베시: 우린 안 맞아요.


트레비스는 왜 베시를 데리고 포르노 영화관에 갔을까? 베시 말대로 자고 싶어서? 바보라서? 아니. 그는 정말 어떤 것이 좋은지 몰랐다. 그는 쓰레기 더미에서 살아왔고, 또 살고 있다. 누더기를 걸치고 사는 사람은 어떤게 더러운 건지 잘 알지 못한다.


베시를 잃은 그는 '현실과 환상 사이'에 빠져버렸다. 어떤 것이 더러운 것인지 어떤 것이 깨끗한 것인지, 어떻게 이 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지, 혼돈과 모순에 갇혀버린 것이다.


그는 '해결사'라는 별명을 가진 동료 택시운전사에게 조언을 구한다.



해결사: 고민있지? 속 시원히 얘기해봐.

트래비스: 의욕을 상실했어. 빠져나가서 정말로 뭔가를 하고 싶어.

해결사: 택시가 지겹지?

트래비스: 글쎄... 모르겠어. 여기를 빠져나가 정말로 뭔가를 하고 싶어. 궁리는 많이 해보지만....

해결사: 이렇게 생각해 보라고. 남자가 직업을 가지면, 직업이 그 사람이 되어버리지....... 빈민이거나, 부자거나, 변호사거나, 의사거나, 죽는 놈이나, 살아난 놈이나, 태어나는 놈도 다 같아. 선택의 여지가 없어. 우린 낙오자들이야.

트래비스: 이런 엉터리 충고는 처음이야.


이건 정말 엉터리 충고이다. 결국은 어쩔 수 없다니. 넌 여길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니. 넌 택시운전사니까 결국 네 비천하고 지겨운 직업이 널 그렇게 만들어 갈거라니. 나도 결국 도시의 쓰레기더미일 뿐이라니.


이런 절망적이고 엉터리같은 충고가 어디있는가. 하지만 이런 술 취해 비틀거리는 자의 뺨싸데기를 후려 갈기는 정신이 번쩍 드는 -아니 섬뜩한- 하지만 계속 취한 척 하고 싶은, 충고가 어디 있는가.


트레비스는 생각한다.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말도 안되는. 내 감옥이 너무 견고해 탈출할 수 없다면, 날 가두고 감시하는 놈을 없애버리겠다.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놈들 말이다.


"6월 8일, 인생의 전환기가 찾아왔다.

똑같은 날들이 쳇바퀴 돌 듯 끊임없이 사슬처럼 계속 이어지다가

갑자기 찾아온 변화.

머릿속 계획은 점차 구체화된다.

진정한 힘. 정의를 구현할 힘이 필요하다."


트레비스는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정점, 쓰레기 더미의 정점, 대통령(후보)를 암살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의 처절한 몸부림은 결국 어이없게 하지만 당연하게 실패한다.


그리고 일단 칼을 뽑은 그는 무엇을 했는가? 사회 정의 대신 호박이라도 썰어볼 참인가? 트레비스는 창녀가 된 한 아이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그의 기둥 서방(사실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주는)과 주변의 모든 쓰레기들?을 처리해 버린다. 결국 쓰레기가 쓰레기 더미에서 쓰레기를 건진 것이다.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세상은 그에게 'Taxi Driver Hero To Recover'라는 칭호를 준다. Recover? 도대체 무엇이 회복되었다는 건가? 영웅, 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이용해 먹기 쉬운 용어인가? 'Hero'라는 명칭과 상관없이 트레비스는 다시 밤 도시의 택시운전대를 잡는다.


그리고 우연히 베시를 태운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다. 하지만 백미러를 통해서 보는 바로 뒷 자석의 그녀는 신기루처럼 멀어 보인다. (그는 세상을 벡미러로 볼 뿐이다)


베시는 트래비스에게 말을 건넨다. 하지만 그는 웃으며 그냥 지나친다. 그도 알아버린 것이다. '우리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트레비스는 미러를 자꾸만 돌려본다.


멀리서나마, 환상 속에서 나마 그는 그녀를 (저 건너를) 보고 싶다. 하지만 이내 백미러에는 냉정하게도 자신의 모습과 밤 도시의 쓰레기들을 비출 뿐이다.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쓰레기들 사이에?

아니면 공허한 외로움 안에.


-시


Taxi Driver Soundtrack 04, I Still Can't Sleep/They Cannot Touch Her


https://www.youtube.com/watch?v=U4d3bJYDS0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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