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어디 있나요?
마스크로 도배된 침묵 속.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에도 싫증이 났다.
'그믐'에 이어 어제 새로 산 장강명의 소설 '표백'을 폈다. 새벽까지 소설을 읽다 다음 날을 위해 페이지를 접어두는 이 희열을 몇 년 만에 느껴보는 걸까. 잠든 남편의 얼굴을 쓰다듬고 책상 위 주황 조명을 딸깍이며 끄는데 비로소 나다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과 책 읽기를 공유하고 함께 글쓰기를 하는 오후 4시 37분의 이 시간이 나는 참 좋다. 커피는 빠질 수 없고, 어느새 마른 빵도 한 입 베어 물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가치 있는 이 시간을 격하게 사랑할 수밖에 없고, 10년이 지나도록 INFP의 본능은 변하지 않는다.
푸른 곰팡내 나는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평일에는 소설 읽기를, 주말에는 캠핑을 하면서 몸을 혹사시켰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목을 조르는 무엇인가에 나는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장강명의 소설과 조개 캐기는 적잖은 위로를 주고 있었다.
바다에서 돌아오는 길, 차 안에는 조개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 남편은 조개가 놀란다며 100km 이상을 밟지 않았다. 미친 듯 호미질을 하며 조개를 캤다. 집에 와서는 연구를 거듭해 남편과 조개를 해감하며 코로나 밖의 세상으로 통하는 출구로 숨을 쉬었다. 나는 불장난을 하는 아이처럼 낄낄댔다.
현실 같지 않은 이 세계를 탈출할 수 있는, 내가 정신적으로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퇴근하는 서울로 가는 지하철 1호선. 나는 침묵 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 또 그렇게 소설을 읽고 있는데, 흑인 남자 한 분이 기타를 메고 지하철에 올랐다.
사람들은 안 보는 척 모두 그를 봤다. 그리고 갑자기 내 맞은편에 앉아 계신 아주머니께서 일어나더니 기타를 멘 그에게 다가갔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렸다.
왜? 무엇 때문에? 하는 궁금증은 역시나 책을 보는 척하는 나에게도 동일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덜컥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마스크 세네 장을 그에게 건넸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풍경이었다.
'면' 마스크를 하고 있던 남자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다가, 남자는 서툰 한국어로 마스크를 한 장만 받는다고 했고, 아주머니는 다정하게 웃으시면서 "이런 거 써야 해요." 하시며 그의 손에 마스크를 굳이 다 쥐어주셨다.
코로나 속에 살면서도 타인과 함께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 정신적으로 피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충분히 숨을 쉬는 사람. 이 세계를 벗어날 궁리만 하며 책 속에서 위안을 얻는다는 나. 호미질로 분풀이를 하면서 정신적 해방을 얻은 듯 웃는 현실.
'나' 밖에 보이지 않는 내가 사는 이곳은 실재인가.
나는 팔을 한 번 꼬집고, 호미질로 아려오는 오른쪽 손목을 매만졌다.