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통의 원인'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과한 부탁이나 내키지않는 질문에 '거절하지 못하는 쓸데없는 배려'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꽤 성격 좋은 이미지이고 싶어서, 나의 거절로 그 사람과의 관계가 어색해질까봐, 또는 사람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지나친 욕심이었다.
마음에도 없는 쿨한 승낙.
뒤돌아 후회하며 앞일에 대한 걱정.
막상 그 일에 닥쳤을 때 안 그런 척하며,
매우 마음에 드는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
다시 그런 거절하고 싶은 상황에도
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
반복되고 있었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체증으로 두통으로 왔다. 한 두번 열심히 흉내를 낸 후에는 지친 몸과 마음을 쉬기 위해 자연스레 잠수모드. 당연히 그 사람은 내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싫어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티 내지 않고, 늘 웃어주고 들어주기만 했으니까. 늘 괜찮다고만 했으니까.
결혼하고 남편은 그렇게 상황마다 쩔쩔매고 24시간 고심하고 갈팡질팡하다 마지못해 승낙하는 나를 보고는 이해가 안된다는 듯 "그냥, 거절해!"라고 했는데, 나는 "그게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도저히 그 말은 못하겠다고.
어렸을때 나는 부모님께 칭찬만 받고 싶었다. 특히 아빠에게 유독 그랬다. 강압적인 아빠에게 나는 늘 순종적인 딸이려고 애를 쓰고 노력했다. 인형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웃고 있는 나의 코스프레. 아빠가 나 때문에 실망하는 표정을 짓고 말을 할 때 못견디게 불안했다. 인정받지 못하면 다른 아이가 나 대신 딸을 할 것만 같았다.
'거절을 못하는 나'는 집에서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회사에서 시댁에서 계속 진화되었다. 가장 심했던 건 교회일이었다. 은혜로 했어야 하는 일들을 억지로 했다. 그러다보면 기쁨이나 감사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모든 날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마음' 없는 '억지'에는 교만과 억울함만 남았다.
그러는 사이,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남편은 도망가는 나를 돌아세웠다. 당당히 '거절'하라고 했다. 그것이 그 사람에 대한 진짜 배려라고 했다. 나는 집에서 거울을 보고 종이에 써서 몇 번을 연습했다.
안 될 것 같아.
다음에 만나자.
이번엔 힘들겠어. 약속이 있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 괜찮지 않아.
아니, 나는 아니야.
나는 나 자신도, 사람들도 속이고 있었다. 지독하게도 스스로를 괴롭혔던 나 자신에게 미안했다. 몸과 마음을 많이도 아프게했다. 원인을 파악하지도 해결책을 찾을 생각도 없이 앓아 누워 눈물을 뚝뚝 흘리며 타이레놀을 먹고 천장만 바라보았다. 깨어질 것처럼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모지리같은 나를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